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마크 피셔 #자본주의 리얼리즘 #염동규 #자본주의
- 코로나19 #
- 5.18 #광주항쟁 #기억 #역사연구
- 산업재해 #코로나시국
- 심아진 #도깨비 #미니픽션 #유지안
- 쿰벵
- 미니픽션 #한 사람 #심아진 #유지안
- BK21 #4차BK21
-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 알렉산드라 미하일로브로나 콜른타이 #위대한 사랑 #콜른타이의 위대한 사랑
- 권여선 #선우은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김승옥문학상수상작품집
- 쿰벵 #총선
- 고려대학교언론학과 #언론학박사논문 #언론인의정체성변화
- 시대의어둠을넘어
- 고려대학교대학원신문사
- 항구의사랑
- 선우은실
- 한상원
- 임계장 #노동법 #갑질
- 김민조 #기록의 기술 #세월호 #0set Project
- n번방
- 518광주민주화운동 #임을위한행진곡
- 국가란 무엇인가 #광주518 #세월호 #코로나19
- 보건의료
- 수료연구생제도 #고려대학교대학원신문사 #n번방 #코로나19
- 죽음을넘어
- 애도의애도를위하여 #진태원
- 공공보건의료 #코로나19
- Today
- Total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경성의 재구성 : 한국문학·문화의 공간사(空間史) 본문
경성의 재구성 : 한국문학·문화의 공간사(空間史)
푸코(Michel Foucaul)에 따르면 공간은 근대적 규율 권력의 통치를 효율화하고 정당화하는 권력의 담론적 장치이자, 권력 관계의 그물망이 촘촘하게 펼쳐지는 ‘가시성의 장(場)’이라 할 수 있다.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역시 공간이 국가의 근대화 과정에서 조작적으로 해체되고 재조직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안에 배태되어 있던 풍부한 사회성과 역사성이 파편화되었다고 지적했다. 즉 도시 공간의 변화를 주도했던 권력에 의해 공간의 총체성이 상실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제국주의의 침략적·수탈적 정책 의도를 내재한 식민지 도시의 경우에는 공간의 변동이 더더욱 파행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푸코와 르페브르의 이론은 그러한 국가 주도의 폭력적·억압적 도시 계획 양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데 큰 실마리를 제공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식민지 도시 사회에도 근대적인 도시적 주체와 문화적 장이 형성되었고, 그 안에 다양한 개개인의 욕망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강조하는 논의가 성행하고 있다. 비록 극히 제한되고, 소외된 형태일지라도 식민지 도시에서 살아갔던 이들 또한 각양각색의 상상을 멈추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구보학회에서도 식민지 도시 ‘경성(京城)’에 주목하여 경성의 특정 지역, 감옥, 전차 선로, 신사, 신궁 등 다양한 장소들이 갖는 공간적 특성을 살피고 디지털 인문학 방법론을 활용하여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본 학술대회는 지난달 12일(토), 서울시립대학교 인문학관에서 개최되었으며 문학·역사·지리·건축·교통·종교 등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여 한국의 문학·문화의 공간사를 재구성하고자 했다. 이에 본지에서는 이 날 진행되었던 발표 중 일부를 뽑아 상세히 소개해보고자 한다.
소설 텍스트의 공간 시각화 - ‘지도’와 ‘버블라인’을 통한 염상섭 장편소설 분석
소설의 서사구조를 공간적으로 시각화하는 대표적인 방식은 지도를 그리는 작업(literary cartography)이다. 문학지도는 텍스트 내에서 우리가 잊기 쉬운 중요한 관계들을 살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지만, 소설 텍스트에서 공간지표를 추출하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기에 그동안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최근 소설 텍스트의 ‘지도그리기’가 다시금 주목받게 된 까닭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텍스트 속의 공간지표를 효율적으로 추출하고 분석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발표자 권은은 소설을 지도화하는 것, 즉 ‘버블라인(bubbleline)’이라는 공간의 시각화 방법을 제시하고, 그 방법을 통해 기존 문학지도의 단점을 보완하여 근대 시기 염상섭의 소설 세계 전반을 살펴보고자 했다. 이때 버블라인은 버블의 크기를 통해 텍스트의 해당 부분에서 토큰이 발생한 횟수를 보여주며 서사적 흐름에서 특정 장소의 중요도를 살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라 정의할 수 있다. 발표자가 제시하는 지도 및 버블라인은 텍스트의 공간지표 추출부터 시각화와 버블라인까지 전 과정을 컴퓨터를 활용화여 자동화했다는 점, 정적인 지도가 아닌 줌인-줌아웃 등이 가능한 인터액티브 지도(interactive map)를 표방했다는 점 등에서 기존 연구들과 차별화된다. 이를 토대로 발표자는 염상섭의 주요 장편소설 『사랑과 죄』(1927), 『광분』(1930), 『삼대』(1931), 『무화과』(1931), 『백구』(1932) 등을 분석한다.
먼저 한국 근대소설에서는 식민지 도시 경성의 중심성이 가장 두드러진다. 염상섭 소설 속 대부분의 인물들도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서는 경성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예컨대 한국 근대소설에 등장하는 동정명(洞町名)은 약 140여 개인데, 염상섭의 소설에는 68개 정도가 확인된다. 이는 경성이라는 도시를 가장 정밀하게 그린 작가로 평가받는 박태원(84개)보다는 적지만 이광수(53개), 이태준(59개)보다는 많은 수치이다. 염상섭의 독특한 점이라고 한다면, 서울의 고유한 장소명을 매우 다양하게 활용한다는 점이다. 그의 소설에는 ‘미나리골’, ‘사초전골’, ‘한양골’ 등 서울 토박이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지명들이 자주 사용된다. 이렇듯 염상섭이 경성을 등장시킨 것을 모아 지도로 만들어 보면, 그가 경성 전역을 배경으로 입체적인 면모를 담아내고 있을 뿐 아니라 도시의 총체성을 재현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염상섭의 소설에서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전역이 무대가 된다. 이처럼 여러 다양한 공간들과 주제가 한 작품 안에서 경합하는 구성의 텍스트를 ‘다층적 텍스트(polytoic texts)’라고 하는데, 염상섭의 작품에서는 동경(일본)의 비중이 경성(한국)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소설 속 경성과 동경의 비중을 단순 비교해 보면, 동경의 비중이 경성과 대등하거나 넘어서는 경우에는 김사량, 장혁주, 유진오 등 대부분 이중어 글쓰기를 실천한 작가들이 해당되는데, 염상섭은 이들과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이는 염상섭이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하기 이전부터 오랜 기간 동경 유학생활(1912~1920)을 했으며, 귀국한 이후에는 일본 문단 진출을 꾀하면서 제2차 도일(度日)(1926~1928)을 시도하는 등 일본에 대한 지향 의식이 강했고 일본어에도 능통했던 것과 관련이 있다.
염상섭 장편소설의 특징은 한 명의 중심인물을 중심으로 서사가 펼쳐지기보다는, 다양한 인물 군상이 두루 등장하여 입체적인 서사를 구축한다는 점이다.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나 이상의 『날개』, 이태준의 『사상의 월야』처럼 중심인물의 시각에서 대부분의 서사가 전개된다면, 중심인물의 이동경로를 통해 맥락을 파악하기 용이하지 않다. 그렇지만 버블라인은 서사 안에서의 공간 비중 변화를 파악함으로써 특정 인물과 해당 공간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설의 특정 장면에서 특정 공간에 대한 언급횟수가 증가한다면, 특정 인물이 그 장소로 이동하거나 지향하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흔히 소설은 인물, 사건, 배경의 주요 구성요소를 가지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이 중에서 인물과 사건은 시간적 흐름인 플롯과 조금 더 깊게 얽혀 있다. 배경은 공간적 차원에 속하는데, 버블라인으로 공간의 시간적 흐름을 읽게 되면 인물, 사건, 배경의 긴밀한 관계가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알렉스 웰로치(Alex Woloch)는 소설 속에서 특정 인물이 고유하게 차지하는 공간을 ‘인물-공간(character-spaces)’으로 정의하며, 소설들은 인물들이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인물-공간’들이 모여 다양한 조합을 이룬다고 주장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염상섭의 장편소설에서 등장하는 동아시아의 다양한 도시들은 특정 인물들과 결합되면서 독특한 ‘인물-공간’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지도와 버블라인을 통해 어느 정도 살필 수 있다. 염상섭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고학력 엘리트 계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서사의 성격상 한반도를 벗어나 일본과 중국 등지로 자유롭게 이동할 만큼 자금력이 있고 외국인들과 소통할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경이 상수(常數)처럼 고정적으로 등장하는 만큼, 거의 언제나 일본인 인물들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며 등장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서구의 소설들이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국민국가의 ‘상상의 공동체’를 서사적으로 구했다고 한다면, 염상섭은 조선인과 일본인을 포함한 다양한 인물 군상들의 대립과 협력 등을 통해 식민지 조선을 둘러싼 동아시아적 정세를 서사화하려 한 것이다. 그의 장편소설에는 그러한 흔적들이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후원하는 전위 – 1930년대 성북동 예술가 네트워크
1930년대 잡지 『삼천리』에서 한 기자는 성북동을 ‘문인촌’이라 명명한 바 있다. 한적한 근교인데다 지형이 아름다워 예술을 벗삼는 문인들이 많이 이주해 온다는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시인 김안서, 여류문사 김일엽, 평론가 김기진, 소설가 이태준, 평론가 홍효민, 노론객(老論客) 이종린 등’이 이곳에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경성의 동서 양쪽으로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사대문 안에 살고 있던 문인들이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교외 생활을 추구하게 된 경향과 관계 맺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성북동은 도시의 확장 및 인구의 증폭과 더불어 1936년 경성부에 편입되었는데, 사실 그 이전부터 몇몇 작가들은 성북동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소설가 이태준은 『달밤』에서 ‘우둔하면서도 천진스런 눈을 가지고 순박한 시골의 정취를 돋아주는 황수건’이라는 인물로 성북동을 상징화하기도 했다. 근대라는 시간 속에서 점차 밀려나는 황수건과 같은 인물을 보여줌으로써, 이태준은 성북동의 구석진 곳을 자기동일성의 거점으로 삼았던 셈이다. 이렇듯 당시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은 근대도시 경성의 역사적 변화 및 재편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그 외부성 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해 나갔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이주하여 성북동 내부에 자신만의 공간을 구축했고, 그 안에 함께 거주했던 다른 작가·지식인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각자의 욕망을 키워나갔던 것이다. 발표자 조윤정은 성북동을 상징하는 이 ‘문인촌’이라는 레테르는 성북동의 교외성을 단순한 주변성이 아니라 작가들의 주체적인 사색, 창작, 교류를 견인하는 원동력이라고 명명하며, 실제 그들의 네트워크를 확인해 나가고자 했다. 그 방법론으로서 네트워크 시각화 프로그램 ‘Gephi’를 활용하여 그들의 지적·예술적 교류의 구체적인 상(像)을 드러내고자 했다.
성북동에서의 작가·지식인들의 교류는 어떠했을까. 그리고 그들의 활동이 조선의 문학과 문화에 미친 영향은 무엇이었을까. 발표자는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이병기의 『가람일기』, 이태준의 『무서록』, 김용준의 『근원수필』을 비롯하여 노자영이 발간한 잡지 『신인문학』, 『동아일보』, 『조선일보』의 1930~40년대 기사 등을 검토하며 성북동에 거주했던 작가·지식인들이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었음을 보여주는 활동들을 데이터로 정리했다. 또한 현재까지 성북동 지식인 교류 관련 데이터는 900여 건이 정리된 상태라고 밝혔다.
작가들은 서로의 집에서 가장 자주 만났으며 그 집에 있는 책이나 그림, 화초를 즐기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사학자 이병도의 집, 한용운의 심우장, 이태준의 수연산방, 김용준의 노시산방, 배정국의 승설암이 바로 그러한 곳이며, 여기에 노자영의 녹화원이 추가될 수 있다. 성북동의 작가들이 종로 한청빌딩에 있었던 문장사나 그 옆 장안빌딩에 문을 연 배정국의 양복점 백양당에서 만나기 시작한 것은 1938년 이후의 일이다. 이들은 때대로 미륵당과 같은 사찰이나 기생들이 있는 음벽정과 같은 음식점에서 만났다. 가령, 이병기의 일기에서 성북동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31년 9월로, 미국 유학파 사회학자 하경덕과 이병기는 성북동 청룡암(미륵당) 뒤 정자에서 점심을 먹었다. 당시 지식인들은 이 경성 교외의 미륵당에 가서 경치를 감상하고 사찰에서 파는 음식을 먹으며 쉬었다. 사찰에서 고기와 술, 음주 가무까지 제공했기에 여름이면 놀러온 사람들로 사찰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음벽정처럼 부자의 별장을 개조해 만든 전문 음식점은 그 소음으로 인해 성북동 주민들에게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말하자면, 성북동은 경성 시내 사람들이 도시의 답답함을 벗어나 자연을 즐기며 쉴 수 있는 휴양지처럼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광경은 요양을 위해 성북리의 C사에 머물렀던 노자영의 수필 『병상오년기(病床五年記)』에도 잘 묘사되어 있다.
특히 건강상의 문제로 성북동에서 요양하며 점점 고립되어 가던 노자영의 재기(再起/才器)는 그간 성북동의 문학지리지에서 간과되어 온 부분이다. 하지만 노자영이 성북동에서 추구했던 문학열과 친밀성의 추구는 줄곧 성북동 인사들이 참여했던 잡지 『문장』에 앞서 존재했고, 『문장』과 공유하는 바가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인 발굴에 힘썼다는 점, 성북동의 네트워크를 잡지 발간에 활용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노자영은 성북동 집에서 ‘신인문학사’를 운영했고 잡지 『신인문학』을 청조사에서 발행했다. 『신인문학』은 1934년 7월부터 1936년 10까지 발간되어 발행 기간이 길지 않았지만, 노자영이 성북동을 근거지로 삼아 문학잡지를 발간하며 여러 문인들과 교류하는 경로가 되어주었다. 오랜 투병 생활로 고립되어 있던 노자영은 이 잡지를 발간하며 문단 내 여러 작가들과 교류했고, 무엇보다 신인 발굴에 중점을 두고 잡지를 발간했다. 사실 “기성작가보다 신진의 역작을 많이 싣겠다”고 광고했던 잡지는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신인문학』은 아직 등단하지 않은 작가 지망생들이 보다 자유롭게 작품을 투고하고, 작가들의 사적인 생활이나 작가로서의 인생관을 접하며 작가의 현실을 직시하고 작가로서 지녀야 할 태도를 알아가도록 이끄는 역할을 했다. 이는 분명 당시 출판되었던 문예지들이 문학청년을 대하는 방식과 전혀 다른 것이다.
이태준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인들의 우정 이외에, 성북동에는 또 다른 경향의 예술적 교유(交遊)와 애호가 존재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조지훈과 박목월을 배출하고, 이태준과 정지용 등이 애정을 갖고 꾸려나갔던 잡지 『문장』이 있기 전에 신진 작가 배출을 위해 언제나 지면을 열어둔 『신인문학』의 문학적 실험이 있었다는 사실, 그것이 성북동에서 시도되었다는 것은 조선 문단의 신진 작가 배출 경로와 관련해서 봤을 때 눈여겨볼 부분이다. 이처럼 성북동에 살았던 작가들은 성북동의 발전을 후원했고, 조선문단의 앞날을 열어갈 작가 지망생을 후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술, 음악, 문학 더 나아가 역사적 감수성이 서로 어울려 예술적 성취를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로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지지했다. 그런 의미에서 성북동의 지식인 네트워크는 후원하는 전위들과, 개별자의 중심성이 아니라 그들 사이의 친밀성과 교유의 가능성 측면에서 더 세심하게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 정리 : 조수아 기자 lovelove9928@naver.com
'6면 > 학술동향'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상 텍스트와 근대적 예술론의 지형 (0) | 2024.12.27 |
---|---|
냉전문화 형성기 한국문학/문화사의 재인식 : 일본 제국 해체와 코리안 문화의 분기를 중심으로 (0) | 2024.10.15 |
강만길 선생 1주기 추모 학술회의: 식민사학과 분단시대 극복을 위한 민중 지향 역사학 (0) | 2024.09.10 |
제국 일본의 콜로니얼 아카이브 : 부스러기 아카이비즘의 투쟁과 지(知)의 재구축 (0) | 2024.06.13 |
아카이브와 기억의 정치 : 민주주의를 향한 기록의 재구성 (0) | 2024.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