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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모든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위하여 본문

7면/대학원신문 후기

모든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위하여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0. 12. 10. 15:18

7면 좌측상단 대학원 신문을 읽고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권진경

 

모든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위하여

 

  이번 호 3면의 기획 기사는 전태일 열사가 분신자살을 한지 50년이 지난 현재의 노동 현실을 반추해보고자 전태일3을 주제로 다루었다. 하지만 여전히 노동문제는 산재해있고 우리 사회와 재판장의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근본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고, 하청의 하청인들이 오롯이 그 피해를 입고 있다. 교묘한 꼼수로 마땅히 제공해야 할 복지와 권리를 빼앗고 그릇된 이익을 추구하는 행태로 인한 사건 사고가 표면 위로 드러났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여전히 늑장 대응과 무관심, 외면으로 일관되고 있다. 가장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근로기준법상시 5명의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압장에 적용하기 때문에 모든 근로자가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는 본 취지에 어긋난다. 글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한국 전체 기업의 65%5인 미만으로 구성된 상황에서 근로기준법은 고용주가 보장해야 할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지 않도록 조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7면에서 최저가 보장이라며 우스꽝스럽게 표현된 노동법 위반 벌금은 노동 현실이 얼마나 이익만을 위주로 돌아가고 있으며, 제도는 이를 얼마나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개봉하여 당시 실제 있었던 기업의 위법행위를 폭로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가장 싼 값을 좇아 달려가면서 사람을 부품으로 사용해버리고 노동자들에게 줄 마땅한 대가보다 훨씬 값이 싼 벌금을 대신 지불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 8면에서 주식 성공 신화를 꿈꾸면서 당장의 고통과 욕구를 참아가면서 목매는 이의 존재가 그려진 것은 당연하다. 일반 서민들은 꾸준한 노동만으로는 아무리 저금을 하고, 적금을 들고 발버둥을 쳐도 결국 더 나은 형편으로 자리 잡지 못하는 현실에서 한탕을 꿈꾸면서 주식에 매달리게 된다. 주식을 통한 이익 창출이 저임금, 저금리 시대의 현실 타개 방법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개미 투자자들은 주식 대박보다는 원금 상실이나 주객전도의 상황만을 맞이하는 경우가 더 빈번한 것이 또 다른 현실인 셈이다. 정당한 노동이 안정된 미래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일반 서민들의 생활은 결국 형태만 다른 고통과 압박에 시달리게 되었다.

  한편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비대면이 생활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러한 삶의 모습에서 소외된 이들이 있다. 이러한 대표적 사례가 배달부(라이더)이다. 극심한 노동강도에 시달리게 되면서 명백한 과로사로 보이는 배달부의 사망소식이 들려오는 빈도가 코로나 이후 더욱 높아졌다. 신속배달을 한국의 문화이자 자랑으로까지 소개하는 상황에서 그 문화를 이끄는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배달부들은 죽어가고 있다. 3면의 기사는 익명의 라이더가 쓴 현실의 고충을 담고 있다. 특히 과도하게 높은 보험료로 인해 보험을 가입하지 못한 채 혹은 일반보험만을 가입한 채 일을 하다 사고를 당한 이들이 영업을 위한 운송보험을 가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회사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고용유연성을 이유로 제대로 된 보장을 받지 못하는 배달부들은 기업의 입맛에 따라 불합리한 처사를 받고 있는 셈이다. 이는 기형적인 사회구조적 문제를 외면하고 단순하게 개인에게 모든 잘못을 씌우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이다. 점차 증가하는 계약직, 비정규직의 비율과 함께 고용 사각지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시급하다. 결국 이는 3면에서 언급되어있듯이 가장 기본적으로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사용자인 기업을 비롯한 1차 고용자가 자신들이 떳떳하게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며 사업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히는 시기가 와야만 해결될 문제이다. 하루빨리 이 아닌 이 자신의 위치가 정당하다는 사실을 밝혀야만 하는 사회가 도래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번 호에 실린 여러 기고문에서 드러나듯 비정규직, 계약직 신분의 이들은 몰라서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라고 하는 회피적 태도에 휘둘려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문제상황을 회피하고 있는 처지에 놓인 경우도 많다. 이는 대학원생 조교 일자리와도 연관된다. 2면의 기사는 대학원생의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은 채 교수에게 착취당하고, 성폭력에 이르는 처참한 처사가 만연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동일 면의 기고문에서는 최저 시급이라는 급여에 비해 과도한 업무를 감당하고 있는 대학원생의 이야기가 담겼다. 대학원생들은 조교 자리를 구하면서 처음 시작부터 노동자들이 마땅히 받아야, 누려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포기한 채로 임한다. 소모품처럼 쉽게 갈아치워질 수 있는 불안정한 조교 자리에서 대체제 당사자인 조교는 쉽게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일 터이다.

  7면의 원우 칼럼에서 대학원을 걸음이 아니라 길이라 표현한 것처럼 대학원 알바 자리, 조교 자리를 위해 수많은 서류를 쓰고 그 위에 쓰인 내용만으로 재단 받고 있지만 대학원에 온 우리는 저마다의 꿈을 지닌 여행자로서 대학원이라는 학문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대학원생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일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말이다. 우리는 삶이라는 기나긴 여행의 길을 선택하는 주체이다. 돈과 노동에 사용되는 수단적 존재로만 치부되는 현실은 타개되고, 이 사회와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주체로서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가 도래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