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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사실(fact)이 위협받는 시대의 ‘고루한’ 글쓰기 본문
사실(fact)이 위협받는 시대의 ‘고루한’ 글쓰기
천관우 기자
필자는 대학원에서 크게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다. 업(業)으로 하는 역사 공부와, 신문사의 기자 생활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는 그 접근방법과 권장되는 양식은 많이 다르지만, 사실(fact)에 입각한 글쓰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두 가지 일에 모두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실에 입각한 글쓰기라는 점에서 두 가지 일은 공통적인 위협에 직면해 있다. 바로, 지금이 사실의 가치가 위협받는 시대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을 지적할 수 있지만, 이번에 다루고 싶은 것은 여러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따라 ‘사실’이 갖는 가치가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지금은 특정 사건에 대해 어렵지 않게 그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고, 관련 정보도 검색할 수 있는 까닭에, 역사교육 분과에서는 이러한 의제를 제목으로 한 번역서도 출판된 바 있다(샘 와인버그 저, 정종복·박선경 역, 『내 손안에 스마트폰이 있는데 왜 역사를 배워야 할까?』, 휴머니스트, 2019). ‘위기’에 봉착한 상황은 신문 매체도 유사하다. 굳이 세상의 다사다난한 일들을 알기 위해 신문사의 보도를 기다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유튜브가 더 빠르고, 아마 입맛에도 더 맞는 정보를 알고리즘에 따라 제공해줄 테니까.
그렇다면 눈부신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이니 이 ‘고루한’ 양식을 고수하는 글들도 ‘변화’해야 마땅할까? 필자 자신이 우매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이러한 참신한 시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다소 역설적이게도, 기술의 발전은 ‘사실’의 온전한 존립을 도리어 위협하기도 한다. 출처는 물론이고 진위 여부조차 분명하지 않은 정보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제 독자는 취향에 따라 원하는 정보만을 취사 선택하기에도 준비된 정보는 차고 넘친다. 그리고 이를 잘 조합하기만 해도 그럴듯한,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발달한 매체를 타고 삽시간에 유포되는 ‘대안적 사실’이 때때로 ‘사실’보다도 강한 힘을 갖는 것을 본다. 더욱이 요즘처럼 갈등과 혐오가 일상인 시대에는, 사실 자체보다는 그저 사실로 포장된 무언가가 필요한 것일 뿐, 더 이상 무엇이 진정한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렸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사실에 입각한 ‘고루한’ 글쓰기는 더욱 필요한 것이다. 사실의 가치마저 의심받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연구이든 기사작성이든, 사실에 입각한, ‘전통적인’ 방식으로 글을 쓰는 일은 여전히 고유한 가치를 갖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마도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발전하고 변화하여 가는 중에도, 또한 세태의 변화에 따라 점점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여전히 대학원의 작은 공간 한편이나마 차지하고 있는 까닭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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