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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사 이후의 연극사를 쓰려면 본문
연극사 이후의 연극사를 쓰려면
연극 <언도큐멘타: 한국연극 다시 써라>
김민조
연극평론가, 연극비평집단 시선 필진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으로 연극계가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한 2020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공식적으로 지정한 ‘연극의 해’이기도 하다. <언도큐멘타: 한국연극 다시 써라>(김방옥 구성 / 박근형 연출)는 올해 ‘2020 연극의 해’라는 사업명 아래 진행되었던 수많은 행사와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마무리되는 시점에 상연되었다. 연극의 존립이 가장 위태로워진 시기, “한국연극의 역사, 개념, 범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언도큐멘타> 공연은 그 도전적 의의만으로도 많은 연극인의 주목을 받았다. 문자 중심의 도큐멘테이션(documentation)을 해체하는 공연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인가? 묻혀 있던 기록과 사라진 목소리들은 어떻게 무대 위에서 복원될 것인가? 모든 질문에 앞서, 과연 어떤 존재들을 조명 아래 새로이 불러낼 것인가?
당겨서 말하자면 <언도큐멘타>는 공연과 학술 발표 사이에 있는 느슨하고 절충적인 퍼포먼스였다고 여겨진다. 이 공연이 박양우 문체부 장관과 ‘2020 연극의 해’ 사업 집행위원장의 인사말로 시작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애초부터 행사 프로그램으로서의 성격과도 엄밀히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언도큐멘타>를 순수하게 공연의 관점에 입각해 감상하거나 평가할 수 없었다는 것, 그러니까 미학적 완성도나 자율성 확보의 측면에서 미비했다는 사실 자체는 이 글의 관심사가 아니다. 오히려 이 공연의 문제는 관객에게 들려주기(telling)을 중지하고 ‘연극적 재현’을 시도한 장면들에서 발견된다.
<언도큐멘타>는 2080년에 작동 중인 ‘비평로봇 X’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된다. 비평로봇 X는 본래 한국연극사에 관한 사료를 수집하고 정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고성능 AI이지만 제작과정의 실수로 인해 ‘정전’과 ‘역사’의 개념을 혼동하게 된 존재로 소개된다. 기존의 한국연극사에서 누락되었거나 역사적 의의를 부여받지 못한 잔여적인 기록들로부터 비평로봇 X는 ‘창조의 충동’을 느끼게 되고, 그러한 오작동의 결과 혹은 연산처리 과정이 <언도큐멘타>라는 것이다. 인간이 역사 속에 남긴 미구현 데이터(unused data)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인공지능이라는 SF적 모티브를 한국연극사 서술에 적용시킨다는 아이디어는 분명 신선한 데가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로봇이 어떤 기준에 입각해 언도큐멘타를 위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제시하는지, 책으로 대표되는 기존 연극사와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모호하다는 문제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단순히 기록되지 못했기 때문에 기록해야 한다는 논리에 머문다면 ‘책을 더 두껍게 쓰면 될 일’이라는 보수적인 응답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요컨대 비평로봇 X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해 미온적이다: 왜 기록되지 못했는가? 연극사라는 체제는 왜 기록될 수 없는 존재들을 양산해내는가?
물론 <언도큐멘타>가 비평로봇 X가 무대에 불러올린 최근 공연 사례들을 통해 이 질문들에 대해 간접적 · 부분적으로 답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식민지 남성 문인들에게 폄하당한 여성 극작가 김명순을 조명한 문화다방 이상한 앨리스의 <백 년 만의 초대>(2020), 소비적인 이미지에 가려진 신여성들의 노동자성을 조명한 프로젝트 레디메이드의 <모던걸 타임즈>(2019)는 비평로봇 X가 “2010년대 중반부터 들려온 (…) 비명 같은, 원한 같은 여자들의 함성”으로 포착한 에너지의 맥락에서 소개된다. 그러나 미투 운동의 자장 속에서 ‘언도큐멘타’를 실천하고 있는 젊은 여성 연극인들을 한국연극사 다시 쓰기의 자리에 초청했다면, 그들의 연극을 비명이 아니라 ‘비판’으로 초점화하는 것이 응당한 일 아니었을까. 결국 <언도큐멘타>의 미온성은 한국연극장, 나아가 한국 사회에 내속해온 권력과 체제에 대한 비판에 토대를 두고 있는 공연 사례들에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그 문제의식을 ‘연극사라는 기록 체제’에 대한 성찰로 연결하지 못한 데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언도큐멘타>의 가장 큰 문제는 전술했다시피 관객들의 눈앞에 직접 재현되어서는 안 되었을 연극적 장면들을 ‘좋은 의도로’ 노출한다는 점에 있다. 가령 한국연극이 장애를 희화화해온 사례를 보여준다는 취지로 보행 장애(인)에 대한 혐오발언과 걸음걸이 흉내가 반복되는 <맹진사댁 경사>의 장면 하나를 그대로 재현한 경우가 그러하다. 1960년대 이후 남성 극작가들이 ‘폭력의 희생양’이나 ‘성스러운 창녀’의 이미지로 소비해온 여성 캐릭터들이 무대에 등장하여 남성 중심 서사의 문제를 성토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텍스트에 저항하는 인물이라는 관념 자체는 <언도큐멘타>의 취지에 잘 부합하나, 그 인물들이 원작의 지시에 상응하는 말투, 습관, 복색, 캐릭터성을 유지한 채 무대 위에 등장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연극에서 트리거(trigger, 관객의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 있는 언어적 · 비언어적 계기)의 문제가 타 장르에 비해 중대하게 논의되고 있는 이유는 연극이 메시지를 구성하는 작품이기에 앞서 관객의 신체에 물리적으로 엄습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연극적 소통의 수행성 · 직접성에 대한 섬세한 고려가 부재할 때 연극을 통한 폭력 비판은 또 다른 폭력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마지막으로 <언도큐멘타>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장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성 캐릭터 4인방이 등장해 최근 작품에 가해지고 있는 여성혐오 논란에 대해 항변을 늘어놓는 장면이다. ‘요즘 문화예술계에서 남자들이 살기 힘들다’는 류에 속하는 백래시의 언어들을 상투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이 장면은 <언도큐멘타> 공연의 최후반에 위치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내용들도 문제이지만, 이 장면이 공연을 맺는 자리에 놓여 있음으로 인해 억울함과 분노에 가득 찬 남성들의 목소리를 이 시대의 ‘기록되지 못한 잔여’로 호명하는 효과를 낸다는 점이 더욱 큰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다. 제작진이 정말 의도한 것이 그것이었을까. 의도의 차원을 넘어 <언도큐멘타>의 사례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미온성과 불온성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이다. 연극사 이후의 연극사를 쓰기 위해서는, 비판을 비판답게 실천하는 단호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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