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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코로나19를 통해 드러난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의 실태 본문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퍼져나가면서 각국의 이에 대한 국가적인 대응과 의료시스템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히 의료의 공공성 문제가 다시 제기되는 가운데, 공공보건의료제도가 가진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초기 방역에는 미숙했지만, 신속하고 광범위한 진단능력과 검진체계로 인해 한때 급증했던 확진자수를 낮추고 치료 효율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격리치료에 필요한 의료․ 수용 시설과 의료 인력의 부족, 지역 내 감염병 전문 공공의료원의 부족, 치료제와 백신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판 공공제약 개발 시스템의 필요성 등의 문제점도 드러났다. 본지에서는 코로나 19사태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공공의료제도가 변화양상과 문제점을 살펴보고 해외사례를 통해 우리나라 공공의료제도가 나아갈 방향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공공보건의료의 개념과 의료의 공공성
코로나 19를 계기로 의료의 ‘공공성’과 국민이 누려야할 ‘권리’로서 ‘건강권’의 개념이 다시 대두되었다. 지난 총선 때 여러 지자체들은 부족한 의료원을 새로 건립할 계획을 세우고, 이번 총선 후보들도 지역공공의료원 건립, 공공의과대학 설립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공공(성)과 공공보건의료는 학계 내에서는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로 논의 중이다. 그동안은 기관과 조직의 소유 주체를 중심으로 ‘공공보건의료’를 범주화해 최소주의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고, 건강이나 보건의료가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속성을 애매한 상태로 ‘공공’으로 지칭하다보니 “모든 보건의료는 그 자체로 공공적이므로 민간병원도 하는 일은 공공성이 있다”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김창엽 교수는 한국에서의 공공보건의료와 공공성 개념이 보건의료의 영리화와 시장화가 심화되어가는 과정에서 반대급부의 대항 개념으로 자리잡아 나갔음을 설명한다. 이에 따라 ‘공공=국가’처럼 여겨지고 공공보건의료 안에서 공공보건의료 강화 정책은 공립의료기관의 증설 문제로만 귀결된 문제가 있다.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은 2000년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로 처음 제정되었는데, ‘공공보건의료’를 국공립기관을 중심으로 한 공공보건의료기관의 활동에 국한했다. 이에 따르면 국가․지방 자치단체와 기타 공공단체가 설립하고 운영하는 보건의료기관이 포함되고 이들은 특히 다음과 같은 보건의료를 우선적으로 제공해야 하는데 취약계층에 대한 보건 의료, 노인․장애인․정신질환자 등 타분야와의 연계가 필수적인 보건의료, 전염병 예방 및 관리, 아동과 모성에 대한 보건의료, 응급환자의 진료, 민간보건의료기관이 담당하기 어려운 예방보건의료가 포함된다. 2012년에 이명박 정부는 이를 개정해 공공보건의료를 국․공립병원에 한정하지 않고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으로 규정해 모든 의료기관이 공공보건의료를 제공한다고 인정하고 의료취약지나 수익성이 낮은 의료를 제공하는 민간의료기관까지 공공보건 의료 수행기관으로 포함시켰다. 이를 통해 ‘민간의 공적 기능’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더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소유주체와 기능 사이의 긴장이 남아있게 되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인해 공공보건의료의 확충은 물론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적 역할도 부각되었으며 예측하지 못한 재난 상황이었던 감염병의 확산에서 동원할 수 있는 사회 전반의 시설, 재정, 정책은 물론 지역커뮤니티나 거버넌스와의 연계, 방역에 대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협조와 참여가 중요해지면서 공공보건의료와 공공성은 앞으로 보다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영역으로 정의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이후 제기된 공공보건의료제도의 문제점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관심과 확충에 대한 주장이 높아졌지만, 우리나라 공공보건의료의 문제점은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 등의 감염병 유행 당시마다 이미 반복적으로 지적된 바 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공론화되었을 뿐 감염병의 유행이 진정된 이후의 ‘지속적 투자’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입장으로 회귀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이번 코로나19 대응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의 전반적인 문제점들을 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먼저 우리나라는 보건의료체계 자체가 민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OECD 국가 대부분은 공립병원이 70%가 넘고, 민영의료 중심인 미국도 30%가 넘는데 한국은 공립병원의 비중이 8~9%에 불과하다. 이는 역사적으로 공공보건의료시설을 확충하는 데 있어서 국가의 투자와 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그 공백을 민간과 시장이 메우며 보건의료체계를 성립시켜 나갔기 때문이다. 시장은 보건의료가 양적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는 동시에 시간이 갈수록 국가가 개입하는 데 제약요건이 되었고, 보건의료체계를 민간이 주도하다보니 적정진료의 표준도 민간이 제시할 정도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전염병의 확산 사태 때 여러 차례 경험했듯이 민간의료기관의 역할과 공공기관의 역할은 다르다. 전염병이 확산될 때 지역거점 공공병원은 중심역할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음압격리병실과 격리병동까지 갖추려면 상당한 돈이 드는데 수익성을 따지는 민간병원에서는 이런 병실을 짓지 않는다. 수익성을 따지지 않고 ‘착한 적자’를 감수하는 공공병원만이 이를 운영하고 유사시 환자들을 관리할 수 있는 것이다. 의료전문가들은 최소한 공공병원이 전체의 30%이상이 되어야 실제로 공공의료기관의 역할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두 번째로 우리나라의 공공보건의료기관 자체가 지닌 자원의 취약성 문제가 있다. 2017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인구 천 명당 병상 수는 12.3개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지만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고, 그 중 공공의료기관이 보유한 병상 비율은 10.2%로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에는 과잉 공급을 우려할 정도였으나 막상 코로나 19상황에서는 병실 부족으로 인한 입원 대기열과 병실이 없어 자가격리 중 사망하는 사례가 있었다.
그간 공공보건의료기관은 민간이 담당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잔여적 보충으로만 인식되다보니 이들이 진료를 기피하는 빈곤층 치료에만 집중해왔다. 의료산업화가 추진되면서 공공보건의료기관도 민간과 같이 경영능력으로 평가받게 되면서 투자가 부실해지다보니 병원시설과 장비도 노후화되고, 과거 진주의료원 폐업과 같은 사태까지 벌어지게 되었다. 한국의 공공의료예산은 총예산의 0.5~0.7% 수준으로 OECD 국가의 최저 수준이다. 그나마 집행된 투자도 이후에 회수할 것을 상정해 민간기업회계에서처럼 독립채산을 강요하다보니 실질 운영적자가 늘어나보였고 진주의료원 폐업 때 제시된 근거 역시 이에 따른다.
보건정책연구실 보건의료연구센터장 윤강재는 단기간에 대량 환자가 발생하여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수용 한계를 초과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공공보건의료체계를 작동시켜 자원을 효과적으로 분배해 취약 지점을 보강하는 연계(중앙 지방정부 간, 정부 민간 영역 간)가 신속하게 작동하지 못했던 측면을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공공보건의료체계가 유기적으로 구축되어 있지 못하다. 국가 중앙 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 지방의료원, 전국의 보건소, 국립대학교병원 등을 소관하는 곳과 지휘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다수의 긴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대응해야 할 책임의료기관이 사전에 지정되어 있지 않고 지역의 공공보건의료기관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으므로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보다 집중적이고 유기적인 협력체계가 구축될 필요가 있다.
*해외사례와 한국 공공보건의료제도가 나아갈 방향
코로나 19가 유럽에서 빠르게 확산되어 나가며 각국의 ‘공공의료의 위기’가 부각되고 있다. 중국을 제외하고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가장 많은 이탈리아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를 줄이면서 의료서비스의 질이 나빠진 것이 그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08년 이후 이탈리아의 1인당 의료예산은 3,490달러에서 2016년에는 2,739달러로 떨어졌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주 베르가모에서 일부 병원들이 고령 환자들에 대한 치료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지며 ‘의료윤리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중환자실과 병상, 인공호흡기 등의 의료시설 장비와 의료진이 부족하자 환자의 건강상태와 나이를 고려하는 ‘선별 치료’에 나섰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많은 나라들이 시행하고 있는 ‘사회적 거리 두기’ 대신에 ‘집단면역’ 방역 전략을 택했다. 인구의 60% 이상을 코로나19에 천천히 감염시켜 국가적인 면역체계를 갖추겠다는 발상으로 스웨덴 공중보건국의 역학 전문가인 엔더스 테그넬(Anders Tegnell)이 설계했다. 스웨덴이 다른 피해국가들과 달리 의료 붕괴를 마주하지 않았다는 점도 집단면역 전략을 정당화한다. “병원이 대처할 수 있을 정도”로 코로나 19의 발생을 늦추는 게 스웨덴의 전략이다. 그러나 노인들이 방역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스톡홀롬 내 노인 요양원 중 3분의 1에서 코로나19가 발생했고, 코로나19 사망자의 3분의 1이 요양원에서 발생했다. 노년층의 생명을 담보로 집단면역 전략을 펼치고 있는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최근 쿠바의 의료 시스템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쿠바는 지난 달 3월 21일, 이탈리아 정부의 공식적인 요청에 따라 의료진 52명을 파견하기도 했다. 쿠바 아바나 의과대학 정이나 박사에 따르면, 쿠바는 “모두를 위한 건강”이라는 보건의료의 주요원칙에 따라 예방의학을 중심으로 일차보건의료를 확립하고 걸맞는 의료진을 양성하는 체계를 구축해 보편적 보건의료시스템을 정착시켰다. 질병 예방을 위한 상시적 관리․감독과 코로나 19와 같은 지역사회를 위협하는 감염성 질병이 발생할 때 관할 구역에 있는 진료소와의 협업체계는 지역의료 활동의 중심축이 되고 필요하면 지역사회 커뮤니티들의 협조를 받을 수도 있다. 선별적 치료와 집단감염이라는 ‘효율적 대처’와 인류의 보편적 권리로서의 “모두를 위한 건강”이라는 두 축이 인류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해외사례들은 우리나라의 공공보건의료가 나아갈 방향에 여러 시사점을 제공한다. 공공보건의료의 중요성이 다시 대두되고, 그 역할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특히 공공보건의료는 정부나 공공기관만이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대응하는 영역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장기적인 계획과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먼저 현재 설치되어 있는 공공보건의료기관의 자원을 확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국립대 병원과 지역 거점 공공병원의 음압병상 수 확대를 법안으로 의무화하는 식으로 시설을 적극적으로 확충하고, 운영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착한 적자’, ‘건강한 적자’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 계층별․지역별 보건의료 접근성과 건강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유기적인 공공의료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책임의료기관과 권역의 필수 중증의료를 책임지고 컨트롤타워를 수행할 권역책임의료기관 간의 공공의료체계가 구축되어야 하고 국립중앙의료원과 지방의료원 간 공공의료기관 협력체계 구축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국립중앙의료원을 중심으로 공공보건의료기관이 담당해야할 역할들을 확충시켜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민간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던 필수의료 분야의 국가표준을 제시하고, 공공정책 측면에서의 연구는 물론 향후 설치될 국립공공의료대학의 양성과 책임을 맡아야 한다.
세 번째로 공공보건의료를 담당할 인력의 적극적인 양성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의료 인력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많이 부족하고 수도권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의료 인력 부족은 특히 심각하다. 지역에 소재한 공공보건의료기관에 종사하며, 민간에서는 수행하지 않는 공공의료 영역을 담당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존 의과대학과는 다른 차별화된 공공보건의료대학의 설립과 과거에 중단되었던 공중보건장학제도의 재설계와 재시행, 지역거점공공 병원 파견 의료인 인건비 지원 사업의 내실화 등이 그 예이다.
마지막으로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성 확대를 위한 긴밀한 협력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공공의료기관들의 역량 강화나 인프라 확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간병원들과의 협력 없이는 현재의 문제를 풀 수 없다. 특히 코로나19에서 민간의 많은 의료진들이 보여준 자발적인 헌신은 주목할 만하다. 이상적이고 강압적인 방법이 아닌,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민간병원들이 보건의료의 공공성 회복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적절한 인센티브를 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
모두가 건강할 권리로,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로
대부분의 국가는 보건의료가 기본적 권리임을 인정한다. 세계인권선언,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등이 이를 규정한 데에 따른다. 김창엽은 경제학자이자 윤리철학자 센(Sen Amartya)의 주장을 들어 권리로서의 보건의료의 근거를 찾는다. 센은 보건의료가 건강이 삶에서 성취할 자유와 연관되어 있고, 공정하게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핵심적인 요소라는 점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로 보았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세 번째 근거인 “보건의료는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와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질병과 건강문제는 개인들에게 공포와 불안을 유발하고 현실에서 보건의료란 이런 공포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다.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우리는 언제라도, 모두가 감염될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려야만 했고 (비)자발적으로 격리된 채 고립되어야 하는 경험을 마주했다. 공공보건의료는 모두가 감염될 수 있다는 공포를 모두가 평등하게 건강하고,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하는 공적 자산이다.
■ 윤정인 기자 cherisheep@korea.ac.kr
■ 윤소미 기자 somiegg@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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