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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 침묵하겠습니다 본문
하루만 침묵하겠습니다
정재훈 기자
준비하는 사람도 참여하는 사람도 집에 가고 싶어만 할 것 같은 예비군 훈련은 몇 번을 경험해도 적응하기 어렵다. 물론 여기에서 훈련의 구조적 문제를 규명하고 싶지는 않다. 물리적으로 참을 수 없는 정도의 고통이 있지도 않았고, 정신적으로 큰 압박을 경험할 일도 없었다. 저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도는 다르겠지만, 훈련 자체가 필요한 이유도 있으리라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모두 똑같은 옷을 입은 채 입장 순으로 받은 번호표를 목에 걸고 나란히 열을 맞추어 같은 행동을 반복함을 지켜보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각자의 작은 ‘다름’을 관찰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마주한다면 더욱 그렇다. 예비군들은 저마다의 불만을 감추며 전투모를 착용하고, 지급되는 장비를 모두 같은 위치에 정비하며,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같은 행동을 한다. 간혹 전투모를 쓰지 않은 채 들고서 걷거나, 잘못된 위치에 장비를 부착하는 사람들도 발견되는데 이들은 집단 속에서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 그 정도는 아무도 지적하지 않으며, ‘다름’을 발견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작은 차이만 존재하는 풍경. 훈련생들은 그저 같은 사람처럼 보인다.
이처럼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자꾸만 ‘현실 세계’에서도 왕왕 보이는 것만 같다. 작년 6월 소설가 오정희가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로 위촉되었고, 그가 박근혜 정부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있다는 사실에 반발한 문화예술단체는 개막식에 참석해 항의하려 했지만, 송경동 시인 등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은 대통령실 경호원들에 의해 행사장 입구에서 강제로 끌려나갔다. 같은 해 7월에는 경북 경산시의회에서 한 시의원이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발언하자 그의 마이크가 꺼졌고, 결국 사무국 직원들에 의해 퇴정당했다. 올해 2월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학위 수여식에서 대통령의 연설 도중 경호원이 “R&D 예산 복원”을 주장하는 졸업생의 입을 막아 제지했고, 학생은 몸이 공중에 들린 채로 퇴장당했다. 세 사건 모두 누군가의 입을 막았고, 조용히 할 것을 종용했다. 그리고 ‘다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리에서 사라져야 했다. 이러한 행위가 공공연히 보여지면서, 남아있는 사람들은 거슬리지 않는 차이만을 지닌 개인으로 축소되어 버렸다.
예비군 훈련을 비롯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 역시도 시키는 일을 철저하게 지키며 조용히 훈련을 마쳤으니까. 하지만 모두 같은 옷을 입고, 다름을 티 나지 않게 숨기고, 한 목표를 향해 시간을 보내는 삶은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이를 유지하기 위해 ‘다름’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상황만을 바라며, 뜻하지 않게 돌출되는 무언가를 잘라내려는 시도는 문제가 있지 않나. 그리고 이를 2024년에도 여전히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랍지 않은가. 자꾸만 일상에서도 예비군 훈련을 소환하고 싶지는 않다. 하루 정도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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