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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대학원 신문, 고민의 실마리를 찾게 하다. 본문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예술학과 석사과정
전윤서
아니, 대학원 신문이 있다고? 이 소식을 접하고 내가 속한 대학원 홈페이지에서 급하게 대학원 신문이 있는지 확인을 해봤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학부생들이 운영하는 교지는 있었지만 대학원 신문이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학과에서 원우회 활동을 하는 친구 말로는 학과 내 자체적으로 뉴스레터를 만들고 배포하고 있긴 하지만 교내에서 공인된 신문은 따로 없다고 했다. 대학원생에게 유용하고 꼭 알아야 할 소식을 들려주는 이 신문이 반가웠다. 누군가 언론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가장 변두리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다고 했다. 어느 약한 자들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게 애쓰는 고대대학원신문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후기를 몇 자 올리도록 해본다.
우선 신문 1면에서 다룬 다물어 클럽은 나에게 참으로 유용한 소식이자 희소식과도 같았다. 막연하게 OTT 서비스로 예술을 다룬다면 관심 있는 사람이 있을까 상상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는 인문학 지식 스트리밍 서비스를 실행으로 옮기고 있었다니. 후다닥 둘러 본 ‘다물어 클럽’에는 문학, 예술, 철학, 과학, 역사 등 다양한 콘텐츠가 마련되어 있었다. ‘다물어클럽’의 김재원 이사의 말처럼 수능이나 고시 준비 위주의 강의에서 벗어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킬 강의가 구비되어 있었다.
이어지는 면에서는 민주주의, 그 어렵고도 어려운 정의에 대해 깊게 고민하게 했다. 개인적으로 지난해부터 우리 사회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들을 둘러싼 반응을 보며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대의를 위한 희생은 어디까지 수용될 수 있을까.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시민독재란 무엇인가. 어지간히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질문들이다. 흔히 교과서에서 따분하게 배운 민주주의란 아테네 광장에서 태동한 직접 민주주의를 기원으로 한 단편적인 맥락을 떠오른다. 95년생인 나에게 민주주의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당연하게 누리는 이것이 격렬한 투쟁으로 우리가 얻어낸 것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말이다. 지난 6월호에서는 가까운 나라 미얀마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 운동에 대한 기사들이 실렸다. 아시아연구소 엄은희 선임연구원은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고, 부패는 내분을 낳는다”고 말했다. 내분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것으로 돌아온다. 미얀마는 아픈 손가락 같은 나라이다. 동남아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만난 버마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타국 대도시로 유입되어 자국민이 기피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언어가 통하진 않았지만, 그들을 향한 시선과 말투, 행동 하나도 곱지 못하고 냉랭하기만 했다. 폭력과 차별은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한다. 아름다운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오랜 내분으로 인해 파생된 고통을 받고 있다 생각하니 착잡한 심정이다.
지난 호는 사회에 팽배한 문제를 그저 문제라고만 치부하지 않고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내가 찾은 실마리는 참여와 공감이다. 먼저 성취한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으로서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대에 동참하는 것만으로도 투쟁을 이어나갈 사람에게는 힘이 된다. 또한 어느 시간강사의 칼럼은 내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다. 14년 동안 제정되지 못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바로 역차별이다. 이에 대해 어느 시간 강사는 그를 꼭 껴안아 주고 싶다며 “역차별의 프레이밍을 벗어내면 결국 ‘차별’의 하나일 뿐이다. 내 피해가 억울하다면 타인의 차별도 들어보자.”라고 말한다. 갈등에 이해와 공감이 선행되어야 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경제는 또 어떠한가. 사회적경제와 사회적기업을 연구한 박정민 박사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빨갱이 취급을 받았지만, 그가 설명하는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경제는 멀리 있거나 색채를 지닌 것이 아니었다.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의 제품은 불매운동을 펼치는 방식으로, 기업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독려시킨다. 이렇듯 경제는 한번도 시민사회의 참여와 공감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인종, 종교, 성별, 장애, 돌봄, 여성, 노동 그리고 차별과 폭력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당사자가 있다. 그들의 작은 목소리를 모두 수용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겠다. 하지만 대의를 만들어가는 그 시작에는 참여와 공감이 있어야 할 것임은 틀림없다. 원하는 것, 불편한 것, 그래서 필요한 것을 분명하게 요구하는 것에서 시민참여가 시작된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 듯하지만 시나브로 변화하고 있다.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이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작가 엘리 위젤(Elie Wiesel)은 사랑, 예술, 삶의 반대는 증오나 추함, 죽음 따위가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말했다. 세상의 모든 사랑과 예술과 삶이 사라지지 않게 관심을 두었으면 한다. 작고 소외된 대학원생의 목소리를 실어 준 고대대학원신문에도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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