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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이 아직 연극이 아니었을 때- 연극 <액트리스원: 국민로봇배우 1호> 본문
연극이 아직 연극이 아니었을 때
- 연극 <액트리스원: 국민로봇배우 1호>
김민조(연극비평가)
다양한 종류의 연극 기원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연극이 어디에서 어떻게 유래했는지를 끝끝내 알 수 없을 것이다. 연극 양식에 대한 지식 구조가 일반적으로 정착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현존하는 인류학적 행위들로부터 연극성의 시원을 검출하려는 시도는 순환 논리의 덫에 걸려들기 십상이다. 예컨대 유년 시절의 소꿉놀이를 연극의 원형으로 지목할 수 있을까. 그것은 혹시 연극이라는 개념을 알게 된 어른이 그 뿌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욕망을 소꿉놀이에 투사한 것은 아닐까. 소꿉놀이는 정말 자라서 연극이 될까.
비단 연극에 한정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예술의 개념들이 모두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면, 그 개념이 탄생하기 이전의 선사(先史)에 대해서는 개연성 있는 픽션의 형태로 상상할 도리밖에 없다. 그러나 픽션이라는 말은 어떤 자유를 함축하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연극이 아직 우리가 아는 연극이 아니었을 때. ‘연극적인 것’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설화적 파편들이 무수히 흩어져 있는 세계를 상상하는 일은 그것을 채집하고 재배열하는 기쁨을 약속하는 일이기도 하다.
2019년 초연 이후 2년만에 재공연된 연극 <액트리스원: 국민로봇배우 1호>(작·연출 정진새 / 출연 성수연)는 인간의 연기를 학습하기 시작한 최초의 로봇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국민배우 ‘성수연’이 축적해온 모든 노하우를 전수받은 후계자, ‘액트리스원’이라 불리는 연기로봇은 아름답고 진실한 연극들의 자취가 사라져가는 2029년 연극계에 홀연히 등장한다. 연기가 곧 인간을 충실히 관찰하고 학습하며 모방하는 인간의 행위라고 한다면, 액트리스원은 다시 그 연기라는 행위 자체를 충실히 관찰하고 학습하며 모방하는 비인간 내지 포스트휴먼으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연극은 ‘관객을 섬기라’는 스승의 유지를 충실히 이행한 이 로봇배우의 생애사를 읊어가는 일종의 낭독기라 할 수 있다.
액트리스원이 진화하는 과정은 인간 배우가 연기를 배워가는 과정과 유사하면서도 다르다. 이 로봇은 인류가 역사적으로 축적해온 연기 스타일, 가령 코메디아 델 아르떼의 희극 연기나 ‘한국인이 좋아하는 신파 연기’ 같은 스타일을 알고리즘적으로 학습하는 과정 속에서 점차 연기하는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코기토를 형성해간다. 그는 자연인으로서의 서브 텍스트를 전혀 갖지 않는 배우이자 오직 연기라는 기능을 위해서만 자의식을 구성하는 기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액트리스원의 연기가 침체된 연극계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는 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적인 연기의 종언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처럼 <액트리스원: 국민로봇배우 1호>는 연기를 배워나가는 로봇배우라는 설정을 통해 우리가 ‘연극’이라 불러온 어떤 개념이 형성되기 이전의 시점으로 되돌아간다. 그것을 일종의 리부팅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파워-오프와 파워-온을 통해 연극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기. 관객들은 인류의 외부에서 발화하는 액트리스원의 시좌(視座)를 경유해 셰익스피어 연극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아아 나는 잠들었는가, 깨어 있는가. 누구,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가 없느냐.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냐!”(<리어왕>) 로봇과 인간의 지위에 관해 무관심한 로봇이 단지 인간을 충실히 표현하기 위해 무대에서 일성(一聲)을 내지르는 이 대목은 오히려 인류의 자기중심성을 향한 서슬퍼런 비판처럼 다가온다. 동시에 그것은 인류가 만들어온 연극에 잠재되어 있던 외부성, 즉 인간의 한계를 인간 바깥에서 조망하는 종적 상상력이 새롭게 구제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액트리스원: 국민로봇배우 1호>는 SF 장르가 구사하는 반사실적 가정의 문법을 통해 우리가 연극이라고 믿어온 어떤 관념을 한발짝 떨어져서 관찰하게 만든다. 그것은 연극이 아직 연극으로 불리기 이전의 카오스적 상태를 경유하여 지금 이 현실에 재도킹하는 일처럼 느껴진다. 연극에서 인간을 빼고 다시 인간을 더해넣는 일. 그것은 ‘연극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으로 불리는 어떤 파편들을 주워올리고, 새롭게 결합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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