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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견디며 기다리기: ‘그날’을 생각하며 본문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박사수료 이선영
서관 목련이 캠퍼스의 명물인 것은 다른 나무에서는 이제 막 꽃봉오리가 피어나려 할 때 그곳에서는 하얀 목련잎이 흐드러지는 까닭에서이다. 학교 구성원이라면 노소를 막론하고 매년 봄마다 목격하는 장관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美쳤다’는 수식어가 무색하리만큼 다른 꽃들이 서관 목련을 뒤따라 앞다투어 만개한다. 지난 5월 호 8면의 과학 칼럼에서 다룬 때 이른 개화, 동시다발적인 개화를 캠퍼스에서도 체감한다. 이상 징후를 감지한 이가 필자만은 아님은 강사 칼럼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서관뿐이 아니다. 지구 곳곳에서 관찰되는 기후 변화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대책이 필요한 ‘위기’로 인식된 지 오래다. 위기감이 고조됨에 따라 악화되는 상황을 조금이나마 저지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다양한 형태로 확대된다. 포장 용기를 제공하지 않고 손님이 다회용 포장 용기를 지참하도록 하는 디저트 가게도 있고, 분리 배출한 페트병 수만큼 현금으로 환급해주는 어플도 있다. 여기에 더하여 채식도 기후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실천 방법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원우칼럼에서 설명하듯 동물을 사육하는 과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전체 온실가스의 18%를 차지하기에 모두가 함께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기후 위기에 유의미하게 대처할 수 있다. 실제로 축사의 온습도를 유지하고, 동물을 도축하여 이동시키는 데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쓰인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채식의 이유로 주로 동물권 문제가 언급되었다. 지금이 수렵 시대여서 생존을 위해 육식을 하는 것이 아닌 바에야 동물을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하고 도살하여 섭취할 권리가 인간에게는 없다는 견해다. 이에 맞서 어차피 인간은 잡식성 동물인데 육식이 그리 큰 죄냐는 의견이 대립각을 세웠다. 그런데 후자를 견지하던 사람도 기후 위기에 대한 대처라는 이유 앞에서는 당당하게 육식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다. 기후 위기는 그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는 일상적인 문제이며, 연대 책임을 져야 하는 보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가 채식의 저변을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그간 채식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달라졌다. 이제 채식은 유난스러운 ‘취향’이라기보다 존중받아야 할 ‘신념’으로 받아들여진다. 비건 식당이나 비건 메뉴도 예전보다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두유 등 식물성 대체 우유를 요청할 수 있는 카페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기가 수월하지는 않다는 것에 모두 동의할 것이다. 특히 타인에 관심이 많고 어느 정도의 단체 생활이 불가피한 한국 사회에서 채식을 고수하기란 쉽지 않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홀로 꿋꿋하게 신념을 지켜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갖은 어려움을 감수하여도 내년 봄에 어김없이 비슷한 시기에 피어날 목련과 철쭉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3면의 동물 실험 사례를 떠올려본다. 관례라는 이름으로 답습되는 행태에 의문을 제기하고 환경을 바꿔나가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심지어 동물 실험에는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에 문제 제기가 더욱 어려웠으리라. 그러나 불가피하다는 이유로 문제 상황을 외면했다면 대체 실험에 대한 모색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었기에 대체 실험 개발에도 주의가 기울여졌고, 2008년에는 권고 수준에 이르렀던 관련 법이 이후 구체적 시행 방안이 마련되고 동물 실험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기관이 수립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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