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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칼을 맞는 기분을 알지 못한다면 본문
칼을 맞는 기분을 알지 못한다면
조수아 기자
우연찮게 나는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자기소개서>를 보게 된 적이 있다. 그는 유년 시절의 경험을 서술하는 칸에 아주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새마을의 날’에 대해서 썼다. 우물의 돌들을 다시 쌓아 올리고 오래된 지붕을 색칠하는 일이, 겨우 그런 일이 그에게는 그렇게나 인상 깊었던 걸까. ‘새마을의 날’에 맛보았던 어떤 각성의 순간들은, 그로부터 평생 동안 그의 삶을 지탱하는 데 쓰인다. 자신의 발전은 곧 국가의 발전이고, 국가의 발전은…… 그 논리가 옳고 그른지 판단할 나이가 되기도 전에, 크고 무거운 칼을 찬 지도자의 모습은 그의 마음 깊은 곳에 각인되었다. 지도자가 말하는 진정한 국민이 되기 위해, 아니 그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 지도자의 언어를 획득했고 지도자의 논리를 그대로 답습해 나갔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민주고 애국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지금도 그는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그를 새로 ‘태어나게’ 했던 위대한 지도자가 죽고, 또 다른 칼을 찬 지도자가 등장했을 때 그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냐고.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또 심히 부끄럽지만, 그는 여전히 박정희를 존경했고 전두환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1980년 5월 18일, 그는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말에 가만히 집에서 책을 읽었다고 했다. 그 다음 날, 그 다 다음 날에도 그는 흔들리는 손전등 빛에 기대어 책만 뒤적거렸다고. 그래서, 그 책은 뭐였어?
그토록 굳게 믿었던 국가가 ‘나’에게 총을 겨누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에, 그렇게나 열심히 읽었던 책의 제목과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나는 그때 그의 세계가 한 번 무너졌을 것이라 짐작한다. 감히. 한 사람의 마음을 내 멋대로 재단해 본다. 박정희는 존경하고 전두환은 존경하지 않는다. 어린 그가 방 안에 숨어 미래를 상상할 때, 그가 꿈꿨던 모습을 한 사람들은 총과 칼을 무참히 휘두르고 있었다. 감히. 정말 감히. 한 사람의 세계를 짓밟는다. 그래서 나는 차마, 그런 군인들을 존경할 수가 없다. 나는 그런 군인이 아니라 다른 군인이 되어야지. 나는 진정으로 우리 조국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믿겨지나. 그럼에도 누군가는 그런 군인이 되지 않기 위해 군인을 꿈꿨다는 사실이. 한강은 『소년이 온다』(창비, 2014)에서 “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고 적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사라진 공수부대원. 집단 발포 명령에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 그가 이런 군인이었다는 것이 아니다. 이런 군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를 비롯한 당시의 수많은 사람들이 품었던 국가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 것이었을지. 폭력의 주체가 폭력 앞에서 무언가를 바꾸고자 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맞닥뜨리는 것이 얼마나 죄스러운 일일지. 감히. 정말 감히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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