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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건국전쟁>과 <파묘>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과 그 함의 본문

1면/기획 인터뷰

<건국전쟁>과 <파묘>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과 그 함의

Jen25 2024. 4. 4. 13:06

<건국전쟁> <파묘>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과 그 함의

 

지난 2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업적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건국전쟁>과 오컬트 영화 <파묘>가 개봉했다. 장르나 내용적인 측면에서 전혀 다른 특성을 갖는 이 두 영화는, 지난 26 반일주의를 부추기는 <파묘>에 좌파들이 몰리고 있다” <건국전쟁> 김덕영 감독의 언급으로 인해 동일한 선상에 놓이게 되었다. 그 파급으로 인해 일각에서는 전통적 풍수지리와 무속신앙을 결합하여 식민지기 역사를 다룬 <파묘>의 내용을 ‘반일’로 규정하기까지 하면서, 영화 자체에 대한 비평보다 이념적·정치적 대립을 초래하는 발언들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건국전쟁>의 반대급부로 <파묘>가 소환되는 이유를 살피고, 예술장르인 영화가 정치적 함의를 띤 채 소비되는 흐름을 구체적으로 짚어보기 위해, 영화에 나타난 이념 표상 문제를 연구해 온 영화사 연구자 남기웅 박사를 만났다.

 

아주대학교 다산학부대학 남기웅 강사

 

 

영화의 정치적 활용의 연원과 그 효과

 

영화는 관객의 시청각을 모두 자극하는 일종의 종합예술, 일찍부터 그 정치적인 기능이 주목받아온 바 있다. 예술의 한 장르인 영화가 왜 이념을 투영하는 도구로 기능하게 된 것인지, 그 역사적·정치적 배경에 대해 물었다.

원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영화는 원근법에 바탕을 둔 사실주의적인 재현을 목적으로 하는 예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감상하는 이들을 강하게, 또 신속하게 몰입할 수 있게 하죠. 프랑스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L'Arrivée D'Un Train À La Ciotat)>(1896)이 최초의 영화라고 인정받게 된 계기 역시 이 원근법을 활용했다는 데 있습니다. 마침 이데올로기의 시대로 접어드는 직전에 한 인간을 몰입시키는 이 영화라는 매체가 등장한 것은, 역사적·정치적으로도 매우 특기할 만한 사건이었습니다.

영화의 정치적 기능이 주목받게 된 본격적인 계기라고 한다면, 1922년 레닌이 우리에게 있어서 영화는 가장 중요한 예술이다라고 공언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영토가 넓고 문맹률도 높았던 당대 소련의 상황에서, 배우들의 몸짓과 편집된 이야기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정서적인 충격을 전달할 수 있고 또 그것을 얼마든지 복제해서 널리 전파할 수 있었던 영화는 굉장히 유용한 도구였던 것이죠. 소련에서는 영화의 매체적 특성을 간파하여 사회주의 이상을 구현하는 수많은 영화를 제작했고, 그 영화들은 실제로 엄청난 파급력을 보였습니다. 소련의 사례와 그에 의한 영향이 축적되자 영화의 정치적 기능은 세계적인 공인을 받게 되었고, 이후부터는 정치적 지향을 불문하고 전세계의 정치권력자들은 앞다투어 영화의 정치적 기능을 활용하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사회주의의 반대편에 있던 파시스트 정권, 나치 정권에서도 높은 수준의 프로파간다 다큐멘터리 영화들을 만들었으며, 과거 식민지기에 이토 히로부미도 일제의 통치를 옹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활동사진을 제작했던 것처럼, 각각 자신의 이념과 정치적 목적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영화를 이용했던 것이죠.

사실 이러한 점 때문에 영화는 이전부터 통제를 많이 받는 예술이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이 금지되었던 식민지기에는 영화와 영화관을 어떻게 이용하고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늘 대두되었고, 언제든 그것들이 국가 권력을 벗어나 사적으로(또는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엄격하고 치밀한 검열이 행해졌습니다. 이렇듯 영화는 그 시작부터가 정치적이었고, 다양한 이들의 다양한 목적 아래 만들어짐과 동시에 관리·통제되면서 지금까지 계속 그 자리를 지켜 온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민주화의 물결 이후 영화의 검열은 어느 정도 완화되었으나, 현재에도 대기업에서 제작하는 영화가 더 흥행하는 등 자본을 토대로 한 새로운 형태의 검열이 존재하고 있고 여전히 정치적인 목적 하에 영화가 활용되고 있는 경향이 이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건국전쟁>의 현재적 함의와 보수진영의 전략

 

<건국전쟁>은 실존인물의 생애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미화로 인해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이는 마치 해방 이후 권위주의 통치 시기 양산되었던 반공영화를 떠올리게 하는데, <건국전쟁>에 내포된 이념과 그 의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 영화가 현 시점에 등장한 것에 대한 함의는 무엇인지 물었다.

어떻게 보면 4월 총선을 얼마 남기지 않은 현 시점에 <건국전쟁>이 등장한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말씀하신 대로 반공주의 이데올로기를 직접적으로 대변하는 영화가 과거의 일처럼 느껴지기는 하지만, 사실 가시화되지 않았을 뿐이지 그동안 그 이데올로기들을 담은 다큐멘터리나 영화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왜 <건국전쟁>만이 현 시점에, 이전부터 만들어져 왔던 같은 프로파간다 영화들을 제치고 유독 주목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더 깊이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4월 총선을 앞두고 사전투표소처럼 기능하게 된 현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고 봅니다.

영화관은 세를 결집하고, 흥행 스코어에 따라 과시하고, 또 그것을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입니다. 김덕영 감독을 비롯한 보수 세력들은, 이러한 영화관의 특성에 따라 그 공간을 하나의 사전투표소처럼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침 보수쪽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반일 키워드를 다룬 <파묘>는 그 전략에 적절히 동원된 셈이죠. <파묘>좌파영화라고 규정하고 그와의 흥행 전쟁에서 이겨야 4월 총선의 결과도 달라질 것이라는, 그런 믿음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김덕영 감독은 스스로 <건국전쟁>이 반공주의에 입각한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며, ‘좌파세력에 의해 이승만 대통령이 얼마나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파국이라는 단어를 함께 거론하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김 감독이 말하는 파국이라 함은, ‘좌파’, 혹은 공산주의 세력에 의해 다시금 이 국가가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단어이고, 현 시대가 만약 파국이라면 결국에는 구국이 다시 요구되는 것일 텐데, 이는 과거 공산세력으로부터 나라를 지켰던 이승만을 다시 복권시키자는 이야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이승만에게 얽혀 있는 부정적 이미지들을 털어내고 그를 양지로 옮기고자 하는 전략, 이른바 보수의 정통성을 내세우고 그 이후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보수 세력의 역사를 새로 쓰겠다는 그 강한 욕망이라 생각됩니다.”

 

<파묘>를 둘러싼 정치적 해석의 맥락과 그 정당성

 

김덕영 감독의 좌파발언을 시작으로, 상업영화 <파묘>가 실제 내용이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평가받고 있는 상황이다. 엄연한 프로파간다성을 지닌 <건국전쟁>의 반대급부로서 <파묘>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맥락에 대해 물었다.

일단 저는 김덕영 감독이 <파묘>좌파영화로 규정짓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보수의 입장에서 <파묘>는 충분히 자극될 만한 영화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파묘>는 보수 진영의 아킬레스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 국가폭력(학살)과 관련한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주 4·3사건, 한국전쟁, 4·19혁명 등 이승만과 얽힌 국가폭력의 기억을 덜어내고 그를 더 나은 곳으로 옮기고자 하는 보수 진영의 입장에서, 무덤()을 파()내서 학살자 혹은 그에 동조한 사람의 유골을 꺼내서 지옥으로 봉인시키고자 하는 <파묘>의 서사는 예민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독립운동이나 반일이라는 코드가 기저에 깔려 있다는 점에서도 <파묘><건국전쟁>의 반공 민족주의와 대립되는 반일 민족주의로 읽히고 있는데, 사실 이 대립(대결) 구도는 전혀 무의미한 것입니다. <파묘>의 민족주의는 외피에 불과하고, 오히려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작동되고 있는 것은 한국인들의 정서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계급주의와 그에 대한 콤플렉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오컬트라고 하는 장르물에 속하는 영화는 종교적이고 영적인 대상들과 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혹은 그로 인한 사건들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심들과 싸워야 하는 장르입니다. 그렇기에 관객들을 설득시키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잘 만든오컬트 영화를 접하기도 매우 힘이 들죠. <파묘>의 흥미로운 지점은 한국인 공통이 공유하는 계급주의 콤플렉스, 즉 상류 사회에 대한 욕망과 그들의 삶에 대한 관음증적인 시선들을 통해 관객들을 오컬트의 세계로 유도·설득하고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영화 속 비과학을 당위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믿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파묘>의 목적이자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데올로기적 문제에서 벗어나, 영화 자체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전혀 다른 장르와 맥락의 영화를 반대급부로 세운 이번 사태에서, 오늘날 한국사회의 일면을 포착해 볼 수 있었을까. 영화를 정치적·이념적으로 소비·소환하는 상황을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물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상업영화가 정치적으로 소환되는 이번 사태와 같은 일들이 앞으로 더 많아질 것 같습니다. 어찌됐든 그것을 처음 시도했던 <건국전쟁>은 큰 성공을 경험했고, 이후에도 지방선거나 대통령 선거 등 정치적 이슈는 끊이지 않을 테니까요. 선거를 의식한 기획 영화들은 이제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라고 봅니다. 영화를 만드는 이들까지도 관객을 동원하여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 위해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의도적으로 끌어오기도 하겠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관객의 한 명으로서 는 그러한 이데올로기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스스로 중심을 지키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무비판적으로 와 같은 견해를 가진 영화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영화 자체의 가치를 엄격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영화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관객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조수아 기자 lovelove9928@naver.com

천관우 기자 kw10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