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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현행 국군의 날의 냉전적 기원과 전쟁 ‘기념’ 문제 본문

1면/기획 인터뷰

현행 국군의 날의 냉전적 기원과 전쟁 ‘기념’ 문제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11. 7. 20:21

현행 국군의 날의 냉전적 기원과 전쟁 ‘기념’ 문제

 

지난 926, 건군 75년 기념 국군의 날(101) 행사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2013년 이후 10년 만에 대대적인 도심 시가행진(서울 숭례문~광화문 일대)이 행해졌을 뿐 아니라, 현직 대통령이 시가행진에 직접 참여한 것이 처음이었기에 더더욱 주0목받았다. 이번 국군의 날 행사에 대해 대통령실은 국민과 함께하는 소통의 장이었다고 평가했지만, 일각에서는 도심 교통을 통제하면서까지 이루어지는 시가행진이 시대착오적이라거나, 북한의 열병식을 의식하여 냉전적 대립구도를 부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국군의 날의 기원과 그 의도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국가폭력 및 전쟁 기념의 문제를 연구해온 역사사회학자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를 만났다.

 

성공회대학교 강성현 교수 ⓒ 성공회대 홈페이지

 

 

국군의 날 행사의 변화상과 그 의도

이번 국군의 날은 2013년 이후 처음으로 서울에서의 시가행진이 부활하고, 대통령이 최초로 직접 시가행진에 참여하는 등 대대적으로 치러졌다. 이러한 국군의 날 행사의 변화상에 대한 의견과, 현 정부가 본 행사를 통해 구축하고자 하는 국군의 이미지는 무엇인지 물었다.

처음 국군의 날 행사가 진행된 것은 1956101(1회 국군의 날)이었습니다. 이때는 동대문 운동장에서 했고 그 다음에 세종로에서 잠깐 진행하다가, 나중에는 5·16광장(현 여의도공원)에서 기념식을 열게 됩니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에 국군의 날 행사의 권위주의적인 성격에 대한 비판이 일게 되면서, 정부 차원에서 행사의 횟수를 과감히 줄이게 되었습니다. 전두환 정부까지 매년 하던 이 국군의 날 행사가, 노태우 정부에 와서 3년에 한 번, 김대중 정부 때 취임식 때 한 번(5년에 한 번)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행사 장소도 육··공군 본부가 한데 모여 있는 계룡대에서만 하는 등 일반 시민들과 거리를 둔 곳으로 선정되었죠. 아무래도 열병식이나 군 무기가 대거 등장하는 퍼레이드들이 전쟁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에, 시민들에게 위압감을 주는 것들을 피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명박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고, 문재인 정부 때도 연예인 공연, 야간 에어쇼와 같은 버라이어티한 행사들로 시가행진을 대체했습니다. 그에 비해 이번 국군의 날 행사는 도심 한복판에서 대통령이 직접 시가행진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행해졌죠. 이는 명백히 시가행진의 군국주의적인 성격을 지우고자 했던 이전 정부들과는 다른 행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국군의 날 행사를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 의도를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통령실은 본 행사에 대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우리 군이 중앙청 건물 옥상에 태극기를 게양하며 서울을 되찾았던 곳에서 국군의 압도적 위용을 과시했다고 자평한 바 있는데요, 이 같은 발언과 이번 행사가 진행된 날짜를 고려했을 때, 현 정부는 6·25전쟁 과정에서의 9·28 서울 수복의 상징성을 재현하고, 거기에 우리 국군의 가치를 담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시 말해, 한국과 유엔군이 힘을 합쳐 북한에게 점령당한 수도 서울을 회복하는 날을 환기시켜, 공산주의와 싸우는 국군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죠.

동시에 현 정부가 일관되게 주창하는 ‘(공산주의와 싸우는) 자유민주주의국가는, 자유와 법치가 존중받는 국가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자유와 법치는 사상적인 개념으로서의 자유와 법치가 아니라, 공산-전체주의에는 존재하지 않는 반대급부로서 내세워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금 거칠게 말하면, 북한은 법에 의해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령의 지배에 의해 통치되는, 일말의 자유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이기에 그런 가짜민주주의에 대항해야 한다는 의식 속에서 자유와 법치가 강조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러한 맥락 속에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기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국군)’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현 정부는 공산-전체주의와 싸우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위치를 자임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국군이라는 정당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9·28 서울 수복을 환기시킨 국군의 날 행사를 추진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직 냉전이 끝나지 않기도 했거니와, 끊임없이 이러한 반공의식이 국군의 날의 의미와 가치로서 되새겨지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국군의 날의 기원과 기념양상의 함의: 냉전적 이념대립과 결부된 국군의 정체성

현재 대한민국은 101일을 국군의 날로 기념하고 있는데, 이는 당시 육군 3사단 23연대 3대대가 38선을 돌파한 날짜로, 그 기원부터 한국전쟁과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가 이러한 국군의 날을 어떻게 기념해 왔으며, 그것이 국군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쳐온 것인지에 대해 물었다.

“‘국군의 날은 대통령령으로 1956921일에 선포되었는데, 제정 취지를 보면 각각 따로 기념했던 육··공군의 기념일을 시간·예산의 문제로 인해 통합한다는 내용만 밝혀져 있습니다. 말씀해주신 38선 돌파와 같은 내용은 여기에 언급되어 있지 않죠. 그렇다면 왜 이러한 이야기들이 나왔던 것일까요.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육군 기념일의 전사(前史)를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입니다. 육군의 최초 기념일은 115(남조선국방경비대 창설일)입니다. 그러나 곧 102일로 바꾸죠. 육군의 기념일이 102일이 된 이유는, 1955102일이 북진 방공 5주년 기념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이 육군 제1회 기념일이 되고, 그 기념식에서 북진을 기념하는 육군의 날을 맞이하여 창군 10년의 빛나는 업적을 돌아보면서 () 후회 없는 38선의 돌파로서 우리의 통일 수원은 달성될 것이라는 선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러한 맥락에서 38선 돌파와 같은 이야기들이 나온 것이고, 3군 중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육군의 기념일에 맞춰 국군의 날을 제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후에 육군 3사단이 38선 위로 진격한 날짜가 102일이 아닌 101일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재확인되면서, 101일이 돌파일이라고 정정되고, 그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101일이 국군의 날이 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문민정부에서는 국군의 날 기념식의 군사주의적·전체주의적인 이미지를 덜어내기 위해 기념식의 규모와 횟수를 축소해 왔습니다. 특히 군부독재 시기 5·16광장에서 국군의 날을 기념했던 방식은 북한이 김일성 광장에서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즉 적대적 상호 경쟁(혹은 공존’)의 면모를 보인 것이기에, 이러한 것들을 확실히 줄이고자 지금까지 정부는 더 민주적인 방식을 고민해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국군의 날 행사는 그런 군사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이미지를 다시금 부각시켜, ‘자유민주주의국가의 목표를 반공주의로 재설정하는 상당히 퇴보적인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홍범도 흉상 관련해서도 국군의 뿌리를 광복군이 아닌 반공/일본 만주군 중심의 육군으로 설정했듯, 계속해서 정부는 국군의 정체성을 공산-전체주의 북한을 으로 삼는 우리(자유진영)’로 고정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국군의 본질적 역할에 비춰본 101일 기념의 적절성

국가의 유지에 있어 국군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해외에서도 전승절이나 창군일을 기념하는 것은 일반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국군 창설일을 101일로 조정하여 기념하는데, 이는 그 자체로서 현재 국군의 존재의의가 냉전적 대립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했을 때, 국군의 기원(창설)을 기념하는 국군의 날101일인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 물었다.

물론 서구에서도 전승과 창설 기념 관련 행사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군인들의 행렬이나 장비가 직접 등장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지는 않습니다. 유독 열병식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프랑스인데, 그 나라는 프랑스 혁명의 전통에서 전승을 기념하는 맥락이 있기 때문에 광복 이후 냉전의 흐름 속에 있는 우리의 경우와 또 많이 다르죠. 심지어 군사주의적인 나라인 미국에서조차,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퍼레이드 형태로 친근하게 진행합니다.

해외의 사례를 살펴봐도, 이렇게 군사주의적인 이미지를 전시하는 형태로 국군을 기념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저는 과거의 군국주의·전체주의적인 측면들을 탈피해 가면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문재인 정부가 국군의 뿌리를 광복군으로 설정하고 법·제도적인 기틀을 마련하고자 한 것처럼,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국군의 기원과 그 정체성을 제대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냉전적이고 호전적인 국군의 날(101)부터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요. 추후 남북 간의 관계가 개선되고 냉전적인 갈등이 완화된다면, 이 날짜는 조금 바꿀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 날짜가 좌우합작의 취지에서 우리 민족 역량이 총집결되었던 한국광복군 창설일(917)이라면, 진보·보수 관계없이, 더 나아가 남북 모두가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힘이 아닌 평화의 연장에서 기념하고 기억하기

국군의 날뿐만 아니라 국군의 기원과 정체성의 핵심에는 한국전쟁의 경험이 존재한다. 이러한 전쟁에 대한 기념을 탈피하여 그 대안으로서 평화를 제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이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할지 물었다.

전쟁을 기념한다는 것은 국가를 위한 죽음으로의 동원·희생을 전시함으로써 기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립묘지나 전쟁기념관, 호국보훈의 날로 명명된 6월이나 국군의 날까지도 모두 전쟁 기념이 시·공간으로서 표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사실 저는 이런 식의 에 상당히 회의적인 입장이지만, 현실적으로 이 기념표상들을 모두 없애자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급진적인 대안보다 우리의 공동체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수많은 이들의 뜻을 오래 기억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념물이나 기념일들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더 주효하리라 생각됩니다. 기념의 초점이 전쟁의 희생이 아닌 평화를 기억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조수아 기자 lovelove9928@naver.com

천관우 기자 kw10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