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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출범한 이시바 시게루 내각의 정치적 위치와 지향점 본문
새롭게 출범한 이시바 시게루 내각의 정치적 위치와 지향점
지난 9월 27일,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이하 이시바)가 당선되었다. 2008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한 이후 다섯 번째 도전 끝에 당선되
어 일본의 102대 총리가 된 그는 자민당 내에서 ‘비주류’로 불리며 ‘아베파’로 대변되는 극우 성향 의원들과 다른 행보를 보여온 인물로 평가된다. 반면 안보 정책에서는 ‘아시아판 나토(NATO)’ 창설, 미일지위협정 개정,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규정하는 개헌을 주창하는 등 매우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신임 총리 이시바와이시바 내각의 정치적 위치와 정책지향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남기정 교수를 만났다.
‘비주류’ 이시바의 자민당 총재 당선이 가능했던 이유
이시바는 자민당 총재 선거 결선에서 전체 415표(국회의원 368표, 당원·당우 47표) 중 215표(국회의원 189표, 당원·당우 26표)를 얻어 ‘아베파’ 상당수가 지지한 것으로 알려진 전(前) 경제안보담당상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를 제치고 총재로 선출되었다. 이에 먼저 당내 지지 기반이 약한 그가 당선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이번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가 선출되고 일본의 새 총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오히려 그가 자민당 내에서 오랫동안 비주류였다는 데 있습니다. 일본의 자민당은 파벌과 정치후원금(정치자금)을 중심으로 한 정치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자민당 내에서 정치후원금 스캔들이 터졌고, 그 비리의 핵심에는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 인사들이 있었죠. 정치후원금의 모금과 운용에 부정한 방법이 동원되었다는 것에 대해 많은 일본 국민들은 분노했고, 반(反)파벌, 반(反)원로, 정치자금의 투명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나날이 높아져 갔습니다. 이러한 국민의 기대를 적절히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자민당에 대한 기대도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위기감이 자민당의 의원들, 당원, 당우들에게 체감되었죠.
그런 상황에서 본래 국민들에게 인기가 좋은 편이었던 이시바가 이번 스캔들을 객관적인 견지에서 잘 해결해줄 수 있는 인물로 기대를 받게 된 것입니다. 이시바는 일단 이번 스캔들과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원로 정치와도 거리가 멀며, ‘아베파’로부터 집중견제를 당하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이렇듯, ‘아베파’와는 구별되는 행보를 보여온 이시바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자민당이 수용하는 양상을 띠면서 그간 비주류였던 인물이 총재로 선출될 수 있었습니다.”
일본 ‘리버럴’들의 역사인식: ‘반성’의 일본적 맥락
이시바가 과거 “일본이 패전 후 전쟁 책임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은 것이 많은 문제의 근저에 있으며 그것이 오늘날 여러 가지 모양으로 표면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한 것이 국내 언론에도 전해지면서, 전향적인 역사인식을 가진 그의 당선으로 한일 관계에도 새 바람이 불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은 듯하다. 그동안 일본의 공식적인 역사인식이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더불어 이시바 당선이 앞으로 역사 화해를 불러올 수 있을지 그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일본의 역사 인식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제국주의 시절 일본이 벌인 전쟁에 대한 반성이고 다른 하나는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모두에 대한 총체적인 반성을 희망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죠. 이는 일견 역사 인식에 있어서 전향적 태도를 보이는 듯한 이시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시바는 자민당 내 ‘리버럴(リベラル, 자유주의자)’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리버럴’들은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과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했다는 것을 주로 반성합니다. 그러나 그 밖의 중일전쟁이나 아시아에서의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리버럴’ 내에서도 여러 의견이 있기에, 이시바 내각이 이를 포괄하여 전향적인 자세로 ‘반성’을 표명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한편, 이시바가 취하는 ‘리버럴’들의 입장은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 자체는 국권을 대한제국으로부터 양여 받았으므로 ‘합법’이지만, 1945년의 패전과, 1952년 <샌프란시스코평화조약>,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체결에 따라 식민지배가 유효성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식민지배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있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만, 도덕적인 책임을 일부 느낀다고 해도 그것이 추가적인 배상으로 이어지기는 어렵습니다. ‘리버럴’들의 기본적인 입장은 앞서 언급한 1965년 <한일기본조약> 및 그에 따르는 <한일청구권협정> 등에 따라 대일 청구권이 소멸했다는 것이기 때문이죠.
물론, 일본 정부의 역사인식도 1990년대의 탈냉전 기조를 기점으로 점차 변화해왔습니다. 여기에는 탈냉전 이후 미국과의 관계 외에 이웃나라들과의 관계 역시 중요해진 일본의 상황, 1987년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의 의지를 반영하여 우리나라가 일본에 대해 꾸준히 반성을 촉
구한 점, 한일 양국의 시민사회 연대 등이 두루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결과 <고노 담화>(1993)나 <김대중-오부치선언>(1998) 등이 나올 수 있었죠. 그런데 1990년대 이래 한일 양국이 식민지배에 대한 역사인식에 대해 그 간극을 좁혀보고자 노력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충분히 합치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시바의 역사인식이 다소 전향적이라 해도, 어떠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이시바 내각 아래 일본 정부의 공식적 역사관은 갑자기 달라지기 보다는 ‘리버럴’들의 일반적인 역사인식 토대 위에서 기존 일본 정부의 역사 관련 담화를 존중하고 계승하는 형태를 띨 것으로 보입니다.”
아베와는 다른 이시바의 ‘입헌주의 개헌론’
방위청 장관과 방위상을 역임한 이시바의 안보 정책은 상당히 강경하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일본 ‘평화헌법’의 핵심이라고 알려진 9조 2항을 삭제하고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규정하는 헌법 개정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우려를 사고 있기도 하다. 이에 개헌을 주장하는 이시바의 의도와 그 정치적 배경에 대해 물었다.
“이시바의 입장은 ‘입헌주의 개헌론’으로, 자위대를 헌법기관화해서 문민통제하에 두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베가 의도하던 국가주의적 헌법 개정 및 일본의 ‘보통국가화’와는 그 결이 다릅니다. 이시바가 문제시하는 것은 일본이 ‘자위대’라는 무장집단을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이에 대한 명확한 헌법규정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 기저에는 ‘헌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기관은 언젠가 폭주한다’는 문제의식이 자리하고 있죠.
일본 정치에는 크게 ‘보수본류’와 ‘보수방류’가 있는데요. 전후 일본 정치를 주도해왔던 보수본류의 입장은 전쟁을 초래한 일본제국의 경험을 반성하면서 무장력을 최소화하고 동맹관계인 미국에 안보를 맡기며 경제에 집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외국에서 침략이 올 경우에만 대응할 수 있는 ‘자위대’를 만들게 된 것이죠. 이시바 역시 이러한 보수본류에 해당하는데, 이와 달리 ‘아베파’가 속한 보수방류는 우익적인 성향이 조금 더 강한 편입니다. 다만, 본래는 보수방류라고 해도 대체로 평화헌법을 존중해왔는데, 아베는 보수방류 중에서도 유독 과격한 면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베파’의 기원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베파’의 비조는 아베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라는 인물로, 그는 일본이 과거처럼 보다 자주적인 외교를 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대외로 전력을 투사할 수 있는 군대를 보유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아베의 헌법개정 주장은 이러한 인식의 연상선상에 있는 것이죠. 반면, 이시바는 보수본류에 해당하면서도 자위대를 현상태로 두기보다는 헌법에 의거한 ‘통제’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겉으로는 아베와 같은 ‘헌법개정’을 논하더라도 그 내용과 목적이 분명히 다른 것이죠.
‘아시아판 나토’ 역시 이러한 입헌주의 개헌론에 따른 군대(방위군) 보유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만약 이시바의 의도대로 헌법개정을 하게되면 일본은 일단 군대를 보유하게 됩니다. 그랬을 때, 현재의 미일동맹은 다소 비대칭적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커지죠. 따라서 미일동맹을 현재의 형태로 유지하기보다는 아시아에서의 다자적인 협조의 틀을 만든 뒤 일본이 좀 더 안전을 보장받고 나름의 ‘기여’도 하겠다는 발상이 ‘아시아판 나토’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이러한 발상은 현재 ‘신냉전’이 도래한 상황 속에서 다분히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아시아판 나토’가 유의미하게 추진될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이시바 내각의 동아시아 정책과 국제관계 전망
마지막으로 이시바의 집권 이후 주요정책과 방향성에 대한 전망을 요청하는 한편, 향후 한일관계에 대한 제언을 구했다.
“앞으로도 이시바는 정치적 리스크를 지지 않는 방향으로 일본을 이끌어갈 가능성이 큽니다. 즉,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역사문제나 안보문제에 있어서 큰 변화를 추동하지는 않고 현상을 유지하고자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시바의 향후 정치적 행방을 파악하기 위해 이시바가 모델로 삼고 있는 인물을 주목해볼 수 있겠습니다. 이시바 본인을 정치계에 입문하도록 이끌어준 인물이자 이시바 자신이 사표로 여기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栄)는 일본-중국의 국교 정상화를 이끈 인물입니다. 미국보다 먼저 아시아의 공산국가와 수교하겠다는 다나카의 발상의 핵심에는 정치적 판단과 함께 경제적 실용주의가 있었습니다. ‘리버럴’인 이시바도 그의 스승과 마찬가지로, 필요하다면 중국이라는 큰 시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를 보다 개선하고자 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정치적 스승의 자취를 따라서, 이시바가 북한과의 수교에 집중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예상은 이시바 주변에 포진한 인물들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외상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방위상 나카타니 겐(中谷元) 등은 ‘북일 국교 정상화 촉진 의원 연맹’에 소속되어 있고, 이들 역시 소위 ‘리버럴’로서 이시바와 뜻을 같이하고 있죠. 그래서 곧 있을 중의원 선거에서 보다 큰 지지를 받는다면,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핵심공약이기도 했던 ‘북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아직까지 국내 언론에서 묘사하는 이시바와 이시바 내각의 핵심인물들에 대한 시각은 다소 막연한 것 같습니다. 그들의 역사관이나 안보관의 일면만을 부각하는 시각을 넘어서 이시바나 그 정부 요인들의 성향과 정견을 직시한다면 향후에 한일관계, 더 나아가서 동아시아
의 정세도 보다 안정적으로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천관우 기자 kw1045@naver.com
■ 조수아 기자 lovelove99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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