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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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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기자 칼럼

쇼의 맛, 잉크의 맛

Jen25 2024. 6. 14. 15:21

쇼의 맛, 잉크의 맛

김수연 기자

 

바야흐로 쇼의 시대다. 어디에나 웃음소리와 정신없이 빠져든 공허한 눈들이 있다. 쇼에는 등장인물 역할을 맡은 연기자와 각본가, 연출가, 각 분야의 스태프들이 필요한데, 이들 중 쇼의 의미와 구조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가끔 배역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연기자가 있다. 그래도 그의 웃음과 울음, 분노는 그 자체로 볼거리가 된다. 관객들이 서사에몰입해, 도덕적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등장인물을 단죄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거나 부조리한 일에 분노하며 연대 의식에 겨워 울음을 애써 삼킬 때면 쇼에 섞여들지 않는 가련한 연기는 이미 쇼의 일부가 된다. 끝내 슬픈 장면에서 웃어버리는 맥락 없는 연기도 나름대로 쇼

를 장식하는 우스꽝스러운 엔지(NG).

관객들은 그 서툰 웃음의 의미가 자신들의 웃음이 의미하는 쾌락과 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배우의 연기는 배역과 싱크로율 백 퍼센트에 가까워지기 위해 허구이자 가짜를 기꺼이 자처하지만 웃는 관객들의 빛나는 눈동자에서는 그들의 진실이 새어 나온다. 진실은 바로 이 쇼가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현실을 잊게 만든다는 것이다. 쇼라는 구조물에서 설계된 세부 사항은 감탄을 유발할 정도다. 관객이 너무나도 쉽게 몰입해 찬양을 금치 못하게 되는 그런 재미, 이것이야말로 눈물과 웃음이 범람하게 하는 쇼의 원동력이자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관객들은 재미 포인트가 자극적일수록 전율한다. 이렇듯 쇼가 넘치는 시대에 펜으로 종이에 무언가를 쓴다는 건 참 이상한 짓이다. 결국 펜 끝으로 종이를 누르다 구멍을 뚫을 지경에 다다를 때까지 고심하는 일을 감내하면서 쇼 대신 백지의 휑한 면을 바라보는 건 이상하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상함은 쇼가 갖지 못한 텅 빈 공백에서 온다. 쇼가 보지 못하는 것을 아무 데로도 통하지 않는, 종이를 펜으로 뚫은 구멍이 설명한다. 고뇌하다 펜으로 뚫은 구멍은 더 이상 말할 수 없다는 침묵 혹은 이제까지의 비명과 같은 외침을 삼킨 채, 한시적으로 묵묵부답인 상태에 놓여 있다. 그 한없는 시간을 헤아리는 동안 펜이 가는 길이 떠오른다. 펜이 길을 따라가면 활자로 된 무언가가 그려진다. 그것은 개연성 없이도 이루어지는 필연이다. 쇼의 서사가 관객을 설득하기 위해 특별히 개연성을 가져야 하는 것과 달리 종이와 펜의 존재 자체가 그 뒤에 쓰인 검은 흔적들을 증명한다.

쇼는 즐겁고 관객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한다는 사실은 절대적이다. 그러나 휘황찬란한 맵고 달고 짠 자극에 흥분하는 눈빛은 종이에 뚫린 구멍을 미련하게 응시하는 끈질긴 시선과는 다를 것이다. 솔직히 필자의 시선은 종이에 뚫린 구멍 주변 지저분하게 찢어진 종잇조각과 펜의 자국에서 떠날 수 없다. 채 마르지 않은 종이 위에서 쓴맛을 감지하더라도 아마 어쩔 수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