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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알고 싶지 않은 것들’ 본문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석희진
3월 초 이제부터 뉴스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런저런 소식들을 볼 때면 차라리 먼지가 되어버리고 싶었다. 연예 뉴스나 건강 상식만 보겠다고, 이제는 정말로 세상에 관심을 끌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알고 싶지 않았다. 그 마음으로 이 신문을 펼치니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현재 내가 속한 거의 모든 곳에서 ‘아주 오랜 시간 지속된’ 문제들을 담은 3월호의 글은 20·30 여성, 유권자, 대학원생, 조교, 애매한 노동자 등 나의 중첩된 정체성과 정확히 맞닿아있었다.
특히 3면에 담긴 쟁점 기획, ‘수요시위 30년의 기록’을 통해 그 숫자가 가진 의미가 새삼 놀랍게 다가왔다. 1,531회라는 숫자를 쌓아 올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요시위를 지속할 수 있었던 무엇보다 중요한 힘은 ‘연대의 노력’이라는 이나영 이사장의 말이 인상 깊었다. 결국 피해자의 발화는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가진 다수,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모두의 삶과 이어진다. 인권 규범을 바꾸고 전시성폭력의 인식을 만들어 나가는 등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한편 국가, 집단을 연결하는 ‘공감과 감동’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내가 덧없는 다짐을 하는 그 순간에도 연대의 힘은 발휘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연구의 형태로 기록하는 일 역시 그 노력의 일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4면 장수희의 박사학위 논문 소개와 인터뷰, 3면 박상화의 기고문을 통해 다시금 알게 되었다. 제주 4·3 사건의 유족으로 한국 근현대사 속 국가폭력을 ‘사진’으로 연구한 5면의 저자 강성현과의 대화도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다. 이렇듯 오랜 시간 지속된 노력의 성과 내지는 마무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7면에 담긴 해고노동자 김진숙의 복직, 퇴직을 축하하는 메시지 역시 반가웠다.
다음으로, 대학의 등록금 인상은 1970년대 말부터 문제가 되어 왔다. 1989년 사립대 등록금 완전 자율화 조치 이후 2002년 국·공립대도 등록금을 자유롭게 책정할 수 있게 되면서 등록금의 과도한 인상이 문제되었다. 결국 2007년부터 ‘반값 등록금’에 대한 논의가 정치권에서 본격화되었으니 이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갈등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2면의 호원보도에서 알 수 있듯 학부 등록금 인상에 부담을 느낀 대학은 대학원생·외국인 학생에게 적절한 명분 없이 그 짐을 넘기고 있다. 동시에 어느 시간강사의 글, 원우발언대, 원우칼럼에서도 대학원생이 등록금, 연구 공간, 기본 생활비 문제 등 많은 부분에서 불안정한 지위를 견디고 있다는 것을 자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국립대의 교연비 오남용 감사 결과, 코로나19 시국의 대학 수업에 관한 소식을 보았을 때 과연 대학은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반문하게 된다. 학문후속세대가 안정적인 환경에서 공부할 수 없다면 대학원생은 자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되고, 이는 한국사회의 미래와도 연관된다. 이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집단적 움직임, 중장기 계획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히 느껴졌다.
3월의 소식을 생각해본다면 대통령 선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번 호의 기획인터뷰에는 사회 평등과 다양성을 말하는 언론 ‘닷페이스’의 이선욱 PD 인터뷰가 실렸다. 이 인터뷰를 읽으며 그 솔직함에 자못 놀랐다. 이선욱 PD는 심상정, 이재명 후보와 인터뷰를 진행했다는 성과에 집중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터뷰의 과정에서 들었던 뼈아픈 피드백과 이번 대선에서 주목받은 페미니즘, 차별금지법, 20·30 여성 의제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채 기획을 끝난 것 같아 아쉽다는 소감을 나눴다. 이렇듯 ‘말해지지 않은 현실’을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에 내보일 수 있도록 확장성을 고민하는 모습은 모든 언론이 지향해야 하는 바일 것이다. 혐오와 조롱, 비난으로 얼룩진 이번 선거와 관련된 7면의 사설, 8면의 기자 칼럼도 결과를 떠나 선거 이후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수 있게 하는 유의미한 시도로 읽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선우은실의 문학평론, 하은빈의 연극평론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하는 개인에 관한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개인은 서로의 고통을 완전히 알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이해하려 하고 그 속에서 각자의 그리움과 상실을 해결해나가는 것일 뿐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극작가 데버라 리비는 자신의 에세이집 『알고 싶지 않은 것들(Things I Don’t Want to Know)』을 통해 ‘알고 싶지 않은 것들’과 치열하게 싸워왔던 자신의 유년시절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획득하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누구도 차별이나 고통을 피해 갈 수 없듯이 알고 싶지 않지만 알게 될 수밖에 없는 것, 알게 되어야만 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구체적 사실로 인해 변화는 만들어진다. 이 지면에는 저마다의 목소리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담겨 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자신의 생각과 목소리를 찾아가게 될 것이다. 대학원 신문이 가진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알려주는 힘. 그것은 변화의 시작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없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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