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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정치 테러의 가면을 쓴 병든 사회의 민낯 본문

1면/기획 인터뷰

정치 테러의 가면을 쓴 병든 사회의 민낯

Jen25 2024. 3. 9. 14:10

 

정치 테러의 가면을 쓴 병든 사회의 민낯

 

지난 12,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부산 방문 일정을 소화하던 중 60대 남성에게 흉기로 습격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25일에는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이 15살 소년에게 머리를 가격당했다. ‘정치 테러로 보이는 폭력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자 여야 모두 한목소리로 모든 폭력에 강하게 반대한다라는 입장을 밝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상대 정당을 향한 비방이나 범인의 정치 성향에 대한 각종 음모가 쏟아졌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여야가 하루빨리 극단적 대립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특정 세대, 집단을 막론하고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혐오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본지에서는 개인의 혐오 감정이 표출되는 양상이 정치, 그리고 한국사회의 특질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공진성 교수를 만나보았다.

 

조선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공진성 교수  ⓒ 인터뷰이 제공

 

 

테러라는 폭력의 특징

 

연초에 제1야당 대표의 흉기 피습, 여당 의원의 피습 소식이 잇따라 들려오면서 전 국민에게 충격을 준 바 있다.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이러한 연쇄적 폭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며,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정치 테러로 진단할 수 있을지 물었다.

먼저 테러는 물리적 폭력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공포를 퍼뜨리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누가 공포를 느끼는지가 테러의 실질적인 대상과 목적을 가리키게 되죠. 최근 일어난 두 사건이 정치 테러인지 판단하려면, 공격자가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를 의도했는지 혹은 그로 인해 공포가 유발되고 확산되었는지 우선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테러 행위는 연극과 같아서 행위를 전시하려는 의도가 내재해 있습니다. 그 행위를 보고 놀라는 사람들(관객들)이 궁극적인 공격 대상입니다.

이재명 대표 피습 사건은 테러보다 암살 시도에 가깝습니다. 시선을 의식해 자신의 행동을 전시하려는 의도가 없으므로, 상대적으로 은밀한 방식을 택하는 암살 시도로 볼 수 있죠. 행위자가 군중 사이에 자신을 숨겼다는 점에서 표면적으로는 테러범의 방식과 유사해 보이지만, 그것은 이재명 대표에게 가까이 가기 위해 택한 방법이었을 뿐, 민주당 지지자들이나 소속 정치인에게 공포를 주입하려던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 공격자의 행동에 공포를 유포할 의도가 포함되지는 않았다는 것이죠. 두 번째로 일어난 배현진 의원 피습 사건의 경우에서도 공격자는 폭력 행위를 전시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목표물이 누구였는지도 분명하지 않고 그 행위의 목적과 의도가 정치적 의미를 가지지도 않았죠.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 사건에 정치적이라는 수사를 붙이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가지 사건에는 피습 대상이 정치인이라는 것 외에 공통점이 없을 뿐 아니라, ‘정치적 테러라고 부르기 위해 필요한 요소, 즉 공포를 확산시킬 의도와 정치적 목적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폭력 행위의 기저에 있는 고립된 개인

 

일반적인 테러가 다수를 의식한 폭력 행위인 데 반해, 본 사건들은 혐오, 증오와 같은 타인과 사회 전반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한국의 정치사회적 면모들과 결합해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본 사건들이 일반적인 테러와 다른 점은 무엇이고 그 차이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물었다.

사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정치적 폭력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해방 이후 줄곧 여야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있었고, 식민지 시기의 아나키스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수단으로 폭력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물리적인 의미의 폭력이 아니라, 폭력에 의미를 부여하는 메커니즘입니다. 동일한 폭력 행위가 어떤 맥락에서는 의거·항거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맥락에서는 암살·테러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폭력 행위의 의미는 역사적·정치적 맥락에 따라 규정되게 마련입니다. 혹 사회에서 공공연한 테러가 자주 발생한다면, 그것은 폭력의 의미를 고정할 정치적 맥락이 불안정하고 사회 질서가 변하는 상황이어서 여러 의미 맥락이 중첩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일어난 사건은 그 폭력 행위를 해석할 정치적맥락이 오히려 부재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현대 유럽 사회에서 배제된 일명 외로운 늑대들에 의해 빈번하게 자행되는 테러가 보통 일반적인 테러라고 한다면, 이번 사건은 이 현상들과도 크게 다릅니다. 유럽의 테러범들은 완전히 고립되어 있기보다는 인터넷에서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가상의 공동체에 속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르기 때문이죠. 이렇듯 테러 행위는 자신의 공격을 통해 미래에 더 공고하게 유지될 커뮤니티의 가능성에 의해 정당화됩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가해자는 어느 정치적 공동체에 유대를 느끼거나 거기에서 자신의 행동이 정당화될 것을 기대하고 폭력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 파편화된 한 개인의 일면이 드러난 것에 가깝죠.

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피해자가 정치인이라는 사실보다 두 가해자가 고립된 개인이라는 점입니다. 이들은 유럽의 테러에서 볼 수 있는 외로운 늑대와 달리 인터넷 내부의 가상 공동체와 의견을 공유하지도 않았고, 일상생활에서 대면하는 이웃과 직접적으로 소통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두 가해자가 활용했던 맥락은 오직 자신들만이 이해하는 것이었죠. 자기 내부에만 있는 그 폐쇄적인 맥락은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만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가 범죄라는 사실을 결코 인식하지 못하게 합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것은 정치적견해 충돌이라기보다, 해체되어 가는 한국 사회의 민낯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넷 매체의 시대, 파편화하는 개인과 정치

 

고립된 개인이라는 문제가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 행위를 통해 한국 사회의 상태를 드러낸다면, 개인의 문제가 사회 문제로 확대되는 이러한 현상은 정치·사회적 흐름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은 것인지, 타인에 대한 개인의 감정 표출이 폭력으로 발현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물었다.

매체의 발달로 인해 사회를 바라보는 개인의 관점이 다양해지면서, 폭력 행위를 해석하는 사회적 맥락이 개인의 관점으로 축소·분화되는 현상이 고착되었습니다. 오로지 개인의 맥락만이 폭력 행위를 해석할 유일한 열쇠로 작용한다는 것은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는 공통의 의미 지평이 깨어졌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개인은 파편화되어 각자 다른 세계에 살고 있고, 사회는 각자의 지평을 통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들은 그에 대한 하나의 증거라고 볼 수 있는데, 이 폭력 행위들은 개인이 매체를 통해 얻은 유희적 맥락과 매체 밖의 비유희적 맥락이 충돌해 일어난 것입니다. 한국에서 매체의 발달은 신문-텔레비전-인터넷의 순서로 이어지는데, 활자를 매개로 민족성을 형성하여 국민을 동질화했던 신문의 시대, 텔레비전을 통해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텔레비전의 시대를 지나, 1990년대 후반부터는 모두가 인터넷에 접속해 있지만 접하는 내용은 개인별로 모두 달라지는 시대에 진입했습니다. 매체의 종류와 가짓수가 늘어나면서 매체끼리의 경쟁이 치열해졌고, 소비자 개인이 관심을 쏟을 대상은 많아졌지만 정작 개인에게 관심을 되돌려줄 대상은 없어졌습니다. 이번 사건들의 가해자는 극단적 고립을 벗어나려는 생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기 위해 각자의 맥락 속에서 스스로 매체 속 콘텐츠가 되고자 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정치인에 대한 폭력으로 표출되어 마치 정치적 현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본질은 어떤 행동의 의미를 똑같이 이해하게 하는 공통의 맥락이 사회 전체에서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회가 파편화된 것은 단기간에 기술 문명이 발전해서 생긴 아노미 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사회가 질적인 면에서 변한 것도 한 가지 이유입니다. 현대사회를 영웅이 없는 사회, 포스트히로익소사이어티(post-heroic society)라고 부르고 있기도 하죠. 자기희생을 감수하는 영웅적 마인드가 부족해져서 이를 만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개인은 언어적 전투성을 증대시켰고, 그 결과 양극화와 증오가 만연해졌습니다. 게다가 한국의 정치는 상대방을 포괄하는 큰 정치적 틀을 가지고 있지 않아, 집단을 규합하는 거시적이

고 정치적인 의도가 부재합니다. 그로 인해 개인의 고립과 사회적 해체가 더 심해지고 있고, 아마 이러한 상황 속에서 최근 사건들도 발생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 구성원 스스로 공통의 이해 지평을 만들어 가야

 

고립된 개인이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은 파편화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폭력의 형태를 넘어 보다 포용적인 사회를 형성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물었다.

매체를 발전시킨 기술의 힘은 강력해서, 그로 인한 개인의 파편화를 쉽게 막을 수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당과 야당 모두 폭력을 성토하고 있고, 피해자가 다른 정당의 구성원일지라도 이들에게 폭력을 가한 일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나마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폭력비판적인 태도가 우리 사회 전반에도 미세하게나마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이 폭력은 정치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러한 오인을 피하고 오늘날의 정치·사회적 현상을 정확하게 진단하려면 지식과 학문이 할 수 있는 일을 신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적인 관찰과 과학적인 인식을 통해 정확한 이해의 사례를 늘려가며 그 폭을 넓혀간다면 공통의 이해 지평을 확대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성이 사람들을 해체하기보다 통합할 수 있다고 믿었고 우리에게는 이성을 중시한 역사가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이 시대를 관통하면서 이성에 의해 억눌려온 부분을 복기하는 과정에서 감정을 지나치게 긍정하게 되었으나, 우리를 감정적으로 파편화하는 매체 환경 속에서 사회 구성원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의미 지평을 형성하려면 이제 다시 이성의 역할과 가치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 이성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재고해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수연 기자 shdltbqks@naver.com

조수아 기자 lovelove992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