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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포스트 코로나 시대, 포스트 문화연구 본문
포스트 코로나 시대, 포스트 문화연구
-제1회 성균 국제 문화연구 연례 포럼
지난 1월 29일에 성균관대 BK21 한국어문학 교육연구단 주관으로 온라인 학술대회가 열렸다. ‘문화연구’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페미니즘, 대중문화, 기술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문화연구의 지평을 살펴보고, 코로나/포스트-코로나 시대에서 문화 연구의 위상과 방향을 논구하는 것이 이번 학술대회의 취지였다. 포럼은 크게 “‘인간 조건’을 되묻는 문화연구: 경제, 젠더, 인종”, “‘한국 문화연구’는 위기를 벗어나 새로운 연구방법일 수 있을까?”, “신진연구자 세션: 새로운 길의 새로운 주체들”, “팬데믹 시대 ‘국가들’과 시민들”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세션을 진행하였다. 이에 본지에서는 주목할 만한 발표문 세 편을 뽑아 소개해보고자 한다.
페미니즘 문화연구와 정치경제학적 전환
-버닝썬 사건의 경우
1980년대 이후 문화적, 담론적 구성물로서 ‘젠더’ 관련 연구가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당연시되고 상식화되었던 ‘문화’는 가장 중요한 투쟁과 이론화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따라 페미니즘 문화연구는 ‘문화’를 다루는 남성 중심적 성향을 비판하며 일상성을 구성하는 섹슈얼리티, 성폭력, 가족 등에서 보이는 지배의 문제를 지적해왔다. 한편, ‘문화정치경제학(Cultural Political Economics)’은 경제적 과정 전반에서 두드러지는 다양한 문화적 요소의 역할, 시장을 비롯한 경제적 조직들이 사회·역사·〮문화적으로 형성되거나 ‘착근’되어있는 방식, 경제학의 대상들이 담론적으로 구성되는 방식 등에 주목한다. 즉, 경제적 실체와 과정들이 가진 여러 사회·문화·정치적인 측면을 파악하여 경제적 삶을 총체적으로 바라본다. 이와 같은 기존 페미니즘 문화연구와 문화정치경제학 연구의 시사점을 접목하여 김주희는 2019년 1월에 불거진 ‘버닝썬 사건’을 분석한다. 해당 연구에서 논자는 클럽 버닝썬 대표 한류 아이돌 승리가 클럽 운영을 통해 달성하고자 한 ‘성공’을 살펴봄과 동시에 버닝썬의 최대 투자자 기업을 분석하며 성매매 시장에서의 젠더 구성 방식에 대한 역사적 함의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했다.
먼저, 논자는 섹슈얼리티 산업을 경유하며 한국에서 ‘자유로운 여성 판매자’와 ‘합리적 남성 구매자’를 집단화하고 분할하는 젠더규범적 실천이 신자유주의 금융화의 문화적 효과로 등장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는 강남의 한 클럽에서 벌어진 폭행, (약물) 성범죄, 성매매, 경찰 유착, 마약, 조세회피, 불법 촬영물 공유 등 일련의 범죄 행위가 얽혀진 사건이었다. 클럽 버닝썬과 그곳에 모인 여성들은 투자 유치를 위한 뇌물로 취급되며 클럽 대표의 사업가로서 성공 가능성을 보장하는 투자지표의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해, 한류 열풍을 이끈 연예인이자 사업가로 자리 잡은 클럽 대표는 여성들을 ‘동원’할 수 있는 자신의 가능성을 투자자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사업을 확장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가능성은 한류 스타로서 달성한 한류의 ‘추악한 이면’이 아니라 ‘한류를 통해 이룰 수 있는 추악성’으로 해석된다.
한편, 신자유주의 금융화 이후 한국 성 산업은 전통적인 개인 구매자-알선자-판매자 관계에 머무르지 않고 여성을 “성매매 (가능한) 여성집단”으로 묶어내는 금융적 실천을 통해 작동하고 있다. 여기서 논자는 버닝썬의 최대 국내 투자자였던 전원사업을 살펴본다. 1960년대 말에 설립된 동원연탄은 1960~70년대에 갈 곳이 없는 탄광 노동자들과 그 가족에 대한 노동 탄압을 통해 1980년대 말 석탄 산업 구조조정 정책이 시행되면서 전원산업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이들은 이후 남서울호텔을 인수한 뒤 여행사-호텔-요정의 조직적 협력을 통해 소위 “기생관광”으로 일본인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알선하며 외화를 벌어들였다. 이처럼 여성들의 성 상품화와 기업의 이익은 단순히 한 클럽에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이와 같은 역사적 연속과 단절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버닝썬 카르텔’을 궁극적으로 결속시키는 요인은 주류와 테이블 좌석 구매비용으로 대부분 남성 이용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수익금이었다. 특히, 테이블 손님이 고가의 세트 메뉴를 주문하면 비키니, 홀복, 교복 등의 유니폼을 입은 샴걸(champagne girl)이 폭죽을 쏘면서 테이블까지 배달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등 남성 이용자들의 구매력이 과시됨으로써 여타 테이블의 경쟁적인 소비를 촉진하는 장치로 활용되었다. 이는 클럽에 존재하는 ‘테이블=남성 vs 플로어=여성’이라는 위계적 성별성을 가시화하고 강화하였다.
결론적으로 관계자에 의해 통제되고 부양된 젊은 한국 여성들의 육체는 한국 클럽 글로벌 투자자, 아시아 재벌들, 한국 남성들이 클럽 버닝썬에서 주류와 테이블 비용을 지불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 되었다. 나아가 한류 아이돌이자 사업가인 대표는 이렇게 보증된 여성들의 육체를 통해 회사의 투자 가능성을 확장해 나갔다. 논자는 페미니스트 문화정치경제연구의 틀을 활용하여 이와 같은 정치·경제적 환경 속에서 여성집단의 가치가 결정되는, 신자유주의 금융화에 따른 여성집단의 ‘신용화’에 주목하였다. 즉, 김주희는 버닝썬 클럽사태와 이를 추동해낸 ‘한류경제’를 동시대 성별 정치의 문화경제와 분리될 수 없는 문제로 바라보면서 버닝썬 클럽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역사를 살펴본다.
집단 기억의 매체로서 역사영화 다시 읽기
-5·18 영화 속 여성 인물의 재현을 중심으로
정예인의 연구는 2000년대 이후 5·18민주화운동(이하 ‘5·18’)을 다룬 영화를 중심으로 서사적 발전과 국가폭력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 그리고 신자유주의 이후의 역사관이 다시 타자를 소거하는 양상을 살펴본다.
5·18은 그 자체로 한국의 정치적 지형에 따라 ‘검열의 대상’ 혹은 ‘정치적 근본’으로서 해석되어왔으며, 5·18 영화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1980년대 후반 5·18에 대한 공론화가 싹트기 시작했던 시점에는 5·18이라는 사건과 민주화운동을 관련지은 작품들이, 1990년대 중반에는 피해자를 강조하여 5·18의 잔혹함을 부각하는 작품들이, 그리고 1990년대 말 이후에는 5·18을 기억하는 새로운 방식의 서사가 출현했다. 논자는 먼저 2000년에 개봉한 <박하사탕>(이창동)을 통해 이 시기의 5·18 영화가 우회적인 서사를 통해 5·18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명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특히 주인공이 “나 다시 돌아갈래”라는 선언을 남기는 마지막 장면은, 역설적으로 돌아갈 수 없는 과거로서 5·18을 그려냈다. 즉, 5·18을 둘러싼 운동의 열기, 역사적인 주인공 대신 신자유주의적 개인이 전면에 등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는 소련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거대 담론에 대한 회의, 갑작스러운 외환위기와 신자유주의 노정으로의 인도 등 1990년대 후반 현실 세계의 변화들과 맞닿아 있었다.
한편, 2007년 연달아 개봉한 <오래된 정원>(임상수), <화려한 휴가>(김지훈), <스카우트>(김현석)는 이전처럼 국가폭력 사건의 피해자를 조명하기보다는 소시민의 영웅적 행보를 강조한다. 5·18을 비극적·리얼리즘적으로 재현하던 기존의 전통에서 멜로드라마로의 장르 이행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역사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변화 요구에 조응한 것인 한편, 당시 대중문화에서 주된 흐름을 형성했던 ‘한국형 멜로드라마’의 영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5·18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멜로드라마의 만남은 대중문화적 장르가 공론의 영역으로 진출했음을 알리는 하나의 표지라 할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영화에 등장한 이 새로운 형식의 멜로드라마는 기존의 서구적 멜로드라마에서 일정한 양식적 변모 과정을 거친다. 논자에 따르면, 이 시기 멜로드라마는 여성 인물의 욕망과 좌절을 통해 사회문화적 갈등과 여성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여성적인’ 서사에서 남성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들의 눈물을 부각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소위 ‘여성적인’ 장르였던 멜로드라마의 주체가 남성으로 전환되면서 ‘우는 남성’이라는 새로운 남성성의 표상이 등장한 것이다. 이로써 2000년대 중반 한국영화계에는 “역사의 상처를 각인하고 있는 피 흘리는 투쟁적 주체로서의 남성”과 “따뜻하고 자기희생적인 아버지”라는 두 가지 남성 인물이주로 재현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서사의 변화는 여성 인물의 타자화를 수반한다. 2007년의 5·18 영화들 역시 당시의 한국형 멜로드라마의 장르적 특성을 반영하여 남성 인물을 국가폭력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마주하게 되는 인물로 설정하고 여성 인물은 그들을 보좌하거나 매개하는 인물로 설정한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이성애 중심적 멜로드라마로 봉합된다. 논자는 특히 <오래된 정원>에 주목하여 남성 중심의 서사로 탈근대의 역사를 재구성할 때 발생하는 여성의 타자화 문제를 지적한다. 보조적인 역할에 국한되었던 여성이 죽거나 가정으로 돌아가면서 ‘사라지고’, 5·18이라는 언어로 치환하기도 어려운 국가폭력의 사건 역시 단순한 서사적 배경으로 전락하면서 5·18 영화는 ‘텅 빈 서사’가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논자는 2000년대에 개봉한 5·18 영화 세 편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서사적 변화, 한국형 멜로드라마의 확립, 그리고 여성의 타자화에 주목하여 5·18 영화가 멜로드라마와 실제 역사적 사건이라는 두 측면을 접목시키면서 은폐·소거되는 지점을 살펴본다.
서울 젊은 게이 남성들의 소속감 형성을 위한 공간: ‘종로’
일리야 알렉산더는 이른바 ‘게이 구역’으로서 서울의 종로에 주목하여 젊은 성 소수자들이 특정 공간에서 소속감을 형성하는 과정과 의미를 논한다. ‘게이 구역’은 사회적 소속감에서 한계를 느낀 성 소수자들이 자아를 표현하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주목된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적 의미에 대한 분석은 이들이 성 정체성 외에도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성 소수자 공동체에서 느끼는 소속감만큼이나 더 큰 사회적 맥락에서의 소속감이 중요하게 인식된다는 점을 조명한다. 따라서 논자는 행위자로서 성 소수자들이 종로3가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소속감을 형성하는 과정에 초점을 두고 참여 관찰과 면담을 통한 연구를 진행했다.
소속감의 중요성과 공간의 필요성은 선행연구에서 꾸준히 강조되어왔다. 소속감은 개인의 정체성 형성과 직결되며, 특히 다양한 상호작용을 통해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에 놓인 젊은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정서적 건강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성 소수자와 같이 스스로 문화적 규범 밖의 존재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소속감을 형성하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 한국 문화 규범에 따라 상대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성 소수자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으며, 이성애를 바탕으로 형성된 사회에서 공적 공간은 본질적으로 이성애적 공간으로 인식된다는 점에서 이들이 소속감을 느끼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회는 더욱 제한적이다. 따라서 자신들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해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특별한 지역을 중심으로 ‘게이 구역’이 형성되어왔다.
이를 바탕으로 논자는 젊은 남성들이 자신의 게이 정체성을 탐구하기 위해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최초의 물리적 공간으로서 종로3가에 주목한다. 연구 대상 중 대부분은 게이 정체성과 상호작용을 하기 시작한 시기인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처음 종로에 접근했다고 응답했다. 이들에게 종로란 자신과 유사한 성적 감정을 가진 타인을 만나기 위한 현실 세계의 장소로 인식되며,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게이 남성들이 존재함을 실제로 깨닫게 되는 공간이다. 논자는 종로와 기존 연구에서 서울의 대표적인 ‘게이 구역’으로 주목된 이태원과의 비교를 통해 그 사회적 의미를 더욱 강조한다. 응답자 중 이태원보다는 종로를 선호하는 이들은 그 이유로 이태원은 클럽과 ‘눈팅’을 위한 곳이라면, 종로는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떨며 일반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장소”라는 점을 꼽았다. 즉, 서양적인 바와 클럽을 중심으로 지어진 이태원은 게이만의 공간이라기보다 퀴어적인 문화와 상호작용을 위한 발판을 제공하는 유흥지역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편 종로가 주로 게이 남성들만을 위한 공간으로 인식되면서, 이곳을 찾는 이들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편안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종로에서 이들이 경험하는 상호작용은 서울의 다른 도시 장소에서도 볼 법한 흔한 풍경으로, 이태원에서와 같은 문화적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와 같은 한국적인 ‘게이 구역’은 게이 남성들이 성 소수자로서의 정체성과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을 모두 형성하며 소속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공간이다.
이처럼 논자가 설정하는 종로의 중요성은 두 가지다. 먼저, 종로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탐구하기 위해 접근하는 첫 현실적인 장소라는 점에서 사회적 주변부에 놓인 소수자들이 정체성을 확립하고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둘째, 종로는 한국적인 문화 관습을 바탕으로 사회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장소로, 또래 집단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성 정체성과 한국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일반적인 문화적 틀 안에서 더 깊은 소속감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이다. 이처럼 젊은 성 소수자들은 특정 공간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자신의 ‘타자성’을 정상화하게 되며, 동시에 종로라는 공간이 상징하는 한국적 문화 규범과 관습을 통해 게이라는 정체성을 표현하는 사회 행동을 할 수 있는 장을 형성하게 된다.
■ 정리: 최서윤 기자(seoyoon229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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