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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중동지역 무슬림 여성 인권을 둘러싼 ‘정치적 담론’을 해체하고 인권의 실체에 다가가다 본문
중동지역 무슬림 여성 인권을 둘러싼 ‘정치적 담론’을
해체하고 인권의 실체에 다가가다
2022년 9월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가 의문사하며 이란의 ‘히잡 시위’를 촉발했던 마흐사 아미니가 구금 중 폭행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유엔 조사 결과가 지난 3월에 발표되었다. 또한, ‘히잡 시위’의 또 다른 도화선이 되었던 16살 소녀 니키 샤카라미의 의문사가 이란혁명수비대(IRGC) 연계 보안 인력의 성폭행과 폭행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사실을 기록한 기밀문서가 지난 4월 영국 BBC에 의해 발표되기도 했다. 이처럼 최근 이란의 여성 인권 문제가 다시금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4월에는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 무력충돌이 발생하여 한때 전면전 위기가 점쳐지는 등 중동 지역의 정세가 불안해지기도 했다. 이처럼 확대되어가는 국가 간의 대립과, 예전만큼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엄연히 지속 중인 이란 ‘히잡 시위’ 속에서 중동 지역 사람들의 삶과 인권에 대해 되짚어 보기 위해 중동 및 이슬람의 사회문화와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엄익란 교수를 만났다.
국가 안보의 상징물이 되어버린 히잡 - 이란의 ‘종교 민족주의’
2022년에 일어난 이란 ‘히잡 시위’를 계기로 중동 지역 인권 문제가 다시금 환기된 바 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 정부는 여성에게 히잡착용을 강요해왔으며, 최근에는 히잡 착용의 사안이 이란 정부가 주장하는 미국·이스라엘의 ‘외부개입설’에 따라 국가 안보의 차원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처럼 종교의 상징인 히잡이 이란에서처럼 정권 차원에서 강요되고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이란 정부의 히잡 착용 강요는 ‘종교’를 표방한 정치적 담론의 일종입니다. 1979년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성립 이후 이슬람 정권은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고 서로 다른 정체성을 지닌 국민들을 통합시키기 위해 이슬람에 기반한 ‘종교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관련된 담론을 생산해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히잡 착용의 의무화이죠. 여성의 머리카락을 가리는 히잡 착용은 선택이 아닌 의무사항이 되었으며, 도덕경찰은 일상생활에서 여성의 머리카락을 감시하고, 규정을 지키지 않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폭력까지 동원하였던 것입니다.이란 정부는 종교의 명목을 내세워 이러한 통제를 정당화하지만, 실제로는 국민들로 하여금 그 정부에 복종하도록 하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치적 목적이라는 것은 여러 면에서 읽을 수있는데요. 우선 히잡 착용은 무슬림의 ‘5대 의무’가 아닙니다. 다만 종교 민족주의 담론에 매몰된 이란 정부가 체제의 정체성을 강제적인 히잡 착용과 복장 규정에 연계시켜 버린 것입니다. 그에 따라 여성의 의상 문제는 개인적인 선택문제가 아닌 정권의 유지와 안보문제로 확대되어 버린 것이죠. 히잡을 명목으로 민간사회를 통제하여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정부는 시위가 일어난 근본적인 문제들, 이를테면 부패나 경제난을 해결하는 대신 히잡이라는 상징물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란 정부가 1979년 이란 혁명 정부 수립 이후 유지해오는 종교 민족주의 담론을 고수한 결과 급기야 히잡을 정권과 동일시하기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 이란 정부는 이번 ‘히잡 시위’에 대해 이란의 최대 적국인 미국과 이스라엘이 사주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히잡 착용 사안을 국제정치상의 안보문제까지 확대하고 있습니다. 상식적인 이야기이지만, 히잡을 착용하는 것과 정권의 안보는 그 결이 다른 문제입니다. 그런데 마치 두 가지가 연결되어있는 것처럼 선전하는 것에서, 그 정치적 목적성을 알 수 있습니다. 실상 이란 내부를 보면 정작 국민들의 반미 성향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데도, 이란 정부는 계속 이분법적 구도의 담론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죠.
이란 정부는 서구에 대한 대항마 역할을 했던 종교 민족주의의 덫에 걸려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덫에서 나오기 위해 이란 정부는 히잡과 정권의 정체성을 분리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이슬람교 자체가 아닙니다. 문제의 핵심은 종교상의 의무도 아닌 것을 정권의 운명과 결부시키거나 신정정치의 견지에서 신성화하는 등 히잡을 쓴 여성의 모습을 일종의 정권의 ‘광고판’으로 활용한 이란 정부의 행태에 있습니다. 한편으로 최근 이란과 이스라엘의 무력충돌이 잠시 나타나면서 일각에서는 중동 정세가 불안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는데요. 4월 1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이란 영사관을 폭격했고, 13일에는 이란이 이스라엘 본토를 최초로 직접 공격했습니다. 두 국가가 이전까지 전면 충돌을 피해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작년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이어 중동에서 전쟁이 확대될 것으로 우려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란이 실제 전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러한 움직임들이 각종 담론으로 인해 조장된 안보 위기를 바탕으로 미국이나 이스라엘 등을 악으로 규정하면서 정부의 권력과 내부 단결을 강화하고자 하는 데 활용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무슬림 여성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히잡 착탈(着脫) 논쟁과 서구식 ‘보편’ 담론의 피상성
보편적 인권’을 논하는 차원에서, 특히 중동 지역 무슬림 여성들의 인권은 억압받고 있다고 인식되어왔다. 이는 이슬람교라는 종교의 특성과 연관지어 논의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실제 중동의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의 주체성은 어떻게 이해되고 있으며, 이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물었다.
“인간이 누려야할 ‘보편적 인권’을 이야기할 때면 그 반례로 종종 제기되는 것이 중동의 무슬림 여성입니다. 무슬림 여성들이 히잡을 착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죠. 물론 이란의 경우와 같이 강제성이 동반될 경우 이를 보편적인 인권이 억압되는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실상 오늘날 히잡이 표상하는 문제는 히잡을 ‘쓰고 벗음’에 있어서 여성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슬람 혁명 이전 이란에서는 오히려 여성의 히잡 착용을 금지했습니다. 무슬림인 여성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히잡을 쓰고 싶을 수도 있는데, 이란의 세속주의 정권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죠. 즉 중동에서 히잡을 둘러싼 문제는 그것의 착용 여부 자체가 아닙니다. 여성의 선택은 존중받지 못하고 정권의 성향에 따라 히잡의 착탈(着脫)이 강제된다는 사실, 그리고 그로 인해 여성의 주체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중동 무슬림 여성의 인권에 대한 담론은 많지만, 정작 화려한 학술적 용어를 동원한 논의들 속에서 오히려 실존하는 개별 여성의 ‘주체적’ 선택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상화된 인권의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에 맞추어 인권이 열악하다고 재단하는 것이 과연 중동의 여성 인권을 논할 때 적절한 것인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이를테면 성역할의 분담을 생각해볼 수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중동에서는 이슬람교가 지배적이고, 그에 따라 종교가 가부장제를 강화한다는 인식이 강하죠. 물론 그렇게 볼 여지가 있지만, 한편으로 과연 무엇이 공평 내지는 평등인가라는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슬람교에서 남성은 힘이 세기 때문에 여성을 부양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에 순응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습니다. 그런데 이를 단순히 ‘억압’의 차원에서만 볼 수는 없는 것이, 여성은 남성의 부양에 대하여 집안을 돌보는 역할을 자청하는 경우도 상당수 있기 때문이죠. 이것은 불평등이라기보다는 이슬람의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공평관’입니다. 예를 들어서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여성들은 자신의 선택으로 일을 하기도 하고, 일을 하지 않는 경우에도 불만을 별로 갖지 않습니다. 두 경우 모두 다 해당 여성의 ‘선택’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단순히 히잡의 착용이라는 한 사례 또는 이슬람교의 문화의 일부를 피상적으로 관찰하고 그들의 인권실태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기보다, 이러한 인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서구에서 만들어진 ‘보편적’ 인권 담론에 익숙합니다. 문제는 그러한 인식이 다소 피상적이며, 중동지역이나 그곳의 여성들의 주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무슬림 여성에게 ‘자유’가 없다거나 ‘해방’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실상 중동을 반(反)문명적이거나 미개하다고 낙인찍은 19세기~20세기 영국, 프랑스 등 서구의 시선에서 비롯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중동 인식은 중동을 미개한 곳으로 표상하여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담론이 구성된 이유를 살피고 그 기원을 따져 올라가서 이를 해체하지 않으면, 애초 그러한 인식의 틀을 만들어 낸 서구의 교묘한 의도나 역사적 맥락은 소거되어버리죠. ‘히잡 시위’를 지켜보며 우리가 근본적으로 돌이켜봐야 하는 것도 이렇듯 서구가 만들어낸 중동 인식에 대한 해체라고 생각합니다. 이란 정부의 퇴행적 모습과 별개로 문화적 상징물이 된 히잡이나 ‘보편적’ 인권과 같은 레토릭에만 치중하게 되면 피상적인 비판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동지역 인권운동의 향방에 대한 전망과 지속적인 관심의 필요성
중동 인권 문제에 대한 피상적 이해를 넘어 중동에서의 인권운동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향후 중동 지역에서의 인권운동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몇 년 전 ‘히잡 시위’가 중동 지역의 무슬림 여성들의 인권에 대해 관심을 환기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 시작점에는 이란 정부의 퇴행적 행보가 있었죠. 그러나 정권의 퇴행적 행보를 계기로 ‘히잡시위’가 전개되었다고 해서, 이것이 반드시 이란이나 기타 중동 지역에서 인권을 곧바로 향상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 예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2022년에 시작된 해당 시위는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며, 나아가 히잡 착용을 공권력을 동원해 강제하는 일은 이제 다른 중동 국가에서 찾아보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 것은 이란을 제외하고 가장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라고 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이미 2016년을 기점으로 사라졌습니다.
다만,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보면 중동 사람들의 시선도 많이 변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근본주의 정부는 해법을 제시하지 못함에 따라 종교적인 차원이 아닌 현실적인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움직임이 일부 나타나고 있는 것이죠. 인권과 관련한 시민단체 역시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만, 시민운동의 동력이 인권신장으로 곧바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할 문제입니다.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중동에 대한 서구중심적 시각에서 탈피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억압적인 정부로 인해 국민들이 삶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은 우리에게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 천관우 기자 kw1045@naver.com
■ 정재훈 기자 wjd888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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