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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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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의 모순이 응집된 곳, 알시파 병원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12. 5.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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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랄 아사드, 자살 폭탄 테러, 창비, 2016.

징병문제연구소 더 나은 헌신연구활동가 백승덕

 

 

 

 

 

 

자유주의의 모순이 응집된 곳, 알시파 병원

 

알시파 병원이 위태롭다. 국제인도법은 의료시설을 특별히 보호한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군부는 알시파 병원에 폭격을 가했고 군인들도 침투시켰다.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에 대한 공격은 국제법이 여전히 유효한지 묻게 만든다. 이스라엘 군부는 알시파 병원이 하마스의 군사본부로 쓰인 증거라며 지하터널처럼 보이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병원에서 소총과 방탄복 등도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구 언론도 결정적인 증거가 아니라고 평한다.
알시파 병원이 하마스의 군사본부로 쓰였을 것이란 예상은 무리가 아니다. 강력한 정규군의 침략에 맞서는 파르티잔들은 민간인들 사이에 몸을 숨기기 마련이다. 이러한 파르티잔 전략은 군사와 민사를 구분하는 국제법의 근간을 흔든다. 제네바협약은 민간인을 보호하는 원칙을 악용하여 민간시설을 군사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금한다. 그러니 병원을 군사본부로 사용했다는 증거만 찾는다면 병원을 공격하더라도 정당한 군사행위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하마스가 알시파 병원에 설령 사령부를 설치했다손 치더라도 어쨌거나 병원은 병원이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군대가 폭격하고 진입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다. 국제법은 병원이 군사시설로 쓰였다는 증거가 있다면 병원 환자들이 군인들에게 살해를 당하더라도 합법적이라고 인정한다. 군사적 이익에 부합하는 정도라면 용인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알시파 병원은 국제보건기구(WHO)죽음의 지대라고 부를 만큼 처참한 상태에 처했다. 포환과 총탄의 흔적이 남은 병원을 두고 국제법은 의료의 가치와 군사적 이익을 동시에 말한다. 병원은 보호되어야 하지만 보호되어야 할 사람들이 방패막이로 쓰였다면 그들이 총알받이가 되더라도 보호할 수 없다는 논리다. 병원의 환자들을 방패막이로 내세운 자들이 악랄하다고 하여 이 같은 환자 살해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인류학자 탈랄 아사드는 자살 폭탄 테러를 통해 자살테러에 주목하며 마찬가지의 질문을 던진다. 테러는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으로 인식된다. 테러는 주로 도심에서 민간인들을 상대로 자행되는데, 자살테러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고자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진다는 점에서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든다. 서구 도심 어디선가 자살테러가 터지면, 세계 여론은 생명을 경시하는 야만을 규탄하기 시작한다.

테러와의 전쟁은 학살로 이어진다. 군사시설로 의심되는 지역이라면 민간인들을 수없이 살상한다. 포로 고문도 자행된다. ‘테러와의 전쟁이 가하는 폭력은 자살테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하다. 그럼에도 자살테러에 대한 담론은 윤리적 부담을 덜어준다. “미개한 그들은 문명화된 우리와 달리 인명을 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한다, 자살 작전까지 불사한다, 그래서 더 많은 사상자를 낸다…….”

탈랄 아사드는 묻는다. ‘자살테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이 독일 후방에 가했던 무차별 폭격과 무엇이 다른가.’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독일군은 동서 국경지대에 집결했기 때문에 도심 폭격은 주로 민간인과 민간시설을 공격대상으로 삼았다. 미군이 원자폭탄을 투하했을 때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서 목숨을 잃은 수만 명 중 대다수가 민간인이었다. 오늘날 테러에 대한 반격 역시 살상력에서 압도적이다.

자살테러는 동기가 유별나다고 한다. 맹목적인 종교심과 그에 따른 생명 경시, 호전성 등등이 자살테러의 주요 동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담론에 따르면 이슬람은 정교분리가 이루어진 서구와 달리 종교심에 매몰되어 있기에 자살테러에 빠진다. ‘문명 간의 충돌이 그런 담론이다.
자살 폭탄 테러는 이런 담론이 자유주의의 관습적인 유형론이라고 비판한다. 실제로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등장하는 성경은 완전한 정교분리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게다가 세속화를 표방하는 어떠한 국가에서도 군인들은 국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도록 요구받는다. ‘육탄 용사가 대표적이다. 적을 살상하기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폭탄을 안고서 탱크를 향해 돌격하는 용사들을 두고 생명 경시나 종교심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그럼에도 자살테러에 대해선 쉽게 그리하는 건 이슬람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 바탕을 둔 유형론 때문이다.

탈랄 아사드는 자살테러를 오히려 근대적인 것으로 본다. 자신의 정치공동체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기를 요구하고 군사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폭력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다만 국제법이 국가만을 정당한 전쟁의 주체로 볼 따름이다. 그래서 강대국의 침략에 저항하는 파르티잔들은 테러단체로 규정되고 만다.

정당한 전쟁론을 주장하는 마이클 왈저는 10년 전 쯤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팔레스타인 전투원들이 민간 지구에서 로켓을 쐈다면, 이스라엘의 대응 포격으로 인한 민간인 사망은 다른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닌 팔레스타인 전투원들의 책임이다." 하마스가 이번 기습작전에서 벌인 만행을 떠올린다면 왈저의 주장을 수긍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처럼 깔끔한 책임론에선 가자지구의 역사가 지워진다.

하마스가 기습작전을 벌이기 직전이던 6월에 유대인 정착촌 주민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벌여서 어린 아기가 사망하기까지 했다. 그보다 수년 전엔 유대인 정착촌 주민들이 맥주를 들고 가자지구 폭격을 구경하면서, 그 광경에 자신들의 SNS에 사진으로 찍어 올리는 일들도 있었다. 탈랄 아사드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전부터 유대인 파르티잔들이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광범위하게 학살했던 역사를 상기시킨다. 여기에서 전쟁의 정당성은 국가의 유무로 판가름날 뿐이다. 야먄과 문명, 종교와 세속, 테러와 전쟁의 이분법은 언제나 피지배자들에게 부당하다.

국제법의 보편성은 가자지구 앞에 멈춰섰다. 자유주의 평화론의 모순이 알시파 병원에 응집되어있다. 자살 폭탄 테러는 모순의 한복판에서 보편성의 의미를 묻도록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