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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빈손을 펼치기 위한 여정 본문
유진규 마임 레퍼토리 <빈손>
-김민조(연극비평가)
지난 5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상연된 <내가 가면 그게 길이지>는 마임이스트 유진규를 위한, 유진규에 의한 공연이었다. 1972년 극단 에저또 단원으로 데뷔 무대를 가진 이래 장장 50년간 마임이스트로 활동해온 유진규의 마임 인생을 기념하기 위해 기획된 이번 공연은 <빈손>을 비롯한 유진규의 대표적인 마임 레퍼토리들로 구성되었다. 한국 마임의 태동기였던 197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현대사의 결을 가로질러온 1세대 마임이스트의 공연답게, 유진규가 몸짓으로 펼쳐 보인 길은 여러 시대의 흔적들을 함께 품고 있었다.
한국 마임의 형성기인 1970년대에 마임은 대체로 ‘무언극’ 또는 ‘묵극(默劇)’과 동일시되었다.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연극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었던 셈인데, 엄혹한 예술 검열의 시대였던 유신 정권기에 무대예술가가 발화를 거부한다는 것은 저항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기도 했다. 유진규가 입단한 극단 에저또가 창단공연 레퍼토리로 무언극 형식을 채택했던 이유 역시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없는 판국에서 무슨 말을 할 수가 있는가, 아무 말도 말자, 그리고 오로지 행동만 하자(장윤환, 「한국의 전위예술」, 신동아 1975년 1월호)”는 취지였다고 전한다. 즉 한국 마임의 형성사에는 말할 수 없는 시대의 형상을 말하지 않는 예술로 되비추려 하는 충동이 개재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 중 하나인 <빈손>은 정치적 억압의 시대를 건너온 1998년경에 창작되었다. 구술집에서 유진규는 <빈손>이 나오게 된 경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여지껏 나를 둘러싼 환경 때문에 내가 변질이 되고 왜곡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잖아. 그치만 왜곡된 것도 나 때문이고, 변질 내지 변형이 되는 것도 나 때문에 그런 거지. 그런 생각으로 바뀌게 되고 그 다음에 그 모든 것은 아집과 욕망으로부터 비롯된다.”(장윤환, 앞의 글) 달리 말해 <빈손>은 시대와 개인 사이의 갈등을 육신적인 형체(corporal form)를 통해 표현해온 전위예술가가 실존적인 내면의 세계로 시선을 돌리는 과정을 반영하고 있는 레퍼토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빈손>은 결코 명상적인 공연이 아니다. 유진규의 마임은 외부 세계와 마음, 실체와 그림자가 자리를 뒤바꾸며 역동적으로 합일을 이루는 순간들을 잡아채고 있다. 그러한 양상은 특히 오브제를 활용하는 방식을 통해 극적으로 드러나곤 한다. <빈손>은 한지, 신칼, 향, 정화수를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 활용하는 오브제 마임이기도 한데, 유진규는 이 오브제들을 인체의 작용에 의해 변형 가능한 사물처럼 다루는 동시에 그 자체로 의지를 갖고 인간에게 엄습하는 영적인 존재처럼 다루기도 한다. 가령 공연 첫 마당을 여는 ‘한지’는 그것을 구기고 펴는 유진규의 손놀림에 따라 사모하는 연인과 같은 대상이 되기도 하고, 높이 뻗은 손 위에 군림하는 우상의 형체가 되기도 하고, 소진된 인간을 감싸 안는 천사 같은 형상으로 내려앉기도 하고, 격렬한 성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유진규가 구술한 대로 그것은 동일한 대상이 욕망의 작용에 따라 변질되고 변형되는 양상을 표현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오브제와 신체가 동시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희노애락의 삶을 함께 통과한다는 것이다.
‘신칼’의 장은 더욱 극적이다. 무속에서의 쓰임대로 신칼은 유진규의 주변을 맴도는 악귀들을 물리치기 위한 용도로 등장한다. 그러나 퍼포먼스가 진행될수록 그 악귀는 기실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존재해온 것으로 드러난다. 인간을 수호하기 위해 쥐어 든 신칼이 인간을 베어야 하는 물건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주인을 위협하는 신칼의 움직임과 칼끝에서 분열된 인간의 형상을 동시에 표현하는 유진규의 기술은 지극히 노련하고 정교하다. ‘향’의 장에 이르러 유진규는 스스로 죽은 자의 영역에 들어간다. 향불에 절을 올리는 퍼포머(변유정 역)을 지켜보던 그는 어렴풋한 불빛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보는데, 망자의 얼굴은 곧 삶에 대한 욕심과 회한으로 일그러진다. 이어지는 장면은 <빈손>을 통틀어 가장 격렬하고 역동적인 장면으로, 향불을 뽑아 든 마임이스트들이 암전 속에서 광란의 춤을 추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유진규가 펼쳐 보이는 죽음의 세계는 추상적인 무의 세계가 아니다. 삶과 죽음은 탐욕스러울 만큼 가까이에 있고, 그 탐욕이 불타 소멸하는 의례를 거쳐야만 두 영역의 경계는 비로소 나뉠 수 있다.
그래서 <빈손>은 정신적인 고도에 미리 도달해 있는 공연이 아니다. 철저히 세속화된 선(禪), 육체가 에너지를 소모하는 신진대사의 속도로 빈손에 다다르는 삶의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정화수’의 장에 이르러 유진규는 물이 전부 새어버린 손우물을 바라보고, 관객을 본다. 허탈과 지족이 교차하는 그 표정은 그의 마임 인생 50년사를 압축하는 표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술의전당에서 그러한 유진규의 예술적 여정을 기록하고 기념하기 위한 기획 공연을 마련했다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나, 레퍼토리를 나누어 이틀밖에 공연할 수 없었다는 것은 현재 한국 문화예술계에서 마임예술이 처해 있는 열악한 상황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유진규를 비롯해 보다 많은 마임이스트들이 그들의 몸짓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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