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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이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다 본문
이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다
조수아 기자
1943년, 교토 도시샤(同志社)대학에 다니던 윤동주 시인은 귀국을 앞두고 소풍을 떠난다. 교토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우지(宇治)시. 그는 마을 한 가운데를 흐르는 우지천의 구름다리에서 사진을 찍고(이때 찍은 사진이 현존하는 그의 최후 사진이다), 친구들과 얼마간 웃고, 다시 자신의 하숙집이 있는 교토의 동쪽 끝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그가 조선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을지, 구겨진 수첩을 펼쳐 조선어로 시를 썼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수학 과정을 감시해 왔던 일본 경찰에 의해 체포된다. 그에게 덧씌워진 죄명은 ‘재경도(在京都)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 피고 윤동주는 치열한 민족의식을 품고… 우리 일본의 통치 방식을 조선 고유의 민족문화를 절멸하는 것이라고 여긴 결과… 조선을 제국의 지배로부터 이탈시켜 민족의 해방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고 망신(妄信)하고…
재판정을 가득 메우는 죄에 대한 선고, 위법과 망신이라는 단어들로 말끔하게 수합되는 자신과 자신의 마음에 대한 정의를 들으면서,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여전히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꿈꿨을까. 그러한 이름으로 상상되는 새로운 국면을, 지금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이 세계를 모조리 뒤집어버리는 또 다른 세계를, 계속해서 바라고 있었을까. 판결문에는 그가 매우 당당하고 의연하게 이전의 진술을 반복했다고 기재되어 있지만, 거기에는 그의 용기가 발화되기 전까지의 고뇌나 떨림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자신을 둘러싸던 낯선 얼굴들 사이에서 홀로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던 그의 심경 같은 것들은 알 수 없다. 내가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다다미 여섯 장 넓이의 작은 방에서 참회록을 써야만 했던 사실,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독립을 향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는 사실, 역사의 기록 안에 흩어져 있는 그 사실들 뿐이다.
한국인 친구들에게는 다 물어보았습니다. 그의 민족의식이란 것이 어느 정도였는지. 그는 시인이지, 독립운동가는 아니었겠지요. 그러니까 여기(일본)에서 공부도 하고… 2018년, 나는 그가 간절히 바랐던 해방 ‘이후’의 세계에서 살아가면서, 또 잠시나마 그가 다녔던 학교를 다니면서, 단 한 순간도 도시샤 대학 법학부 3학년 Y씨의 말을 잊은 적이 없다. Y씨의 그 질문에도 쉽게 대답해 줄 수 없었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지극히 보편적인 사실이고, 그 사실은 Y씨가 수집한 그에 대한 정보와 정말 ‘한끝’ 차이이고, 그 차이를 설명하는 데 우리 사이에 놓인 국가와 민족이라는 것들은 너무 커다랗고, 커다랗다 못해 둔탁한 소리까지 날 것 같았기 때문에. 미해결된 Y씨의 질문은 아직도 이렇게 나를 찌르고 짓누른다. 그런데 아주 역설적으로, 그 사실을 알아 챌 때마다, 그의 마음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 같다. 정말 이상하게도, 이 상한 마음을 안고 울 때마다, 그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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