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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빼앗긴 영광에도 봄이 오려면 본문
기자칼럼 -최서윤 기자
‘그’의 손자가 광주를 방문해 할아버지의 죄, 그리고 무지하게 살아왔던 자신에 대해 사죄하며 피해자 유가족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물론, 이 ‘대리사죄’가 모든 것을 대표해서 사면해줄 수는 없다. 누군가를 40년이 넘는 긴 악몽에 시달리게 했던 자들은 끝까지 죄를 부인한 채 편안하게 눈을 감았거나, 아직까지도 평온한 삶 속에서 눈을 가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눈물 흘리던 청년을 오히려 유가족들이 다독여주며 따뜻한 포옹을 건네는 모습을 하루에 몇 번씩 돌려 보자니, 훈훈함과 동시에 느껴지는 낯설음을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10년 넘게 복수를 준비해온 피해자에게 다짜고짜 원하는 돈 액수를 적으라던 드라마 <더 글로리>의 박연진 쯤은 되었어야 친숙하게 느껴졌을까? 아니면 친구의 머리를 변기에 밀어 넣고 괴롭힌 것을 “기억 안난다”고 변명하는 표 씨의 동창 정도는 되었어야 했나? 사과를 요구하는 피해자의 처절한 목소리가 끝까지 묵살당한 채, 유일하게 남은 방법이 ‘사이다’ 같은 복수인 상황을 나도 모르게 예상했던 건 왜였을까. 과연 진정한 반성과 사과는 무엇일까.
사과. 반성. 사죄. 참 자주 들려오는 말이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와 그에 대한 피해자의 수용, 더 나아가 용서와 화해까지 이루어지는 건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학교폭력, 국가폭력, 식민지배와 같이 인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느끼게끔 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너무나 오랫동안 피해자들의 절규가 외면당해왔으니 말이다. 한 사람, 한 사회, 한 국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 가해자들은 늘 권력과 얼토당토않은 정당화의 논리 뒤에 숨어버린 채 귀를 막아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다 억지로 사과 한두 마디 건네고 배상이라면서 얼마의 금액을 피해자의 손에 쥐여주기라도 한다면 그 당당함은 배가 된다. 이쯤 했으니 된 게 아니냐며.
글쎄, 과연 무엇이 되었다는 걸까. 신념을 위해 몸과 마음을 잃었던 희생자들과 그 유족, 학
교폭력의 트라우마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들, 그리고 강제동원에 젊음과 영혼을
빼앗겼던 수많은 생존자들이 한결같이 요구하는 건 무엇이던가. 가해자의 책임회피, 또는 그때뿐인 ‘사과’ 한마디나 돈 한두 푼으로 퉁 친 ‘반성’, 그리고 이마저도 대단한 것을 했다며 생색내는 태도는 아닐 것이다. 결국, 피해자가 납득할 수 있는 것은 사과의 횟수나 경제적 보상 따위가 아니라, 피해자가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해주려는 노력일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잘못을 깨달음으로써 자신과 같은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을 거라 안심할 수 있을 때에야 가능하리라. 그래야만 잃어버린, 아니 빼앗겨버린 이들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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