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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위기?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의 부상과 우파 정치 세력의 동향 본문
민주주의의 위기?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의 부상과 우파 정치 세력의 동향
지난 달, 독일 튀링겐주 의회 선거에서는 ‘극우정당’으로 알려진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ür Deutschland, 이하 대안당)’이 선출의석 88석 중 지역구와 비례 도합 32석을 차지하여 주 의회 내에서 제1당이 되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반(反)이민, 자국민 우선주의, 외국인에 대한 혐오 등을 내세우는 ‘극우’ 내지 ‘급진 우파’ 정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나치당의 집권 경험으로 인해 극우의 준동을 터부시하는 독일에서 대안당이 부상하고 있는 데 대한 국제사회의 이목도 집중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독일의 대안당 사례를 통해 ‘민주적으로 성숙한’ 국가들에서 극우 정당이 지지를 받고 있는 현상에 대해 종합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영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정병기 교수를 만났다.
정치적 ‘극단주의’와 ‘급진주의’의 구별과 대안당의 성격
2013년 창당된 대안당은 반이민, 반이슬람, 독일 민족주의 등을 내세우고 있으며, 그로 인해 ‘극우 정당’으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먼저 대안당의 기원과 그 핵심적 정치이념은 무엇이며, 정치학적 관점에서 이를 ‘극우 정당’으로 분류할 수 있을지 물었다.
“사실 독일의 극우 정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계속 존재해 왔습니다. 독일민족민주당(NPD), 독일공화주의자당(REP), 독일인민연합(DUV) 등이 대표적인 극우 정당이라 할 수 있는데, 대안당은 이러한 전통적 극우 정당과는 본질적으로 차별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을 먼저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대안당은 창당 초기부터 다른 극우 정당과 달리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를 내세우지 않고 교수, 학자, 신문기자 등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한 지도부를 꾸렸으며, 정치적 신뢰성과 헌법적 합리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물론 이후 이들이 유럽 통합을 반대하고 반이민, 반이슬람이라는 민족 보수주의적 이념을 주장해 왔다는 점에서 기존의 유럽 국가들의 극우 정당과 비슷한 경향을 보이지만, 대안당의 기본 강령 자체는 시장 경제 원칙과 민주주의 질서를 수용하는 ‘급진 우파적인’ 성격을 띠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극단주의(extremism)와 급진주의(radicalism)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기에, 대안당의 정치적 성격과 관련한 혼동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이 개념 자체를 철저히 구분하여 극단주의는 반민주주의로 정의하는 한편, 급진주의는 급격한 변화를 추구하지만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수용하는 이데올로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극우’의 개념을 정의한다면, 극단주의와 우파가 결합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대안당은 일반적으로 극우적 성격으로 여겨지는 민족 보수주의 이념을 내세우지만, 그것을 독일이라는 나라의 전통과 민주주의적 질서 아래 실천한다는 점에서 극단적인 우파가 아닌 급진주의와 우파가 결합한 개념이죠. 이렇듯 극우 정당과 대안당의 성격 자체가 많이 다릅니다. 그러나 말씀해 주신 대로 창당 이후에는 대안당이 극단화해 간 측면이 있어 극우적인 성격이 나타나는 부분도 분명 있는데, 그것은 대부분 ‘날개(Der Flügel)’라는 대안당 내부 정파 활동에 의한 것입니다. 독일 헌법수호청도 대안당 자체가 아니라 당내 정파인 ‘날개’만을 극우로 규정했죠. 결국 ‘날개’는 당 지도부에 의해 해체되었고 그와 연관되어 있던 인물들 역시 이미 탈당한 상태이기에, ‘날개’ 정파의 극우적 성격을 곧바로 대안당 전체의 성격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초기 급진 우파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출발했던 대안당은 지도부에 따라 급진/극단주의 사이를 오고 가다가, 2020년대 이후에도 여전히 반이민·반이슬람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급진주의로 비교적 온건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급진 우파’ 정당이 부상하게 된 사회적 배경과 그 의미
대안당은 2017년에는 92석(12.6%)으로 제3당의 지위를 얻었고, 2021년에도 83석(10.3%)을 차지하여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나치의 집권 경험이 있는 독일에서 극우 내지 급진 우파 정당이 상당한 지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안당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인식이 어떠한지, 또 그러한 정당을 향한 지지가 적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물었다.
“오래 전부터 독일은 나치즘을 경계하는 교육을 매우 체계적으로 시행해 왔습니다. 과거 역사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강조하고, 나치즘 자체를 원죄로 인식하도록 만들어 온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교육 목표와는 달리 이미 나치를 경험한 세대는 지나가 버렸고, 지금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나치라는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따라서 현 독일의 젊은 세대에게는 역사적 부채의식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나치 척결 및 권위주의 청산에 힘을 쏟은 68혁명 세대도 교체되는 시기가 와서, 이전만큼 나치나 극우, 혹은 급진 우파에 대한 경계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안당을 향한 지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정당의 구도가 변화한 데 있습니다. 68혁명 이후 권위주의와 반권위주의로 구성돼 있었던 정당의 구도에 극단주의적 성격이 더해지면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와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라는 정치경제 체제를 위협하는 이념이 생겨나게 된 것이죠. 이는 과도기적 혼란 시기, 즉 2000년대 이후 금융위기가 닥치고 신자유주의가 약화된 뒤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 등장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보호무역주의가 대두했지만, 그것이 유의미한 대안이었다고 할 수는 없죠. 포퓰리즘적인 극우주의자들은 바로 이런 혼란한 상황에 틈입하여 민주주의를 공격합니다. 물론 이러한 극우주의를 저지하려는 움직임 또한 발생하는데, 이에 해당하는 것이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유지하고자 하는 온건주의입니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가 약화되면서 마땅한 대안이 부재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극단/온건이라는 새로운 정당 이념 구도가 형성되면서 대안당과 같은 급진 우파가 급부상하게 되는 흐름이죠. 이 극단과 온건의 축이 어디에 위치하고, 기존의 보수적 논리들과 어떻게 결합하는지가 대안당을 둘러싼 현 상황을 이해하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 것입니다.”
‘포스트 메르켈 정치’와 구 동독 지역의 누적된 불만
2024년 튀링겐 주 의회 선거에서 나타난 대안당의 약진을 두고, 일각에서는 통일 이후 구 동독 지역과 서독 지역 간의 격차를 해결하지 못한 데서 그 요인을 찾기도 한다. 소위 ‘2등 국민’으로서 갖는 박탈감이 극단적인 정치성향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통일 이후로도 해결되지 않은 지역 간 격차를 구 동독 지역에서의 대안당의 약진과 연관 지을 수 있을지 물었다.
“흡수 통일이 되면서 동독 지역에도 서독 지역과 동일하게 사회 보장 제도를 적용해 격차를 해소시키고자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동독 지역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자리에 주로 취업을 해왔습니다. 그런 상황이 결국 유럽 통합에 대한 반감을 키우고, 반이민·반이슬람 정책을 내세우는 대안당을 지지하게 만드는 것이죠. 다시 말해 동독 지역 내부에 누적된 불만들이 독일 정치 흐름의 변화를 목도하면서, 혹은 통일 이후 줄곧 고착화된 구조적인 문제에 부딪히면서 대안당의 득표율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구 동독 지역에서 대안당이 표를 많이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선거 결과를 곧바로 동독의 지역주의로 환원시킬 수는 없습니다. ‘2등 국민’이라는 개념은 한 세대가 지나면서 많이 약화되었고, 대안당의 득표율 자체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유동적으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흐름 속에 얽힌 복합적인 면모들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대안당은 2013년 등장해서 2017년 12.6%의 득표율을 얻었지만, 2021년에는 다시 10.4%로 내려갑니다. 작년까지도 계속 떨어지다가 올해 처음 30%를 넘긴 것인데요. 더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겠으나, 2~3년 안에 상황이 이렇게 바뀐 이유에는 국내 정치 상황의 영향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21년에 독일 최장수 총리였던 기독민주당(CDU, 이하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의 집권이 막을 내리고 사회민주당(SPD, 이하 사민당)의 올라프 숄츠가 집권하게 되면서 독일 국민들은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유럽의 단합과 이민·난민 차별 타파 등의 정책을 폈던 메르켈보다는 좀 더 나은 정치를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2021년부터 약 2년간 대안당 득표율이 떨어졌고, 같은 시기에 기민당의 득표율 역시 점점 감소했다는 것이 그 사실을 방증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숄츠는 메르켈의 정치를 일부 이어가는 정치를 펼쳤는데요. 이에 대한 불만이 커져가면서 대안당의 득표율도 증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21세기에 극우, 혹은 급진 우파의 부상을 이해하는 법
현대 정치에서 더 이상 ‘예외적 소수’가 아닌 극우 내지 급진 우파의 존재는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해나가야 할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최근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대의 민주주의란 정해진 임기 동안 국민의 뜻을 대변해서 정치를 해 나가는 것인데,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서 자신들이 지도자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 투표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경우도 많고요.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러한 왜곡된 인식은 실제 민주주의의 이념조차도 퇴색시켜 그 자체의 위기를 낳습니다. 극우파들, 극단주의자들은 그 위기에 편승하여 아예 민주주의 질서를 위협하고 있는 세력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가 쌓이고 가중되면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기반이 붕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현대 정치에서 극단주의나 포퓰리즘이 민주주의를 위협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러온 원인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안당의 사례에서처럼 이러한 현상들은 민주주의 자체가 위기에 처해 있기에 나타난 징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모두 자유와 평등이 동시에 보장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을 고려하고, 지속적인 이해와 교육을 통해 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다면, 극단적인 논리와 주장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누구도 지배하지 않고 아무도 지배받지 않으며, 모든 이들이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야말로, 극우와 급진 우파를 경계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 조수아 기자 lovelove9928@naver.com
■ 천관우 기자 kw10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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