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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돌파하는 글쓰기 - 진정한 대화를 향하여 본문
삶을 돌파하는 글쓰기 - 진정한 대화를 향하여
정재훈 기자
학교 주변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혼자 술 한잔할 수 있겠냐고 묻는 사람이 들어왔다. 술을팔지 않는 작은 식당이었지만, 점원은 다른 곳에서 술을 구해오겠다고 응대했다. 손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은 이 앞에 있는 대학의 졸업생이고 지금의 골목은 이전보다 많이 넓어졌으며 다른 동기들에 비해 내가 제일 성공하지 못했다는 외침에 가까운 말들을 쏟아냈다. 주방과 매장 사이 커튼은 방음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함에도, 그마저 들추어가며 대화를 시도했다.
취한 채로 자기연민에 휩싸여 무례한 태도로 반말을 내뱉는 데서 불쾌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말들이 떠도는 시대 속에 아이러니하게도 처절히 대화를 갈망하는 사람을 마주하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우리는 정말 ‘대화’ 하고 있을까. 오늘날 진정한 ‘대화’란 무엇일까. 거창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나의 발화에 대한 의문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 나는 대화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여럿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식당과 메뉴를 골라야 하는 상황은 매번 곤혹스럽고, 생필품 하나를 사려고 들 때면 결정의 순간까지 몇 개의 후보군을 추리고 추려내는 편이다. 요즘은 이럴 때 스스로에게 “정답은 없다”고 이야기하는 연습을 한다. 당장 눈앞에 놓인 석사 논문은 주장을 만들어갈 수 있게 하는 무수히 많은 선택의 시간들이 전제되어야 하니까. 지금까지의 선택에는 어떤 형태의 후회가 뒤따르곤 했으니, 결국 대단히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는 무언가일지라도 단단히 잡아보고 싶어졌다. ‘정답 없음’을 무기로 삼아 나의 주장을 글쓰기를 통해 실현하고 이것이 불러올 또 다른 대화의 가능성을 체험하고 싶다.
문득 이런 주장이 오답이 없다는 말과 등치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지금의 한국 사회를 떠돌아다니는 ‘왜곡된 공정과 자유를 무기로 하는 발화’에 대한 옹호로 비추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홍범도 장군의 동상 철거를 두고 기자들에게 “공산당에 참가한 것은 맞지 않느냐”는 대답을 반복하는 국방부의 입장을 ‘가능한 것’ 중 하나로 해석하고 싶지 않다. 내가 문학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었지만, 대학원에서의 짧은 경험은 문학에도 ‘오답’이 존재한다는 성찰을 가능하게 했다. 만약 나의 글쓰기를 주변의 삶으로 확장하고 다시 세상에 펼쳐진 대화의 장 속에 던져낼 수 있다면, 그렇다면 앞으로 마주할 순간들은 ‘글쓰기’에서 비롯된 ‘대화’가 지니는 의미를 스스로 점검하는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도교수님은 논문 쓰기도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씀을 종종 하신다. 논문은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고 삶을 돌파하는 방식을 대리 경험하는 것 중 가장 값싼 것이 아니더냐. 마음껏 방황하고 흔들리고 그럼에도 무언가를 건져보면 되지 않겠냐고 담담하게 건네시는 말 속에 나의 글쓰기가 그리고 우리의 대화가 나아갈 방향성이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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