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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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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면/기자 칼럼

우리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12. 5. 23:58

7면 하단_기자칼럼 (최서윤 기자)

우리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개봉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여전히 흥행하고 있다. 한 거장의 영화 인생을 마무리하는 은퇴작일뿐 아니라, 전쟁과 평화, 성장과 각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는 요즘 시사하는 점이 많기 때문일 테다.

어린 마히토의 시선에서 바라본 일본은 공습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어머니와 막대한 부를 누리던 군수업자 아버지, 즉 군국주의의 피해자와 수혜자가 공존하는 참담한 현실이었다. 그러던 중 새어머니 나츠코를 찾아 들어간 큰할아버지의 세계는 평화로운 듯 어수선했고, 안전한 듯 불안했다. 이상적인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그 속에서 균형을 이어가고자 했던 큰할아버지는, 그 균형이 위태로워지자 마히토에게 자리를 넘겨주며 그 질서와 평화를 회복하고자 한다. 자신이 설계한 세상을 13개의 돌로 유지하고자 했던 큰할아버지였지만, 그 세계 역시 계획대로 완벽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부상을 입은 펠리컨이 와라와라를 잡아먹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그곳을 저주받은 바다라고 한탄하다가 죽고, 권력과 욕심에 눈이 먼 앵무새 대왕의 날갯짓 한 번에 허무하게 세상이 무너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큰할아버지의 세상 속 평화질서란 설계자의 욕심과 허영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마히토가 선택한 것은 자신이 큰할아버지의 세계를 물려받아 균형과 평화를 다시 찾고 이어갈 수 있다는 허황된 꿈이 아니라, 전쟁과 폐허로 물든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상적인 세계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암울한 현실일지라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희망을 가지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마히토의 이야기는, 수많은 소수자의 목소리를 묵살한 채 시위와 충돌이 없는 사회를 평화라고 믿는 이들에게 필요한 교훈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결코 평화롭지 못하다. 폐허가 되어버린 고향 마을을 보며 눈물 흘리던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모습이 채 잊히기도 전에, 다 피지도 못한 인생을 너무나도 허무하게 잃게 된 가자지구의 수많은 아이들, 그리고 여전히 숱한 차별과 혐오에 맞서야 하는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공존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목격되는 폭력과 차별은, 혹자가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평화란 큰할아버지의 세계만큼이나 위태로운 허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평화란 무엇이고, 어떻게 도달할 것인가. 어린 마히토의 경험처럼 차별과 혐오, 전쟁과 학살이 만연하는 시기에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것, 희망을 잃지 않고 책임감을 가지며 살아가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