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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영상으로 본 냉전아시아의 사상심리전과 정동: 미군의 한국전쟁 및 냉전 영상을 중심으로” 본문
“영상으로 본 냉전아시아의 사상심리전과 정동: 미군의 한국전쟁 및 냉전 영상을 중심으로”
지난 3월 28일, 동아시아연구소 냉전평화연구센터 심포지엄이 개최되었다. 한국전쟁과 냉전 영상자료를 토대로 냉전적 학제를 평화운동의 학제로 전환하여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 및 평등을 논구하는 것이 이번 학술대회의 취지였다. 이날 1부에서는 한국전쟁 영상자료의 대상과 시각, 그리고 이를 연구하기 위한 방법론을 다루는 3개의 발표가 진행되었다. 이어서 2부에서는 이러한 전쟁기 영상들을 가공하여 전파한 2차 영상에 주목한 발표가 진행되었다. 이에 본지에서는 주목할 만한 발표문 세 편을 뽑아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전쟁 영상자료,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한국전쟁과 냉전 영상자료 중 내레이션이 없는 푸티지(footage) 영상에 관한 연구는 카메라에 포착된 대상, 그를 바라보는 시각, 사각화된 대상 등에 유의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이에 강성현은 시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전쟁을 시청자들이 실감할 수 있게 하는 ‘대량설득무기’의 텍스트이자 정동(affect)의 미디어로서 영상이, ‘전방과 후방의 경계를 지우고 대중동원을 현대전의 필수 요소로 만든 총력전’으로서 냉전에 유용하게 이용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따라서 푸티지 영상에서 군 중심의 피사체와 이야기에서 부차화되거나 사각화된 민간인의 전쟁과 일상을 군사적 시각과 목적에서 해방시키고 역사화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쟁 영상의 생산 맥락, 유형, 목적, 피사체, 촬영 기법 등 구체적인 연구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먼저 GHQ-FEC 통신국 사진부와 167통신사진중대, 304통신사진소대는 한국전쟁 당시 전선에 가장 빨리 급파되어 전후방 모두 지원하며 전략적 사진 활동에 집중했다. 다큐멘터리, 역사, 공보, 심리전 영상을 제작하면서 이들의 영상 활동은 단순 기록을 넘어 한국을 무대로 한 반공사상심리전을 ‘자유세계’에 발신하며 정동을 형성했다. 이에 강성현은 여러 유형의 영상 중 특정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 제작된 공보 영상에 주목하는데, 이는 기록과 공보의 문턱을 넘어 적과 아군 모두 대상으로 한 사상심리전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다시 말해, 한반도는 적을 새로운 모습으로 투사하고 ‘우리’ 자유진영의 단결력을 과시하는 극장(theater)이었다. 한편, 영상병의 관심과 인식을 반영한 피사체는 아군의 경우 그 활동과 성공적인 활약이나 영웅적인 면모, 그리고 이를 가능케 했던 힘의 원천에 초점을 두었다. 그러나 동시에 참혹한 전쟁 현실과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포격·폭격은 사각화되었다. 적군을 피사체로 둔 경우, 전쟁범죄를 ‘기록’하는 차원에서 전범과 잔학행위가 등장하지만, 심리전 문법에 충실해 민간인 학살 현장, 포로수용소 내 폭력과 갈등 등이 반인간적이고 악마화된 방식으로 재현되었다. 한편 주로 ‘전재민’이나 피란민으로 등장하는 민간인은 민사 원조의 대상으로 포착되었으며, 미군의 인종주의적 시선과 민간인을 불신하는 미군의 인식과 정책이 반영된 푸티지 영상에서 민간인은 ‘우리’와 ‘적’ 사이에서 잘 식별되지 않은 채 포로로 포획되기도 했다. 다음, 촬영된 영상에 대해 작성한 ‘필드캡션카드’ 서식에는 촬영자, 촬영일, 부대명, 장소, 제목, 씬 번호, 영상 길이, 각 장면의 주요 내용 등이 기록되었는데, 이 역시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분석되어야 할 역사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이어 강성현은 총 3개의 영상을 사례를 제시하였는데, 먼저 “전쟁, 수원, 한국, 1950년 6월 29~30일”에 등장하는 소년 무리가 주목된다. 수원역 역전경찰관파출소 앞에서 고개를 떨군 채 앉아있는 소년들의 정체를 둘러싸고 ‘북한군 전쟁포로’, 피란민(민간인), 혹은 정치범·소년범 등으로 보는 다양한 기록이 있는데, 이러한 기록과 당시 상황에 대한 증언을 바탕으로 이들이 정치범·소년범이었음을 밝혀내는 등 한국전쟁 영상은 기타 기록과의 교차 검증을 통해 그 의의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 외에도 모윤숙이 직접 등장하여 자신의 서사를 그려낸 “여류시인, 한국, 1950년 11월 6일”에서는 탈출-고난-귀향의 고대 영웅서사시 구조에 입각한 전쟁의 모습을 담았다. 특히 모윤숙의 글과 인터뷰는 여러 판본으로 제작되어 스페인, 프랑스 등 냉전 전선으로 전파되어 일종의 심리전 프로젝트로서 주목되었다. 마지막으로 포로수용소 올림픽의 모습을 담은 “전쟁포로, 활동, 거제도, 한국”은 전형적인 심리전의 양상을 보여준다. 영상에 등장하는 북한인민군과 중국인민지원군 포로들은 전원 미송환포로들로, 당시 정규교육, 직업교육, 여가활동, 독서 및 전시활동 등을 통해 미군의 포로재교육 프로그램의 인도주의적 성격과 중요성을 표상한다.
이처럼 한국전쟁 영상의 연구 대상, 범위,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과제가 남아있지만, 전쟁 중 촬영된 푸티지 외에도 이를 활용하여 문화영화나 뉴스릴 등 2차 영상을 제작하여 선전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다양한 시사점을 지닌다.
▲영상 “War, Suwon, Korea”속 수원역 역전경찰관파출소 앞 소년 무리들
ⓒ미국 National Archives 영상자료
돌아가는 적 포로, 귀환하는 용사: 미군 영상으로 본 전쟁포로 교환과 그 이면
한국전쟁의 후반부인 1951년부터 1953년 여름 사이에 진행된 포로 관련 협상과 교환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국을 선택한 포로들의 귀환은 분단국가의 자기 정당성을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였고, 이들의 이야기는 자기 고백 서사와 언론 보도 등 다양한 형태로 유포되었다. 즉 전쟁포로 교환 현장은 전쟁의 정당성을 둘러싼 상징적인 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된 또 다른 대결의 현장이었다. 이에 김일환은 포로 교환을 폭력적 갈등의 마지막 결산이자 이데올로기 투쟁의 성과를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장으로 포착한 미군 푸티지 영상에 주목한다. 이들 영상은 현장에서 포로에 대한 사진, 영상 촬영이나 인터뷰에 일정한 통제를 가하면서 수집되었고, 무제한적인 정보의 송출을 우려해 취재 결과물에 대해서도 일종의 사후 검열 장치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민간 언론사들이 접근할 수 없는 상황, 즉 포로 교환의 ‘무대 뒤편’이라 할 수 있는 공간에서 검열되지 않은 포로들의 표정과 감정, 신체 상태를 직접 촬영하며 다양한 장면을 포착하는 일종의 이중적인 특징을 보였다.
포로 교환 푸티지와 관련하여 김일환은 먼저 ‘돌아가는 공산 측 포로들’을 살펴본다. 판문점에서 교환되는 포로들은 그간 수용소 관리와 인도적 대우의 실상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피사체였기 때문에 이송 과정에서 이들의 표정, 옷차림 등의 외양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1953년 8월 거제도와 제주도에서 촬영된 영상 LC-33650과 LC-33761에서 새 의복과 신발을 지급받고 환복하는 등 수속 과정을 준비하는 포로들의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동시에 총을 들고 곳곳에 서 있는 경비병, 포로의 머리카락을 빡빡 미는 미군, 벌거벗은 채로 환복을 기다리는 포로들의 모습 역시 담겨있어, 미군이 포로들의 집단적 반항 및 정치적 선전 활동 가능성을 경계하여 사전에 철저히 봉쇄하고자 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동양 공산주의자(Oriental Communist)’에 대한 시선은 포로 교환 과정에서도 혼재되어 있는데, 한 영상에서는 거제로 이송되는 북한인민군 송환 포로들에게 기관총을 겨누며 쳐다보는 미군 경비병의 날카로운 눈빛, 포로수용소 내 최루탄을 던지고 포로들을 무력화하는 장면 등의 충돌이 포착되기도 했다. 그러나 부상 포로 교환작전(Operation Little Switch)에서 열차로 이동하는 포로들에게서 ‘동양 공산주의자’와는 다른, 인간적인 모습 역시 기록되기도 했다. 이러한 시각과 구도는 이송 과정뿐 아니라 송환 장소에 나타난 포로들의 모습에도 반영된다. 미군 영상병들은 지급된 새 옷을 벗어 던지고 인공기와 현수막을 흔들고 구호를 외치는 북한군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포착, 기록하였고, 이를 공산주의 포로들에 대한 미군의 시각을 입증하는 자료로서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동시에 내면의 감정을 분출하며 눈물 흘리는 북한군 포로들의 모습 역시 포착되었다.
다음, 북측에서 내려와 ‘자유의 문(Freedom Gate)’을 통과하여 ‘자유 진영’으로 귀환하는 다양한 국적의 포로들을 촬영한 영상 속 포로들의 표정에서는 안도감이 강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천막 안에서 간호사들의 환대와 배려를 받고, 지급된 각종 보급품을 즐기거나 깨끗하게 정돈된 의료설비 위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을 심문하여 수용소에서 적에게 ‘협력·부역’한 포로들을 파악하는 모습은, 송환된 포로들을 스스로 돌아온 ‘귀환 용사’이면서도 공산 측의 이데올로기적 세뇌 공작에서 노출되었던 의심스러운 집단으로 간주한 미군의 시선을 보여준다. 한편, 유엔군 관할 포로수용소에 있던 북한군 포로 중 ‘비송환’을 선택한 ‘반공포로’들은 “자유의 품으로 돌아오는 반공포로 용사들의 감동적 귀환” 등의 문구로 대중적으로 선전되기도 했다. 이후 이들은 대부분은 국군 입대를 선택했는데, “반공애국청년안내차” 문구가 적힌 지프차가 다니면서 포로들이 거대한 이승만 초상화 액자를 들고 시가지로 행진하는 등 입대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입대 행사를 바라보는 지역 주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치고 ‘반공의 선봉’으로 나서는 이들을 응원하고 있었데, 이는 반공 국가 대한민국 정체성의 중요한 상징으로 체제 정당성을 보여주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푸티지 필름에서는 의도치 않게 렌즈에 포착되어 전형적인 군 공보작전의 시각으로 환원되지 않는 다수의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무대 뒤편’의 이야기를 고려할 때 군의 작전 의도와 공식적 시각을 이해하고, 전쟁포로는 누구였으며 포로 교환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자유진영’으로 귀환하는 포로들이 지났던 ‘자유의 문(Freedom Gate)’
ⓒ미국 National Archives 영상자료
미군의 대한원조 영상 속에서 재건되는 전후 주체: The Big Picture 시리즈의 대한원조 영상을 중심으로
전후 한국에서 미국의 목표는 방위력의 개선뿐 아니라, 성공적인 전후 재건을 통해 공산진영에 맞서는 자유진영의 우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특히 한국은 자유를 옹호하는 상징으로서 재건에 있어 집단적 원조의 위대한 능력을 표시하는 좋은 사례로 주목되었다. 정영신은 이러한 냉전심리전의 서사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전파되는 양상에 주목하며, 1951년 말부터 1971년까지 미국에서 방송된 주간 텔레비전 프로그램 “The Big Picture”(이하 빅픽처)의 사례를 살펴본다. 미 8군과 주한미공보원 등 여러 군 기관들이 협력하여 제작한 빅픽처는 미국 내 군대 관련 대중과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으며, 이후에는 동맹국으로 수출되어 방송되었다는 점에서 전후 미국의 냉전심리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여기에는 한국의 전후 재건을 다루는 영상들도 자주 등장했는데, 그중 ‘Armed Forces Assistance to Korea’(이하 ‘미군대한원조’)와 ‘Korea and You’(이하 ‘한국과 당신’) 두 영상에서는 다수의 한국인이 등장하여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재건의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미군대한원조(AFAK)는 여타 유엔이나 미군 원조 프로그램과는 달리 미군 장병들의 자발적인 기여에 기반을 두면서 한국인들의 자력에 의한 재건을 도모했다. 원조액으로 구입한 건설 원자재와 주한미군 예하 부대들의 건설장비와 기사들의 자원, 그리고 한국 정부와 지자체의 원자재와 노동 인력을 활용하여 AFAK 프로그램은 고아원 건설, 이재민 구호품 전달 등 공공시설의 건설과 사회 재건을 목표로 했다. 이는 미군과의 직접적인 대면 접촉과 지도를 통해 이루어져, 동맹국의 지도와 지원하에 그들의 가치지향을 내면화하는 다양한 사회활동을 장려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한편, AFAK 프로그램의 비건설 분야 사업들은 종종 해당 미군 부대의 고향에 있는 미국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성과를 미국 내에 알리기 위한 작품들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미군대한원조’에는 한 미군 병사가 의정부 도봉유린원, 서울 성육원 등의 고아와 어린이들을 방문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미군이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원조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이어서 영상에 등장한 학생은 숙명여대 재건 과정과 숙명여대의 선교, 영어교육, 가정과학과 요리 등 대학 생활을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이를 가능하게 해준 AFAK 프로그램에 대한 감사를 표시한다. 그러나 이처럼 미군의 선의로부터 출발하여 한국인의 자조와 자립정신을 거쳐 미래가 있는 삶이 가능하다는 표상은 오히려 지역사회 재건활동에서 나타났던 한국 주민들의 자발적인 행동과 의지에 대한 증언과는 괴리가 있다.
AFAK 프로그램의 목표가 미국인들의 협력과 지속적인 관심을 한국인들이 자각하도록 하는 것이었다면, 이를 원활하게 하는 장치는 주한미군 각 부대와 지역사회 사이의 접촉과 대화를 주도하기 위해 구성된 한미친선협의회(CRAC)였다. 주둔 미군과 한국 지역사회의 관계를 다룬 빅픽처 1961년 영상 ‘한국과 당신’에서 클린트 워커(Clint Walker) 하사는 임진면 한미친선협의회에 참가하여 미군 1기병사단의 사단장과 주요 장교들, 파주 군수와 지서장 등 주요 관료와 유력인사들, 신문기자와 성매매 여성 대표자 등 여러 인물과 함께 원조 사업 진행 관련 내용을 논의한다. 그는 이후 한국인 남성 ‘킴’의 가족들을 만나 그의 여동생과 함께 서울을 관광하기도 한다. 이러한 지역사회와의 친밀한 관계는 ‘파주린치사건’ 등 1962년 잇따라 발생했던 미군범죄 사건들로 인해 미군기지 주변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에 따라 주목되었는데, 이는 ‘한국과 당신’에도 짧게 언급된다. 그러나 미군범죄의 실질적인 논의보다는, 이러한 문제들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민주적인 군대의 모습과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군의 선의와 친선 이미지가 강조되었다.
이처럼 빅픽처에 등장하는 한국인 주체의 목소리는 미군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목소리였으며, 이들은 자체적인 전후 재건의 의지나 자력갱생의 활동이 삭제당한 채 오히려 미군에 의해 육성되어야 할 ‘종속된 자율적 주체’로 그려졌다. 이들은 미군의 격렬한 군사활동과 강력한 범죄의 영향 속에서 주체의 존재 근거를 계속해서 부정당하는 주체들로, 이러한 미군의 냉전심리전 기획 속 주체의 균열은 완전하게 매듭지어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미국대한원조’ 영상에서 그려지는 전후 한국의 빈곤과 폐허
ⓒ미국 National Archives 영상자료
■ 정리: 최서윤 기자(seoyoon229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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