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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이상 텍스트와 근대적 예술론의 지형 본문

6면/학술동향

이상 텍스트와 근대적 예술론의 지형

Jen25 2024. 12. 27. 11:25

이상 텍스트와 근대적 예술론의 지형

 

지난달 16일 2024년도 하반기 이상문학회 정기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상은 천재 시인이자 소설가로 불리며,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9월에는 광주과학기술원(GIST) 학부생들이 이상의 연작시인 「오감도」에 물리학을 접목해 분석하는 해석법을 발표했고, 이 과정에서 이상이 물리학을 학습한 건축학도였다는 점이 다시금 주목받기도 했다. 또한, 지난 25일에는 이상의 작품을 수학과 물리학 개념을 활용해 재해석한 무대인 ‘오감도 : 까마귀가 내려다본 세상’이 제45회 서울 무용제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이상의 작품과 그의 생애는 끊임없이 재조명되고 있으며 문학을 넘어 여러 분야와 접목되는 방식으로 호명되고 있다. 이번 학술대회 역시 이상의 텍스트를 양자역학적 관점으로 해석하거나 당대 지면에 함께 발표된 삽화의 의미를 살펴보는 등의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졌다. 이에 본지에서는 발표 중 2편을 뽑아 소개하고자 한다. 

 

천변의 지도 암실의 풍경 - 이상과 박태원이 함께 꾸었던 회화적 이상 -

 

  첫 번째 발표자인 송민호는 이상과 박태원이 개인적인 친분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그들이 함께 꿈꾸었던 ‘회화적 이상’은 무엇이었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는 주장으로 논의를 시작했다. 송민호는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발표되었을 당시의 삽화를 이상이 그렸고, 이는 둘 사이의 오랜 대화와 계획된 협업을 통해 완성된 산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소설과 삽화를 동시에 발표한 경우 중에서도 박태원과 이상의 것을 특별한 사례로 해석해야 한다고 보았다. 박태원은 소설가로 알려졌지만 1930년대 초반에는 자작의 삽화를 그릴 정도로 미술에 관심이 많았으며, 이상 역시도 경성 고공 재학시절 미술부 활동을 통해 현대미술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이들은 이상이 경영하던 제비 다방에서 다양한 토론과 대화를 통해 이러한 경험을 공유했다.

  1930년 무렵, 신문에 장편 연재소설이 증가하며 삽화를 그리는 작가들도 많은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는데, 그중 화가 이상범은 박태원의 『적멸』의 삽화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상범은 작품 초반부에는 주인공의 성격을 시각적으로 각인할 수 있도록 인물의 외양이나 특징을 강조하는 삽화를 넣고, 소설이 전개되면 중심 장면을 시각화하는 일반적인 문법 관행을 따르며 삽화를 연재해 나갔다. 하지만 『적멸』은 작가인 주인공이 거리를 산책하고 현대의 물상을 관찰하고 사유하는 등의 ‘고현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쓰였기에, 이상범은 인물의 내면을 어떻게 시각화된 스펙터클로 옮길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마주했다. 따라서 발표자는 3~5회에 걸쳐 이상범이 그린 삽화를 모아본다면 “낯선 글쓰기적 대상을 시각화하는 방식에 대한 당혹감”을 읽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후 전통적인 삽화 범주를 넘어서는 방법론이나 특별한 스타일을 구축하지 못하였기에 소설 6회에는 삽화가 실릴 수 없었고 8회부터 10회까지 삽화가 연속으로 휴재되었다. 

  14회 연재부터는 이상범 대신 박태원이 직접 그린 삽화가 실리게 된다. 그러나 박태원의 삽화는 그림만 보고는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한데, 발표자는 그러한 박태원의 삽화가 텍스트와 함께 조응했을 때 비로소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소설의 텍스트와 삽화가 일방적으로 한쪽의 의미를 해설하는 것이 아닌 서로를 필요로 하는 새로운 관계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후 박태원은 『반년간』을 발표할 때에는 소설과 삽화를 동시에 연재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삽화를 선보인다. 이는 단편인 『적멸』이 의식의 흐름이 중요한 작품이었다면, 중편인 『반년간』은 일본 도쿄를 배경으로 경험적 세계를 펼쳐내는 소설이기 때문에 발생한 차이로 보았다. 또한 『반년간』은 ‘회화적 삽화’가 아닌 ‘영화적 삽화’의 특징을 갖는다. 예컨대 『반년간』의 6회의 삽화에서는 천정에서 두 인물을 내려다보는 구도를 보여주는데 이는 인위적으로 카메라를 천장 위에 배치하여 내려다보는 독특한 구도로 설정된 것이다. 또한 26회의 삽화에는 계단을 내려오는 여성을 올려다보는 1층 사람들을 그려냈는데, 이때 주제를 삽화의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닌 카메라를 중심에 두는 구도를 활용했다. 이처럼 박태원 소설과 함께 발표된 삽화의 의미는 단순히 소설을 보조하는 수단을 넘어 작가의 예술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박태원과 이상은 무엇을 주고받으며 의미를 만들어 갔을까. 이상이 그린 두 개의 그림은 작품의 표제 컷에 해당하며 삽화 제작의 설계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1회의 표제 컷으로 활용되었던 그림 우산의 반쪽은 펴져 있고, 반쪽은 접혀 있다. 이때 비가 오는 날과 오지 않는 날은 하나의 시공간에서 공존할 수 없기에 서로 모순되는 시간이 병존하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연재 9회부터 사용된 표제 컷인 그림에서는 나뭇가지가 중력을 거슬러 거꾸로 자라고 있으며 이는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역설을 삽화를 통해 구현한 것이다. 이처럼 이상의 표제 컷이 모순과 역설로 가득 차 있는 것은 이상이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텍스트 또한 모순과 역설이 존재한 것으로 인식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도시 경성을 걸어 다니는 구보 씨의 “신체적인, 사유적인 맥락 내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은 이상의 삽화에서는 절단된 오브제로 끌어들여지고, 서로 모순되거나 상호 역설이 되는 오브제들은 그의 삽화 평면 속에서 특별한 누빔점[seam]도 없이 기워 붙여지는” 방식으로 실현된다는 것이다. 

 

 

  연재분 2회의 원고지와 치마저고리가 붙어있고 그 위에 두 개의 왼손이 숫자를 헤아리고 있는 삽화를 두고 발표자는 이상이 소설에서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 정보를 드러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소설에서는 구보씨가 원고료를 받고 어머니에게 먹고 싶은 것을 사드린다고 하자, 그것이 기뻤던 어머니는 먹는 것보단 자신과 며느리의 치마를 사달라고 요구하는데, 삽화에서는 손가락을 통해 소설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치마의 금액을 명시하고 있다. 그 뒤로는 원고지-치마가 연결되는 장면을 그림으로써 예술과 생활이라는 모순 속에서 작가의 글쓰기가 치맛감으로 교환되어 화폐가치를 갖게 되는 구조를 나타내고 있다.

  10회의 삽화에서 주목할 수 있는 부분은 주인공인 구보 씨의 모습이 아닌 그가 소설에서 두고 간 단장(短杖)이 삽화의 중심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사물을 중앙에 배치하면서 행간에 등장하지 않았던 장면을 삽화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18회 소설에서는 이상을 모델로 한 인물이 등장하기에 이때의 삽화에는 구보와 이상이 걸어가고 있는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두 사람은 모두 턱시도를 입고 나비넥타이를 하고 있는데, 실제 작품에서 이러한 복장을 했을 가능성은 없다. 이는 이상의 기분이 반영된 ‘상상도’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가난한 소설가인 박태원과 가난한 시인인 이상이 턱시도 차림으로 경성의 거리를 걷고 있는 삽화는 둘 사이의 내밀한 대화의 하나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상 시의 다중세계와 세계선 - 「삼차각설계도「선에관한각서5」」를 중심으로 

 

  발표자 윤수하는 이상의 시에 수학이나 과학적 소재가 등장하며 이것이 이상의 지식에 기반한 상상적 산물이라고 가정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이를 위해 프랑스 수학자인 라플라스가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이것은 미래까지 예언할 수 있다”고 주장한 ‘라플라스의 악마’의 개념을 차용한다. 라플라스는 현대의 블랙홀이라 불리는 ‘악마성(Dark star)’을 예측했고 이것을 중력장이 너무 강해 빛이 탈출할 수 없는 시공간의 개념으로 정의했다. 발표자는 이러한 개념을 이상의 시 「각서1」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시는 시적 자아가 특정한 입체 안의 운동을 대상으로 자문자답을 반복하는 구조이다. 첫 번째 질문은 사람이 발명한 물질이 ‘초당 6십만킬로미터’를 달아난다면 태고의 사실을 볼 수 있으며, 그 매체가 ‘원자’라는 답을 내놓고 이후에는 끊임없는 영겹의 세월을 사는 것은 ‘생명’이 아닌 ‘광선’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이때 사람의 신체를 이루는 원자는 빛을 이루는 원자의 전자에 의해 ‘붕괴’되는데, 이는 곧 사람이 빛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시에 등장하는 ‘電子(전자)의陽子(양자)’는 전자를 더 작게 쪼개는 입자를 뜻하고 이때 전자는 다른 공간에 동시에 머물 수 있는 특징을 지닌다. 따라서 인지가 전자화되어 라플라스의 악마 같은 존재를 만난다면 신체는 현재에 있지만, 인간이 신체의 원자를 통해 과거·현재·미래를 모두 볼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이후 「각서3」에 등장하는 수식(nPn=n(n-1)(n-2)......(n-n+1))은 n개의 개별적 원소를 늘어놓음을 통해 신체에 있는 수없이 많은 원자를 표현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이러한 원자들은 ‘세계선’을 지니고 있으며 측정할 수 없는 시공간을 거쳐 신체라는 입자에 머물고 있다. 「선에관한각서」의 화자는 모든 편에서 ‘태고의사실’을 보는 것을 소망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인지 능력을 갖춘 ‘腦髓(뇌수)’를 ‘빛원뿔’의 형태로 변형시키고 미지의 시공간을 관측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민코프스키의 기하로도 알려진 특수 상대성 이론 속 시공간에서 입자의 운동은 원뿔의 형태로 묘사되고 있음을 참고할 수 있다. 「삼차각설계도」는 삼차원 공간의 각도를 설계한다는 뜻이며 ‘선에관한각서’의 ‘선’은 선형대수학의 선을 의미한다. 양자 과학에서 양자를 이루고 있는 힘은 벡터이며 원리는 선형대수학으로 설명하지만, 이러한 해석만으로는 이상의 시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고 보았다.

  이에 발표자는 민코프스키가 도입해 일반 상대성이론에 중요하게 쓰이는 세계선(World line) 개념을 활용한다. 공간좌표와 시간 좌표를 함께 나타내는 것을 세계점(World point)이라고 하고 이러한 세계점이 그리는 궤적을 세계선이라고 부른다. 「각서2」는 3차원의 공간과 1차원의 시간이 교차되는 현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인슈타인에 따르면 3차원 공간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서의 물리현상은 4차원의 시공간의 세계에서는 사건을 포함하여 그 자체가 ‘존재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만약 「각서2」의 선이 세계선을 의미한다면 ‘一點(일점)’은 ‘光線(광선)’이라는 수단을 통해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만나는 것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나를 모으는 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만나는 사건은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하며 이때 「각서1」에서의 가장 큰 사건으로 ‘結婚(결혼)’이 제시되고 있음을 참고할 수 있다. 빛의 입자가 되어 빠르게 달아나는 내가 운행 중에 결혼이라는 사건을 만나 아이를 낳는다. 이는 세계선 A와 세계선 B가 만나 세계선 C를 만드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각서2」에서는 A와 B 그리고 C가 결합하여 각각 A, B, C가 된다. 이는 세계선 상의 ‘一點(일점)’인 A, B, C가 모두 같은 대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나(A), 현재의 나(B) 그리고 미래의 나(C)가 모두 같은 교점에 다다르고 결과는 일정하다는 것이며 세계선의 교차는 하나의 나를 구성하는 결과로 수렴된다. 

  미래의 설계를 위해 여러 번 반복되는 미래를 경험한다는 『파우스트』의 가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형태가 바뀌는 미래의 시공간은 비결정적인 특성이 있기에, 파우스트는 만족할만한 미래를 얻기 위해 메피스토텔레스와 거래하며 결과가 바뀌는 미래를 경험한다. 과거와 현재의 행위가 미래를 운명을 바꾼다는 이러한 가정은 평행우주이론의 등장에 따라 구체적 시공간을 구현한다. 고차원 개념이 대중화되면서 영혼은 평행우주에 머무르고 그로 인해 문학 속의 다중세계가 구현되며 상상의 확장은 현실에서 다중세계로 건너뛰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때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보고 결정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여행할 수 있어야 하며 온전한 상태로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같은 세계가 여러 경우의 수로 존재해야 한다. 즉 평행우주가 존재하고 다중세계가 형성되는 상태여야 하며, 이때의 시적 자아는 사람이 아닌 ‘나’이자 동시에 사람인 ‘나’인 존재가 된다. 즉 한 존재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나 미래로 가서 자신의 미래를 바꿀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아닌 상태의 내가 일종의 행위로 다른 세계에 전달되어 그 세계의 인간으로 생존한다는 가정이다.

  「각서5」에서는 광선보다 빠르게 달아나는 사람이 광선을 보고 세 번 결혼한다. 다중세계로 진입을 뜻하는 결혼의 조건은 광선보다 빠르게 달아나는 것으로 빛보다 빠르게 달리면 시간을 거스를 수 있다는 상대성이론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에서 빛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은 ‘나’와 구별되고 ‘나’는 사람보다 빠르게 달아나는 존재이지만 무의식중에 사람과 일치한다. 또한 ‘나’는 세 번의 결혼이 이뤄지는 다중세계에 공통으로 존재하며 빛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을 깨닫고 다중세계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나’를 수집한다. ‘사람’은 살아가는 대상이지만 다른 세계로 옮겨가며 이전 세계의 기억을 잃고 ‘사람’으로서 나는 다른 세계의 생존을 피해 빠르게 달아난다. 이는 인간이 갖게 되는 ‘나’의 인지는 하나여야 하기에 발생한다. ‘나’와 생이 일치되는 순간 다른 세계의 ‘나’를 잊을 수밖에 없기에 ‘하나를아는것은다음의하나의것을아는것을하는것을있게’하는 현상이 발현되는 것이다.

 

■ 정리 : 정재훈 기자 wjd8889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