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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이미지, 전쟁을 삼키다 본문
이미지, 전쟁을 삼키다
-‘2023년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통해 본 이미지가 현대전에 미치는 영향과 함의
지난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14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고 120여 명의 이스라엘인이 납치되자, 이스라엘 총리는 “적들이 지금껏 본 적 없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전쟁을 선언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지상군은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지구를 봉쇄하는 것을 시작으로, 병원, 난민촌 등 민간인의 주된 생활권까지도 공습하여 대대적인 보복을 강행했다. 그러한 이스라엘을 향해 휴전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한편, 전황이 트위터(현재 ‘X’), 틱톡 등 SNS를 통해 무분별하게 왜곡되어 전파되는 것에 대한 우려 또한 함께 들려 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나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국면에서는 허위 정보에 기반한 가짜뉴스가 ‘심리전(여론전)’의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전쟁의 판도를 뒤흔들고 있는 듯 보인다. 이에 본지에서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둘러싼 정치적·문화적 쟁점들을 짚어보고, 기존 전쟁의 형태와 전혀 다른 ‘이미지 전쟁’의 양상을 보이는 이번 전쟁을 종합적으로 살보기 위해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중동·이슬람센터 성일광 정치·경제연구실장을 만났다.
전쟁 발발의 배경과 양상의 변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희생이 발생한 충돌로 알려졌다. 이에 가장 먼저 이번 전쟁이 일어나게 된 구체적인 계기는 무엇이며, 이전의 제4차 중동전쟁과 가장 특징적으로 다른 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먼저 왜 전쟁이 일어났는가 대해서는 여러 답변을 드릴 수 있겠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하마스(Hamas)라는 단체는 기본적으로 ‘무장 투쟁’이 그들의 노선이자 존재 이유입니다. 이스라엘과의 무장 투쟁을 통해서 ‘독립’을 쟁취하는 것, 즉 자신들의 땅을 강제로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을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겠다는 것이 하마스의 목표입니다. 사실 한국에서 보기에는 전쟁이 갑자기 발생한 것 같지만, 하마스와 이스라엘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충돌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2023년이라는 시점에 전면전의 양상으로 비화되었는가 라는 것이 문제일 텐데, 이것은 국제정치적 측면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선 이스라엘이 최근 주변 아랍국가들과 화해하는, 일종의 ‘데탕트’ 무드가 형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2020년에 아랍에미레이트, 모로코 등 4개국과 관계 정상화가 진행되었고, 최근 2023년에는 아랍에서 영향력이 큰 사우디아라비아와도 논의가 오고 갔습니다. 그런데 사우디마저 이스라엘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기울게 된다면, 하마스를 포함한 중동의 판도가 크게 바뀌게 됩니다. 여기에서 이란의 국제관계가 중요한 문제로 부상합니다. 이란은 그렇지 않아도 중동 내 주류인 수니파와는 다른 시아파 국가인 데다 친미적 산유국에 둘러싸인 형세였는데, 유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더욱 고립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죠. 2020년대의 유화 국면에 더해 2023년의 이스라엘-사우디 간의 관계개선시도가 이란에게는 국가의 존망에 위협이 될만한 변화로 받아들여지는 듯합니다. 그래서 현재 추정하건대 하마스와 교감하고 물밑으로 지원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이란으로 보입니다.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그 이전까지의 제4차 중동전쟁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더이상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면서도 중요한 것은, 2006년 이후부터 벌어졌던 하마스-이스라엘 간의 분쟁과는 다르게 로켓 공습을 위주로 한 ‘국지전’이 아닌, 지상군을 투입하는 ‘전면전’의 양상을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에 하마스가 기존에 쓰던 로켓 공격과 함께 오토바이와 모터보트, 행글라이더와 패러글라이더 등 비재래식 무기를 동원하여 이스라엘의 영토를 직접 침범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실제 인명 살상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쪽 이스라엘인 마을 30개를 점령하고 개전 초기 10일 사이에 약 천 명의 주민들을 죽였고, 군인과 경찰이 400명 정도 희생되었습니다. 이전 중동에서의 ‘전면전’인 제4차 중동전쟁 전 기간을 다 합쳐서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해서 대략 2500~3000명 죽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물론 희생자의 숫자로 사안의 경중을 따져서는 절대 안 되겠습니다만, 전쟁 초기에 이미 희생자가 너무 많이 나왔다는 사실이 이스라엘은 물론 세계에도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죠. 국가 간의 전쟁도 아니고, 총원이 4~5만 명 많아도 10만 명 정도 밖에 안 되는 일개 단체에 의해서 한 국가의 영토가 침범당하고 실제로 민간인들이 대거 희생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면서도 전면전으로 비화된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이 전쟁을 ‘제5차 중동전쟁’으로 부를 것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현재까지는 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미지가 이끈 전쟁의 새로운 국면들
가자지구에서의 시가전은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각 측에 유리한 영상을 공개하면서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일종의 심리전인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진위를 알 수 없는 출처 불명의 보도가 난무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왜 이토록 치열하게 심리전을 펼치는 것인지, 그럼으로써 양측이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는지, 이스라엘-하마스 간 심리전의 배경과 그 의도에 대해 물었다
“현재 이 전쟁에서 심리전·여론전을 관통하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는 연출된 이미지입니다. 사실 전쟁에서 이미지를 동원하는 방식은 1990년대 혹은 그 이전으로 올라가더라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다만 SNS로 대표되는 각종 매체의 비약적인 발달로 정보가 실시간으로 확산되면서, 이번 전쟁의 관건이 심리전·여론전처럼 보이는 것이죠.
먼저 하마스가 기대할 수 있는 이미지의 효과는 일단 대외적으로 는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환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자지구에서 찍힌 참혹한 사진이 퍼지게 되면, 이것으로 인해 전쟁 자체가 중단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반발하거나, 휴전을 촉구하거나 하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되면 일단 ‘정상국가’로서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출구전략을 찾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중요한 현안인 인질의 송환문제만 보더라도, 전쟁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되면 인질을 돌려받지 못하고 휴전에 동의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또한 대내적으로 자극적인 이미지를 통해 군인들의 민족적 증오를 고양하는 것도 하마스가 거둘 수 있는 효과로 보입니다. 하마스가 찍은 잔인한 동영상, 사진 등은 대외적으로 선전될 뿐만 아니라, 텔레그램 등을 통해서 하마스 대원끼리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런 행위가 서로를 격려하거나 전의를 고취하는 심리적인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하마스 대원들은 제4차중동전쟁을 직접 경험한 세대가 아닌 10대에서 20대가 주축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맹목적으로 이스라엘을 악마화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극적인 이미지가 민족적 증오를 대물림하는 ‘효과적인 교육 매체’라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양측 다 이미지를 통해 선취하려고 하는 효과는 가해자-피해자의 이분법적인 프레임을 만들고, 거기에 스스로를 피해자로서 위치시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가해자이고, 우리는 피해자 또는 희생자라는 의식이 전쟁의 흐름에 실제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군인들의 사기를 고취하거나 국제적인 지지를 획득하는 데, 희생자 혹은 피해자라는 프레임은 상당히 주효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행보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우월한 위치와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이스라엘 역시 전쟁에 관한 여론을 강하게
의식하여 스스로를 희생자의 프레임에 넣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흐름만 놓고 본다면, 이스라엘은 이번 전쟁에서 ‘이미지를 활용한 전쟁’에서는 패배했습니다. 런던이나 뉴욕 등에서도 反이스라엘 시위가 열리고 있죠. 사실 비슷한 전쟁은 여러 차례 있었는데 이번처럼 전 세계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분리된 것은 처음입니다. 그리고 여론은 팔레스타인에 상당히 동정적이죠. 이스라엘이 부당하게 점령하고 있어서 생긴 문제이니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세워주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이렇게 당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하마스가 자행한 일은 민간인에 대한 대대적 테러입니다. 이스라엘의 업보, 혹은 팔레스타인인들의 기나긴 수난의 역사와는 별개로 하마스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베트남전쟁 당시에 반전(反戰)운동이 의미를 가졌던 것과는 맥락이 다릅니다. 하마스의 행위가 어떠한 해법이나 출구전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중동에 대한 관심과 이해, 정확한 정보를 토대로 해야
특히 이번 전쟁이 ‘이미지 전쟁’의 양상을 띠고, 허위정보가 양측의 갈등을 더더욱 부추기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대두하였다. 한국 정재계와 문화계, 언론에서는 이번 전쟁을 어떻게 수용·소비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견과, 그 수용 양상을 어떤 방향으로 개선하면 좋을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전쟁이 계기가 되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중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을 다루는 언론의 방식에 대해서는 다소 우려되는 면이 있습니다. 과감히 말씀드리자면 보도되는 사실에 대해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거나 또는 지금 이 전쟁을 뉴스만으로 과소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돌이켜보건대, 한국 언론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큰 관심을 가진 적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도되는 내용 또한 외국 언론사의 뉴스를 받아적는 것이 대부분이라 부정확한 정보가 무척 많습니다. 거기에 관련 전문가도 많지 않아서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이언돔은 이번 전쟁에서도 제 기능을 했지만, 국내 언론에서는 외신의 오보대로 아이언돔이 완전히 뚫려버린 것처럼 보도했습니다. 그러므로 관련 뉴스를 접하시더라도, 그것이 공식언론의 보도라고 맹신하기보다는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현재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왜곡된 이미지로 점철되어 있는 데다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갈등 또한 잠깐의 관심으로는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역사적 단층을 쌓아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한계점들은 앞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중동에 관심을 가지고 전문가와 교류하고, 공부한다면 차차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관우 기자 kw1045@naver.com
■ 조수아 기자 lovelove99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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