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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기자 칼럼

나를 먹는 꿈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4. 15. 13:26

 

나를 먹는 꿈

 

김정연 기자

 

나는 '장래희망'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 개인의 꿈이자 목표인 장래희망은 나 의 이상향이 되고 삶의 원동력을 선물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숨쉬기 힘든 좌절과 패배감을 주기도 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혹자는 말한다. "그런 좌절이 있기에 꿈은 가치가 있는 거 야." 나는 그런 말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한다. 꿈은 절대로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다. 한 단어로 정의한 꿈은 언젠가 내 목을 죄여온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내 꿈은 '배우'였다. 배우가 되고 싶어 부단히 노력했다. 예고를 졸업하고 대학교도 연극학 부로 진학했다. 몸이 힘들고 과의 분위기에 적응하기 힘들어도 행복했다. 그리고 내 꿈이었던 배우가 되었다. 대학로의 작은 연극에 불과했지만, 급여를 지급받는 정식 배우가 되었다. 그 이후 언젠가 나조차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 어느 순간부터 신물이 나고 구역질이 올라왔다. 나는 아마추어에 불과하더라도 꿈을 이루었는데 행복하지 않았다. 차가운 사회에서, 상업연극 이라는 현실에서 내 인생의 반절 가까이 되는 시간을 들여 공부한 연극은 거의 필요하지 않 았다. 현실의 연극은 그다지 큰 의미를 담지 않는 여흥거리의 목적이 컸다. 배우의 가치는 관 객의 평가에 달린 것이 지당한 이야기다. 하지만 내가 사랑했던 무대는 그날 무너져 내렸다. 

그 뒤로 나는 매일 매일 고민했었다. '나는 여전히 연기를 사랑하나?'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 문했다. 하지만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남겼던 노트를 보게 되었다. 그 노트를 읽으면서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숨죽이고 참 많이도 울었다. 거기에는 행복함이 가득 담 겨보였다. 그리고 새로운 질문이 떠올랐다. '내 꿈은 배우인가?' 아니, 아니다. 내 꿈은 고작 배우 가 아니었다. 나는 연극이 좋았고 희곡이 좋았다. 그 희곡이 우리나라에서 비인기 문화임이 슬 펐고 고통스러웠다. 나는 생명이 꺼져가는 연극이, 가치 있는 정극들이 다시 생명을 찾기를 꿈 꿨고 배우가 되고 싶었다. 희곡을 공부하고 연극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위대 한 일인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도 가벼운 연극이 아닌 한 나라의, 한 작가 의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에 공감해주기를 바랐다. 나의 꿈은 연극과 희곡을 다시 되살려내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 난 대학원이라는 길을 찾았다. 

막연한 꿈은 때로는 독이 된다. 우리 꿈에 먹히지 않도록 조금은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 다. 내가 그 직업을 왜 꿈꿨는지, 직업을 성취한 뒤의 목표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자 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으면 한다. 또한, 대학원은 도피처라고 생각하는 막연한 인식도 있 지만, 그 또한 자신의 목표를 찾는 고난의 길임을 항상 기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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