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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Your body is a battleground 본문
홍익대학교 미학과 석사
박서희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에 적응하지 못한 몸이 조금 굳은 듯 했다. 덩달아 생각도 조금 굳었다. 나의 더움을 유지하는 것이 시급해진 탓에 다른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움츠러든 등에서 겨우 뻗은 목은 코앞에 닥친 문제들만을 보았다. 10월호를 읽으며 비로소 굽은 어깨를, 긴장하고 있는 날개뼈를, 미처 중심을 잡지 못한 단전의 상태를 감각할 수 있었다. 자신의 문제를 넘어서서 척추를 곧게 뻗고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하나의 신체로서 지면에 가득 수놓인 사람들을 보며.
자신이 주목한 문제에 더욱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는 이들은 ‘근본을 세우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는 공자의 본립도생(本立道生)을 언급한 어느 대학원생의 말처럼 하나같이 어떤 본질에 다가서기를 촉구하고 있었다. 다양한 소속과 국가 출신의 여성들이 설립한 국제민주여성연맹이 당시 미국 정부의 공작으로 친소련 공산주의 여성단체로 비난받으며 세력을 잃게 된 것처럼 본질이 왜곡되기 너무 쉬울 뿐 아니라, 메타버스(metaverse :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 가상세계로 가공·추상을 의미하는 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universe의 합성어, 시사상식사전)에서 부캐의 형식을 띤 새로운 정체성을 통해 능동적으로 왜곡된 본질을 유희하기까지 하는 시대에 우리가 찾을 수 있거나 찾아야만 하는 본질은 무엇인가, 과연 그 근본으로 다가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대하여 ‘아프간 국민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미국과 탈레반을 경유하지 않는 우리만의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유달승 교수의 말처럼, 어쩌면 본질과 근본이란 각자의 근본, 각자의 덕, 자신의 본질에 있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어느 특정한 본질에 안정적으로 속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고 지키려 노력하는 디아스포라적 경계인이 어쩌면 우리 본성의 모습인 것은 아닐까. 고요히 한 곳에 머무르며 자신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허상을 좇는 것이고, 본질을 잃은 상태인 것은 아닐까. 샘 멘데스의 영화 <1917>을 보고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생사의 전율이 고동치는 삶을 느끼고 싶다는 괴상한 환상에 젖은 적이 있었는데, 바바라 크루거의 이미지 위 글귀 “Your body is a battleground”처럼 사실 전쟁터는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개인의 관심에서 비롯된 본질이 극단적인 이슬람주의를 근본으로 한 탈레반, 인도주의를 표방한 서구 열강과 산업화를 명목으로 내세운 일본 제국주의와 그 부산물 등에 저항할 힘이 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았다. 개인이 다가설 수 있는 문제와 그에 대한 관심사가 어떻게 거대한 담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가. 그것이 가능하지는 않을지라도 다만 우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인천조병창을 ‘네거티브 헤리티지’로 보존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처럼 이러한 역사들 또한 각자의 본질에 다가서기에 필요한 것으로, 경계 짓는 것과 경계를 허무는 것과 내가 움직이고 있는 궤적을 돌아보기 위하여 냉정하게 직시하고 분석하는 태도가 필요할 것 같다.
『냉전의 마녀들 : 한국전쟁과 여성주의 평화운동』의 저자 김태우씨가 독자들에게 들은 말처럼 ‘부끄럽게도’ 10월호 기사에 실린 많은 내용들을 제대로 알거나 이해하지 못한 채로 지내고 있었다. 생각보다 가까이에서 일어난 일들이 꽤 많았는데도, 자신의 연구와 함께 살아내기 바쁜 대학원생들이 으레 그렇듯이 나 또한 자신의 문제에 취해 이 와중에도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모든 일들을 언제나 인식하고 나의 일처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일이라고 해결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개인의 관심사는 맛있으면서 기능적이기까지 한 막걸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가차 없이 들이닥칠 대학 구조 조정의 도피처가 되는 모교에서의 달콤 씁쓸한 망각에서 한 시간강사 스스로를 구해내기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물음을 던지며 안주하지 않고자 고민하는 ‘침묵을 감득하는 법’이라는 글의 침묵하지 않는 실천으로 움츠러들어 있던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기도 한다. 고개를 들고 글을 쓰게 한다.
기자 및 기고자의 마지막 문장들이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이고, 주목하고, 이에 대해 더 많이 대화하고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 역설하는 것처럼 모든 것은 작고 미미한 개인의 관심부터 시작된다. 작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다른 곳에 관심을 갖는 것보다 중요하고 가능한 유일한 실천이라 생각해왔는데, 그게 일종의 ‘한계 짓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천의 확장성에 대하여 고려할 수 있는 감사한 계기가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원 신문 10월호와 집필진이 나를 부끄럽고 고맙게 하는 것이었다. 이미 익숙해진 추위를 직시하며 옷깃을 여미고 척추를 뻗고 걸어 나가게 하는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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