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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인류의 역사를 탐구하는 여행: 고인류학 본문

8면/과학칼럼

인류의 역사를 탐구하는 여행: 고인류학

Jen25 2025. 4. 9. 16:32

 

인류의 역사를 탐구하는 여행: 고인류학

심혜린

과학칼럼니스트

 

유인원과 인류의 진화 과정 (Science 372.6544(2021): eabb4363)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구분하는 특징은 무엇일까? 이는 인류의 아주 오래된 질문이기도 하다. 이미 2000년도 더 전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zoon politikon)이라 말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학자가 이족보행, 도구의 사용, 인지 능력, 사고력, 사회성 등을 인간 고유의 특성이라 주장하며 인문학적, 과학적인 측면에서 인간을 정의하고자 노력했다. 그렇다면 진화적 측면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언제, 어디에서 등장했으며 어떻게 퍼져나갔는가? 이에 대한 답을 찾아내고자 하는 학문이 바로 고인류학이다.

   현대 분류학에서 인간은 영장목(primate) 안에서도 협비원류(catarrhini)에 속한다. 현생 영장류를 기준으로 생각했을 때 협비원류는 다시 긴꼬리원숭이상과(cercopithecoids)와 사람상과(hominoids)로 나뉜다. 사람상과는 유인원과 인간을 포함하며, 이 중 대형 유인원과 인류를 사람과(hominids)로 묶는다. 사람과는 다시 오랑우탄아과(ponginae)와 사람아과(homininae)로 나뉘며, 사람아과 안에 고릴라족(gorillini)과 사람족(hominini)이 존재한다. 사람족은 또다시 침팬지아족(panina)와 사람아족(hominin)으로 나뉜다. 멸종한 고인류를 포함해 모든 인류 계통은 이 사람아족에 속한다. 현재 지구에 사람아족에 속하는 종은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뿐이다. 침팬지속에 침팬지와 보노보라는 두 종이 존재하며 고릴라속에는 서부고릴라와 동부고릴라 두 종이 존재하는 것과 달리 인간속(Homo)은 단일종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얼핏 유인원과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한 줄기의 가지가 한 방향으로 계속해서 뻗어나가 지금의 인간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인류의 진화 과정은 이와 같은 단일종 진화의 역사가 아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하빌리스, 네안데르탈인 등 많은 고인류가 알려져 있으며, 지금으로부터 약 7만 년 전만 하더라도 최대 6종의 서로 다른 인간종이 공존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고생물의 종은 어떻게 구분할까? 진화생물학자인 에른스트 마이어는 종(species)을 다음과 같은 세 항목을 만족하는 집단이라 정의한 바 있다. 서로 생식이 가능하다 서로 간 자발적으로 생식 활동을 한다 이를 통해 얻은 자손에게 생식 능력이 있다. 즉 상호 유전자를 교환할 수 있는 집단을 동일 종으로 판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의는 이미 멸종한 생물종에는 적용할 수 없다. 멸종한 종 간 생식 가능 여부를 판별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석을 통해 확인되고 명명된 종은 생물학적인 종이라기보다는 일정한 진화 경향을 공유하고 있는 진화종이라 볼 수 있다. 학자들은 조상 종이 지닌 기존 특성 중 종 분화로 이어질 수 있는 특성의 존재 여부 환경조건의 변화 등 진화를 일으키는 동력의 여부 새로운 종과 기존 종을 구분하는 적응과 형질 유무 등을 고려해 종 분화를 판단한다. 인간아종에 속하는 인간종 중 현생 인류를 제외한 모든 인간종이 멸종했기에 고인류학에서 다루는 인간종 모두가 화석 연구를 바탕으로 명명된 진화종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새 화석이 발견되면 이것이 독자적인 종인지 여부를 두고 오랜 기간 논쟁이 이어진다. 독자적으로 명명되었던 종이 다른 연구 결과의 발표 이후 기존의 다른 종으로 합쳐지는 경우도 많다.

   많은 학문의 발전 과정과 마찬가지로, 고인류학 역시 수많은 가설이 세워지고 또 뒤집히는 과정을 거치며 발전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인류의 등장 시기를 들 수 있다. 인간 진화 연구의 초기 단계에서 학자들은 비인간 영장류와 인류의 종 분화가 적어도 천만년 이전에 일어났다고 믿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천만년 이전의 유인원 화석으로 알려진 라마피테쿠스 등이 인류의 조상으로 추측되었다. 그러나 유전자 분석 기술이 발달하며 현생 인류와 침팬지의 유전자 분석을 진행한 결과 두 종이 유전자의 98% 이상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현생 인류와 침팬지, 고릴라를 비교했을 때 침팬지와 고릴라 간의 유사성보다 인간과 침팬지 간 유사성이 더 컸다. 이는 인간과 침팬지 계통의 분리가 상당히 최근에 일어났음을 뜻한다. 현재는 중신세(Miocene, 533만 년 전 ~ 2,303만 년 전) 말기에 인간이 유인원으로부터 갈라져 나왔을 것으로 여겨진다. 인간종은 지금으로부터 고작 수백만 년 전에 등장한 것이다. 침팬지와 인간의 공통 조상은 중신세 중기에 고릴라 계통과 분리되었으리라 추측되나, 명확한 화석적 증거가 발견된 바 없다.

   또 다른 예시로 이족보행의 진화를 들 수 있다.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이족보행보다는 뇌 용량의 진화가 먼저 이루어졌으리라는 것이 학계의 주된 가설이었다. 그러나 타웅 아이 유골의 발견을 필두로, 뇌의 용량은 여타 비인간 영장류와 크게 다르지 않으나 이족보행을 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고인류의 흔적이 발견되며 이 가설 역시 뒤집혔다. 또한, 흔히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구부정하게 걷는 유인원에 가까운 형태로 상상하지만, 발자국 화석을 분석한 결과 인간과 유사하게 허리를 펴고 두 발로 걸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학자들은 어깨, , 손가락뼈 분석을 통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는 나무를 타지 못했고 의무적인 이족보행을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편, 지난 2009년에는 새로운 화석종인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에 대한 연구 결과가 발표되며 주목을 받았다. 1993년에 발견된 이 화석종을 분석한 결과, 440만 년 전 살았던 이 고인류는 이족보행에 적합한 골반 구조와 인간과 유사한 두개저 구조를 가졌으나 발가락은 인간보다는 침팬지와 유사했다. 나무를 타기 적합한 엄지손가락같은 엄지발가락을 가졌던 것이다. 2012년에는 루시가 발견된 에티오피아의 부르텔레 지역 퇴적층에서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와 유사한 발뼈가 보고되었다. 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가 살았던 약 340만 년 전에도 지구에 여러 종의 고인류가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인류 역사에서 뇌의 크기와 도구의 발명 사이 상관관계 역시 연구가 거듭되며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150만 년 전부터 200만 년 전 살았던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의 이름이 손재주 좋은 사람이라는 것에서도 드러나듯, 오랫동안 최초로 도구를 사용한 인류는 호모 하빌리스라 여겨졌다. 1959, 고인류학자 루이스 리키와 메리 리키 부부는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에서 뇌 용량이 500~600cc에 달하는 어린아이의 두개골 뼈를 발견했다. 리키 부부는 이 유골이 성체의 뇌 용량이 450~600cc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는 다른 종의 고인류라고 판단하여 이를 호모 하빌리스라 명명했다. 이족보행으로 인해 자유로워진 두 손과 인지 능력이 높은 큰 두뇌가 도구의 발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오래된 정론이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호모속이 아닌, 오스트랄로피테쿠스속 등 더 이전에 살았던 고인류 역시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유골과 함께 발견된 석기 유물이 그 증거다. 또한, 2003년 인도네시아 플로레스섬 량부아 동굴에서 발견된 화석종인 플로레시아인, 2013년 남아프리카 디날레디 동굴에서 발견된 호모 날레디 역시 뇌의 크기가 500cc 정도였으나 도구를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 1990년대부터 침팬지와 오랑우탄 등 현생 유인원 역시 도구를 제작하고 이 방법을 집단 내에서 전승한다는 사실이 보고되며 도구의 발명과 문화의 전승이 큰 뇌에서 오는 인간 고유의 특징이라는 생각 역시 뒤집히고 있다.

   인류의 진화 과정을 서로 다른 두 방향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방식은 현생 인류를 포함한 현생 영장류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이다. 두 번째 방식은 화석 증거를 기반으로 과거에서부터 현재로 내려오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과학자들은 퍼즐 조각을 맞추듯 비어 있는 공간을 그려나가는 셈이다. 이렇게 발전해 온 고인류학은 여전히 많은 부분이 가설로 남아 있고, 여전히 많은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 분야다. 20세기에 믿었던 수많은 가설이 최근 들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듯, 지금까지 정설로 여겨지던 내용을 뒤바꾸는 발견이 언제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인간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 즉 특별함을 찾기 위해 오랜 시간 탐구했지만, 그 탐구의 끝에는 평범한 한 생물종으로서의 인간만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참고 문헌

이상희, 인류의 진화, 동아시아, 2023.

Science 372.6544(2021): eaba3776

Science 372.6544(2021): eabb4363

Journal of Quaternary Science 34.6(2019): 355-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