관리 메뉴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우리는 천천히 나아간다. 본문

7면/대학원신문 후기

우리는 천천히 나아간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11. 5. 23:56

우리는 천천히 나아간다.

 

서민주(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박사과정)

 

  사물의 성질, 모양, 상태 따위가 바뀌어 달라짐. ‘변화’의 사전적 정의이다. 대학원신문 제263호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단연 ‘변화’가 아닐까 싶다. 물론 혹자는 대학원신문이 ‘변화’를 적지 않은 적이 있었느냐며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여느 때보다 빠르게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 누군가는 그 변화를 추동하고, 또 누군가는 변화를 쫓아가며, 다른 누군가는 변화를 부정한다. 대학원신문 263호가 전하는 변화를 한 발짝 뒤에서 쫓아가며 정제되지 않은 나의 생각을 보탠다. 

  ESG 경영을 다룬 1면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효율성을 추구했던 기업의 경영 노선이 이제는 그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수용하고, 기업의 장기적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면의 만학도 강사는 대학 강사 노동권과 대우가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를 날것 그대로 보이며, ‘이번에 안 되면 또 다음에 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응원할 것’이라고 강사 입지의 변화를 기약한다. 3면 문단 권력 비판에 관한 기획 역시 변화와 멀지 않다. 문단 권력의 실체를 규명하고, 또 극복 방안을 제시하려 한 양적 연구와 문단 권력을 경험한 한 작가의 솔직한 이야기는 더 이상의 ‘문학의 몰락’을 막기 위한 변화의 시작점과 다름없다. 6면의 한옥은 건축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회복, 위안을 주는 공간으로 변화하였다. 심지어 ‘또 다른 가능성’으로 묘사되는 더 큰 변화도 기대해봄 직하다. ‘부엔트로피적 노동’이나 퀴어 축제 참여 부결을 두고 발생한 일련의 사태에서도 변화의 욕구를 보았다.

  변화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지면은 7면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의 강연이 결국 성사되었던 과정, 그리고 박경석 대표에 관한 일화에는 박 대표 섭외 반발로 야기된 분노, 그럼에도 ‘모든 것은 변하고야 만다’며 좋은 변화를 기원하는 기자의 마음이 모두 녹아있다. 이 사설에서 적시한 무지성적 엘리티즘을 부정하거나 또는 긍정하거나 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다만 ‘변화는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던 지점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 싶다. 기자는 박경석 대표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자신 또한 … 무력감을 느끼지만, 십 년이 지나고 또 이십 년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생각 이상으로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전장연의 투쟁은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2014년 발달장애인 법 등 다수의 장애인 권익 보호 관련 법을 제정 및 시행하는 계기가 되었다(전장연이 걸어온 길은 전장연 홈페이지 전장연 소개 참조). 그들은 집단적으로, 지속적으로 차별에 저항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담담하게 투쟁의 길을 걸었고, 그렇기에 누군가는 돌이켜보면 많은 것이 변화했다고 과거를 곱씹어볼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역사를 공부하는 나에게 있어 변화는 항상 중요하다. 변화는 현상 유지보다 연구 대상의 적정성을 입증받기 쉽기 때문이다. 유지도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으나, 연구의 대상은 대부분 ‘어떤 변화’가 되고, 변화의 과정과 결과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렇다보니 변화에 대해 고민할 때가 많다. 고민의 지점은 변화가 과연 좋을 쪽을 향해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변화 자체만으로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나름의 통찰력을 성장시켰다고 믿는 지금, ‘역사에 산견되는 그러한 변화들을 종합하면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 본다. 조금 과장해보면 ‘역사는 발전하는가?’라는 질문과도 연결된다. 변화와 유지가 얽혀서 결국에는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갔는지(즉 발전했는지), 현재는 과거보다 더 좋은 상태인지에 쉽게 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변화를 이끄는 사람들, 변화에 동참하는 사람들, 변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상호작용 끝에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되었음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가까이서 보면 작고 별 볼일 없겠지만 멀리서 보면 ‘커다란’ 변화가 되어 있을 것이다.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모 교수님께서는 ‘역사가 단계적으로 발전하는지, 또 반드시 좋은 쪽으로 향해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큰 시야에서 보면 나선형으로 발전하고 있지 않겠느냐’고 본인의 생각을 가볍게 던지신 적이 있다. 나선형일지라도 때로는 잠시 뒷걸음질 치더라도 역사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도, 돌이켜보는 어느 과거가 되었을 때는 변화의 시작점, 좋은 변화를 위한 소용돌이로 비춰지지 않을까.

  변화에 대한 나의 믿음에 가까운 생각에 꼭 동의를 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전장연 박경석 대표의 말을 우리에게 들려준 누군가와 이제는 은퇴하신 어느 시간강사 역시 분명 이러한 믿음을 가졌을 것이다. ‘각박’한 세상을 조금이라도 변화하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일 것이다. 며칠전, 평택의 한 공장에서 불운의 사고를 당한 이의 소식은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었다. SPC의 대응은 국민들의 분노를 샀고,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에 대한 목소리는 한층 높아졌다. 여전히 ‘좋게’ 변화하지 못한 현실은 다시 변화의 시작점이 된다. 우리는 믿음을 갖고, 지속적으로 언젠가는 변화를 추동시키고, 언젠가는 쫓아가며, 언젠가는 부정하자. 속도는 느릴지라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7면 > 대학원신문 후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대의 바람  (1) 2023.03.15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1) 2022.12.12
Nothing About Us Without Us  (0) 2022.10.09
불평등 시대의 진보  (0) 2022.09.02
견디며 기다리기: ‘그날’을 생각하며  (0) 2022.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