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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Nothing About Us Without Us 본문
윤희상,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하 수상한 시절에는 ‘죄’와 ‘법’이라는 두 글자가 입안을 깔끄럽게 만든다. 누군가의 죄를 결정짓는 데는 법과 제도 이외에도 여러 요소가 개입하지만, 법이라는 칼이 우리를 베면 그 상처는 죄로 남는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법은 상위에 존재하는 ‘칼’이기에, 그 칼자루를 쥐고 흔들 수 있는 누군가가 항상 있다. 법이라는 칼날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겨눠져야 하지만 애석하게도 누군가에겐 손 닿는 곳에 있는 법이 누군가에겐 일생을 다 바쳐도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누가 법을 법으로, 혹은 죄를 죄로 만드는가에 대한 문제는 지금 더욱 귀해 보인다. 요 몇 달간 골몰하게 된 하나의 키워드는 ‘불법’인데, 요상하게도 불법이나 위법이어야 마땅할 일들이 ‘법 밖에’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되레 “지나치게 좁게 제한”(3면, 「대우조선 파업으로 본 한국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그 실태」)된, 만들어진 ‘합법’의 범위에 의해 시급한 조치들에 ‘불법’의 빨간 딱지가 붙는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은 법에 누구보다 가까운 인사들이 주축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사안에 있어 손쉽게 법을 제(除)하거나 법을 없애(無) 버린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인민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 조치로서의 법의 의미는 퇴색되고 오직 단죄의 기능만이 그곳에 새겨진다.
지난 대학원신문의 후기 「불평등 시대의 진보」에서 유현수는 “차별의 문제를 법제화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 인류의 비판적인 성찰이 아닌 통제적 수단에 의해 유지되는 평등”이기에 한편으로 안타깝다는 취지를 전한 바 있다. 그의 맥락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대학원신문에서는 법제화에 따른 “강제적 규칙”의 마련을 더 이상 유보할 수 없는 현장들이 그려지고 있다. 가령 1면의 기획 인터뷰에서는 경찰국 신설 조치가 어떻게 현행법에 따른 국가경찰위원회의 심의 및 의결 절차를 무시했는지 적확하게 짚고 있다. “민주적 방안에 대한 이해 없이 무작정 통제의 권력만을 일원화”할 따름인 이번 경찰국 신설은 과거의 과오를 딛고 만들어진 법적·행정적 조치를 단숨에 허물어 버렸다.
지난 대학원신문에서 가장 주요한 논의라 할 수 있는 3면 쟁점인터뷰의 대우조선 파업 건도 마찬가지다. 적실하게 서술되어 있듯이 “법과 제도로 고용 관계를 규제하지 않으면 노동력을 무한 착취하는 구조”의 재생산을 막을 도리가 없다. ‘용접 노예’로 전락하고 만 조선소 하청노동자 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장애인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주변화된 존재들의 파업은 일차적으로는 당사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해 주지만 결과적으로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구동력을 만든다. 51일 만에 간신히 협상안에 도달했다고는 하나 하청노동자들에게 돌아온 건 1천억 대의 손해배상청구와 ‘불법 파업’이라는 정부의 자비 없는 낙인이었다. “그 많은 배는 누가 만들었을까?”라는 전국금속노동조합 언론부장 장석원의 질문은 모두가 알지만 외면하고 있는 질문이다. ‘불법’이라는 그 손쉬운 두 글자로 말이다.
다시 유현수의 글로 돌아가 볼까. 나는 차별의 문제를 법제화하는 것과, 위태로운 미시적 개인들이 스스로의 ‘정동’을 경계하며 누더기 같지만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는 연대를 이어나가는 것은 양립 가능하다고 본다. ‘차이’와 ‘차별’은 ‘누가 무엇을 평등하다고 여기는가?’라는 질문에 의해 맞물려 있는 개념이다. 나와 타인의 수많은 차이 중에서 어떠한 특정한 것만이 ‘자연스러운’ 차이점으로 선별되는가? 머리 길이도 다르고 눈동자 색도 다른데 우리는 손쉽게 ‘장애인’이라고 호명하는 존재들을 솎아낸다. 어떻게 그럴까? 그렇게 선택된 어떤 ‘차이’가 ‘차별’의 시작이다. 국가의 차별 행태 중 하나는 상기한 ‘불법’의 낙인찍기와 구분 짓기다. 겉으로 저마다의 차이들에 우열이 없는 것처럼 가장해도 소용없다. 숙고 없는 ‘불법’의 낙인은 몇십 년의 파업과 투쟁, 그야말로 읍소의 현장들을 아주 가뿐하고 말끔하게 ‘테러’로 규정한다.
우리는 “한국사회의 폭력성과 잔인함”(5면, 「애도되지 못한 죽음에 작동하는 숭배와 적대의 정치를 개념화하다」)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다. 비록 “사상에 대한 무관심을 종용하는”(5면, 「식민지 조선 프롤레타리아 소설의 역사 인식과 주체」) 이데올로기가 침투해 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아니 그럴수록 우리는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5면, 「과잉결정과 과소결정, 그리고 ‘어떻게’의 문제를 사고하기」)라는 중심문제 안으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 1에서 한여진 경위는 이런 말을 한다. “저 사람들이 죄다 처음부터 잔인하고 악마여서 저러겠어요? 하다 보니까, 되니까 그러는 거예요.” 내겐 이 단순한 표현이 자꾸만 필요해진다. 나는 표절을 해놓고도 뻔뻔스럽게 자신의 죄를 멋대로 사하여주는 아무개처럼 살고 싶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죄 없는 자들을 불법 테러리스트로 만드는 꼴을 눈감아 줄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 장애 운동에서 사용하던 슬로건 “Nothing About Us Without Us”를 그래서 재창한다. ‘불법’ 딱지로 밀려난 사회 구성원들이 완전하고 직접적인 참여로 직접 ‘법’의 문을 밀고 들어갈 수 있기를. ‘법’의 칼이 정의롭게 벼려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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