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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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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 기습은 파르티잔 간계인가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11. 7. 21:08

하마스 기습은 파르티잔 간계인가

 

체 게바라, 남진희 옮김, 『게릴라전』, 걷는책, 2022.

백승덕 (징병문제연구소 ‘더 나은 헌신’ 연구활동가)

 

하마스의 공격은 진공 상태에서 일어난 게 아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의 이 말은 여러모로 이례적이다. UN 수장이 나서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비판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개전 당시 하마스의 기습 또한 상례에서 너무나 벗어났다.

구테흐스도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살해하고, 다치게 하고, 납치하고, 민간 표적에 로켓을 발사하는 것은 무엇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 하마스 대원들은 여성, 노인, 어린이 등도 가리지 않고 인질로 삼았고 납치 현장에서 찍힌 영상에는 인질들이 성폭력을 당한 흔적도 뚜렷했다. 기습과 민간인에 대한 학살과 납치, 성폭력 등은 전시국제법에 반하는 범죄였다. 그럼에도 구테흐스는 하마스의 만행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집단 처벌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마스는 국가 통치조직을 자임한다는 점에서 테러조직과 다르다. 테러는 어원이 그러하듯 공포를 목표로 삼는다. 서구 도심에서 벌어지는 테러는 서구가 내세우는 문명이 자신들이 저지른 폭력보다 더 야만적인 폭력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반면 하마스는 자신들의 거주지에서 이스라엘 세력을 섬멸하고 주권을 온전히 확보하는 것을 최종목표로 삼고 있다. 그래서 전통적인 파르티잔에 가깝다.

게릴라전은 전통적인 파르티잔의 전략과 전술을 이해하기 위해서 참고해야 할 군사교범이다. 혁명가 체 게바라는 소수의 게릴라들로 쿠바에서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경험에 기초해서 이 책을 썼다. 1961년 처음 발표된 이후 미국과 한국의 군사학교에서도 마오쩌둥의 저작들과 함께 필수 참고도서로 채택될 만큼 주목을 받았다.

파르티잔은 정규군에 속하지 않은 무장대다. 파르티잔의 역사는 19세기 나폴레옹의 침략에 맞섰던 스페인 게릴라들에게서 시작된다.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에 따르면 러시아혁명이 본래 토지와 결부된 가치를 추구했던 파르티잔에게 정치적 성격을 불어넣었다. 블라디미르 레닌이 주창했던 혁명적 내전론은 파르티잔의 당파성(parti)을 분명하게 해주었다. 공산주의 파르티잔은 단순히 향토방어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세계혁명을 위해 각지를 이동하며 전쟁을 수행한다. 쿠바, 콩고, 볼리비아 등지에서 게릴라전을 전개했던 체의 행보가 직업적 혁명가의 파르티잔 전략을 잘 보여준다.

파르티잔은 전통적인 전쟁규범을 교란한다. 군복을 입지 않고 민간인들 사이에서 숨어 지내다 야음을 틈타서 기습 공격을 하고 서둘러 빠지는 전투 방식은 비열하다고 비난받기도 한다. 하지만 체는 얼른 물어뜯고 빨리 후퇴하는전술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파르티잔은 전통적인 전쟁규범이 요구했던 낭만적 군인다움과 전혀 다른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파르티잔은 경멸을 감수하면서도 압제자들을 섬멸하기 위해서 기습과 후퇴, 속임수 같은 간계를 적극 동원한다. 체는 게릴라 전사는 전쟁에 뛰어든 예수회 수사라고 정의하는데, 슈미트는 이 말에서 파르티잔의 정치적 헌신을 발견한다. 예수회 수사들이 신앙을 따라 노예제에 맞서 항거했듯이 파르티잔은 혁명을 위해 전시국제법 위반도 감수한다는 것이다.

게릴라전은 소수의 게릴라들이 최종적인 승리까지 나아가기 위해 택해야 할 방법을 자세히 소개한다. 여기엔 적군의 전위가 두려움에 사로잡혀 나서지 못하도록 만드는 공격 방법부터 무기를 보충하는 방법, 야행을 위해 게릴라들이 반드시 가지고 다녀야 할 소품 등이 세세하게 적혀있다. 정글에서 잠을 취하기 위해서 나무 사이에 단 해먹을 그린 삽화를 보면 이 교범이 쓸모가 있기를 체가 얼마나 바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체는 파르티잔이 단순한 테러와 다르기에 게릴라에게 고도의 윤리성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게릴라전은 사회변혁을 위한 전쟁이기에 전술 하나하나가 목적에 맞게 구사되어야 한다. 야비하다고 비난받을 전투방식도 어디까지나 그 전술들이 평등과 존엄을 보장하는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할 때만 긍정될 수 있다.

게릴라전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포로를 처형하되 부상자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보살피라고 가르친다. 특히 민간인을 대할 때는 전통과 규범을 진심으로 존중해야 한다. 체는 이렇게 강조한다. “압제자인 정부군보다는 게릴라 전사들이 훨씬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행동을 통해 입증해야 한다.”

전시국제법의 합법성에 갇히지 않고서 새로운 합법성을 창출하는 것이 파르티잔의 주요 전략이라고 한다면 하마스의 이번 기습 역시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 민중이 내몰린 현실은 선전포고와 같은 전시국제법의 형식을 지킬 만큼 여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압도적인 전력차이를 넘어서려면 전례 없는 방식으로 공격을 가해야 했을 것이다.

이번 기습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문제를 환기시킨 것은 확실하다. 또 다른 방법이 이처럼 효과적으로 세계 여론의 주목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까. 그러나 성폭력을 수반한 민간인 학살과 납치는 이스라엘의 압제만큼이나 용납하기 어려운 만행이 아닌가. 이마저 정당하다고 말한다면 전쟁과 폭력에서 힘의 논리 말고 남는 것은 없다.

체는 세계혁명의 기대 속에서 게릴라전의 마지막에 국제연대에 대한 희망을 내비친다. “전 세계 수많은 곳에서 침략에 항의하는 뜨거운 가슴을 가진 수백만의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하마스의 만행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지에서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을 규탄하기 위해서 거리로 나서고 있다. 그렇다면 하마스의 기습은 파르티잔다운 간계였던 것일까. 하마스의 전략은 세계를 변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저항의 윤리를 근원적으로 질문하도록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