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풀벌레들의 작은 목소리를 생각함 본문

7면/대학원신문 후기

풀벌레들의 작은 목소리를 생각함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1. 6. 3. 13:23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 석사과정 김사라

 

  5월이라 아직은 이른데도 날이 부쩍 더워져 그런지 한밤중 창을 열어놓으면 작은 풀벌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라. 그네들의 복잡다단한 생의 문제들이 어느새 나에게 전해져 함께 고민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한낱 미물이라 할지라도 온 힘 다해 소리를 높여 우는 데에는 다 까닭이 있다. 왜 하필, 지금, 내 창에다 대고 우는 것인지 당장은 알 길이 없어도 언젠가 수심(愁心) 깊은 밤, 한 자락 위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무릇 산다는 것은 두고 볼 일이다.

 

  이번 5월 호에는 특히나 다양한 목소리, 즉 타자에 대한 수용과 새로운 이해가 주요 테마로 보인다. 지면을 읽어나가는 동안 김기택 시인의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이라는 시가 가슴속에 가득 찼다. 시인은 말한다. 현란한 빛을 뿜는 브라운관에서 멀어져, 가만 귀 기울여 보면 별빛이 묻어 더 낭랑한 소리들,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 마음들이 들린다고. 문명의 이기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발뒤꿈치처럼 두꺼워진 우리의 귀, 그 단단한 벽에 부딪혀 되돌아간 소리들의 회복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번 호가 더욱 반가운 이유이다.

 

  3면의 기획 기사에서는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위한 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봄과 동시에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어려워진 현실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2001년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 추락 참사 이후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오랜 싸움 끝에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 확대와 저상버스 보급 등을 이루어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뿐 아니라 비()휠체어 장애인들의 이동을 보조하는 시스템 역시 너무나 미흡하다. 게다가 최근에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한 활동지원 서비스 제한, 대중교통 감차 등으로 많은 장애인들이 이동에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 위험 속에서도 우리의 일상은 계속되기에, 이를 위한 고민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6면에는 동아시아연구소 냉전평화연구센터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미군의 한국전쟁 및 냉전 영상에 관한 글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냉전의 시대 속에서, 영상은 이른바 대량 설득 무기로 쓰이며 사상 심리전에 적극 활용되었다. 이 영상들 속 피사체로서 등장하는 한국인 주체의 목소리는 미군의 시각과 목적에 의해 필연적으로 왜곡, 또는 삭제되었기에 영상 속에 담긴 전쟁, 전후 세계를 있는 그대로의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7면의 사설에서 설명된 문학비평 용어 믿을 수 없는 화자’(Unreliable narrator)라는 개념과 비교하여 생각해 보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하게 다가온다.

믿을 수 없는 화자란 작가가 의도적으로 작품 속 화자를 나이가 어리거나,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 등으로 설정하여 화자의 눈을 통해 보이는 세계를 신뢰하기 어렵게 만드는 장치이다. 따라서 작품 속의 화자가 믿을 수 없는 화자로 설정된 경우, 독자들은 화자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숨겨진 의도가 없는지 비판적으로 점검·확인하며 텍스트를 이해해야 한다.

 

  작가가 작품 속에 믿을 수 없는 화자를 내세워 발생시킨 구조적 아이러니는 독자가 적극적으로 세계의 진실을 파악하도록 촉구함으로써 비판이나 공감하는 등의 문학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반면, 냉전 영상은 이를 역으로 뒤집는다. 목적하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피사체를 취사선택하여 담아내고, 이를 편집한 것을 진실로 위장하는 것이다. 이때, 전후 공간에서 현실을 살아가던 진실된 주체가 편집자의 의도에 따라 믿을 수 없는 화자로 전락해버리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가슴 아픈 역사의 순간, ‘타자화된 주체로 박제당한 이들의 목소리를 해방시키고 회복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렌즈에 미처 담기지 못한 진실에 다가가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끝으로, 이번 호의 1면을 장식한 것은 대학원 혁신센터의 출범이었다. ‘교육 기능 강화학생 성공에 역점을 둔 프로그램을 운영·기획할 것이라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학생 맞춤형 원스탑(One-stop) 서비스와 다양한 경력개발 프로그램 등의 전폭적인 지원 계획을 밝히고 있는 만큼 대학원 혁신센터에 대한 원우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오늘도 버티는 삶을 살아가기에 급급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하는 원우의 조언이 사뭇 얹힌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학기, 곧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원우들의 삶이 보다 편안하고 안정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학생 성공보다는 학생 안정(安定)’이라는 기치 아래, 연구에 안정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토대 마련을 위한 고민과 분담이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가슴앓이하며 우짖는 풀벌레들의 목소리에 깊이 공감하고 반응하는 혁신의 고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풀빛으로 물들어 애틋하기만 한 5월 리뷰를 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