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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혁명’할 수 있게 해주소서 본문
‘혁명’할 수 있게 해주소서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윤희상
조용할 날이 참 없다. 모든 것으로부터 외따로 비켜나서 바람 한 점 일지 않는 고요에 머무는 일, 그런 죽음의 정태(靜態)야말로 종말의 풍경일지 모르지만, 때론 모르쇠로 일관하며 어딘가로 숨어 들어가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그러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눈이 버쩍 뜨이고 귀가 쫑긋 세워지는 이유는, 아직 가슴 속에 분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후기를 쓰기 위해 2021년 12월호 신문을 찬찬히 읽으며 연상되는 것들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분노로 가득한 나를 만났다. 여느 때건 독자로서 긍지를 느끼게 하는 대학원신문이지만, 지난 호는 특히 규모 있는 굵직한 기사들이 많았다. 연말도 이토록 시끌시끌했구나 되새기면서, 어쩌면 나의 관성화된 구조적 독법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지난 호 신문을 통해 두 개의 상반된 풍경을 보았다. 하나의 풍경이 비유적인 의미에서 자신을 내려놓지 못한 자의 쇠락과 침몰로 빚어져 있다면, 다른 하나는 그 침몰의 여파에도 굴하지 않고 이야기를 쌓고자 애쓰는 작지만 다양한 주체들의 애정으로 마련되어 있다. 그 애정은 또한 우리의 “저항의 자원”이기도 하다.
작년 연말은 노태우와 전두환이 죽은 시기다. 전두환의 죽음은 기억해주어야 할 만한 것이 못 되어서, 부러 뇌리에서 지웠더랬다. 지난 호의 7면 사설 「전두환이 죽었다」와 기자칼럼 「그대의 죄는 심판되었다」에서 새삼 ‘그’의 죽음과 만났다. 두 글은 그의 사망이 “분노보다는 허망함을 느끼게” 했으며, ‘그’는 “역사가 아니라 현재”에 의해 이미 심판되었음을 지적한다. 무엇보다 “그가 끝까지 인간답지 않은 사람이라 다행”이라 토로하는 사설의 종지부가 날카롭다. 전두환은 악의 덩어리였던 탓에, 분노를 쏟아주기에도 아깝다.
전두환이 끝까지 악인인 채로 사라졌다면, 살아 있는 어떤 이들은 무능과 아집과 위선으로 칠갑을 한 채 침몰해간다. 1면의 「국민의힘 경선으로 본 보수 정치의 현주소」에서는 작년 11월 5일 치러진 제1야당 국민의힘 경선의 성격과 그 영향 등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지만, ‘비호감’ 대선을 앞둔 지금으로서는 윤석열 후보를 경선 내 승리자로 이끈 “변화를 갈망하는 사회 흐름”이란 게 대체 무얼까 의문스럽기만 하다. 혹자가 말하듯, 그를 지지하는 ‘당심’이란 결국 ‘식물 대통령’을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명분을 만들기 위함이 아닌지. 윤석열이나 국민의힘 또한 결국 역사가 아닌 ‘현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앞선 두 인물과 동층위의 침몰은 아니지만, 이번엔 한 명의 ‘원로’의 침몰이 있다. 우선 그의 이름은 5면 「다시 읽는 사회구성체 논쟁과 그 의의」에서 염동규가 소개하고 있다. 이진경의 전설적인 저작 ‘사사방’은 염동규가 정리하듯 80년대를 넘어 90년대 초까지 한국의 지성계를 휩쓸었는데, 그랬던 “사회구성체 논쟁이 이렇게 회피되거나 단죄되는 건 (...)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과제를 위한 유용한 자원을 상실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염동규의 지적은 재차 유념해 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데 사회구성체 논쟁을 현재적 맥락에서 재검토해야 할 바로 이 시점에, 정작 이진경은 사회구성체에 대한 분석을 내팽개치고 자기 자신을 등진 모양이다. 이진경의 칼럼에 대한 반론 기고에서 논자는 이진경을 비롯한 쇠락한 ‘진보’ 지식인들이 “너무나 쉽게 정치적 부족주의의 논리에 편승하며 (...) 적폐세력의 악마화라는 앙상한 레토릭만으로도 혁명이 완성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차태서, 「탈진실의 시대 우상의 몰락」, 《경향신문》 2022.02.09.). 무엇을 위해 어떤 지식을 어떻게 재생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손에서 놓은 듯한 그는 더 이상 “우리 시대의 사유를 통해 우리 시대와 대결”하지 않는다(5면, 「‘자유’의 교차로에서 헤겔과 맑스를 보다」).
내려놓지 않고 휘두르기만 하는 무모한 이들의 세계 속에서 우리들의 작고 소중한 애정들은 파훼된다. 스스로의 하잘것없음을 시인하지 못하는, 분리주의적 계몽주의에 빠진 수많은 ‘원로’들의 쇠락과 침몰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민중들을 주저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또 하나의 풍경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6면의 규모감 있는 학술동향 기사가 학술적 차원에서 집합적 민중으로 일관될 수 없는 행위자들을 주목한다면, 2면과 4면에 담긴 목소리들은 보다 실제적 차원에서 남겨진 우리들의 소망과 결의와 실천을 보여준다. 어떤 강사는 “제대로 된 끝을 경험하기 위해 다시 시작의 불씨”를 키운다(2면, 「아쉬움이 마지막에 닿을 때까지」). 박사논문의 대장정을 마친 김미연 선생님은 “함께 고민해주는 동료의 힘”의 월등함을 속삭여준다(4면). 2면의 「대학원 생활과 인류애의 상관관계」로 거슬러 올라가면 가슴은 더욱 부푼다. 익명의 원우는 실망의 뒷배경에 애정과 기대가 있다는 진리를 짚으며, 자신과 다른 이들의 “이 지긋지긋한 애정이 (...) 더 이상 다른 이유로 시험받지 않기를” 청한다. 나는 이 글에서 힘에 부칠지언정 계속해서 사랑하고 또 꿈을 꾸고 싶은 필자의 마음이 읽혔다. 아니, 그건 나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한계가 있더라도 굴하지 않고 사랑을 하고 싶다. 나만을 위한 사랑이 아닌, 도처의 삶들의 혁명이 될 사랑을 하고 싶다. 그러니, 혁명하는 우리들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 우리는 혁명의 이야기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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