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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몸들의 생환 본문
도둑맞은 몸들의 생환
연극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김민조 (연극평론가, 연극비평집단 시선 필진)
“집으로서의 몸. 하지만 몸은 몸들이 도둑맞고, 거짓과 독을 주입받고, 우리로부터 억지로 떼어내질 수 있다는 것이 이해될 때에만 집일 수 있다.” 일라이 클레어는 퀴어 장애 정치학을 둘러싼 단상을 섬세하고 단호한 문장들로 적어 내려간 『망명과 자긍심』에서 이렇게 썼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신체에 대한 위화감(dysphoria)을 경험하는 것은 그가 퀴어이거나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부터 연유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그런 위화감을 만들어내는 것은 성별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몸에 대한 혐오, 장애에 대한 거짓말과 고정관념, 그밖에 우리가 몸을 통해 감각하고 수행하는 것들을 비정상으로 낙인찍는 모든 권력구조들이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는 ‘아픈 몸’을 자신의 집으로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구성된 연극이다. 아픈 몸이라는 단어는 장애를 가진 몸과 질병을 앓는 몸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 교차할 수 있는 공통의 범주를 형성한다. 당사자 운동에 있어 스스로의 존재를 가시화하는 실천은 언제나 중요한 모멘트가 되지만, 일상적으로 격리와 배제를 경험하는 아픈 몸들이 무대나 광장으로 올라서는 순간들은 더욱 각별하게 느껴진다. 예컨대 2019년에 열린 제1회 매드프라이드 서울 축제에서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침대를 거리로 끌고 나오며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를 외쳤을 때가 그러하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역시 아픈 몸들을 무대 위에 오롯이 가시화하고, 나아가 아픈 몸들 사이의 협력과 연대를 꿈꾸는 연극이라 할 수 있다.
무대에 선 6명의 배우들은 근육병, 조현병, 크론병, 유방암 등 각기 다른 질병과 장애를 가지고 있다. 연극은 아픈 몸과 함께 살아가는 당사자의 시선으로 가족, 학교, 병원, 시설이 어떻게 그들의 몸을 협소한 공간 속에 유폐시키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무심히 툭 던지는 학과 조교의 말 한 마디로 드러나기도 하고, 성의 없이 진단과 처방을 번복하는 병원의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정신병동에 딸을 억지로 집어넣는 부모의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합리성을 가장하고 있는 그 모든 메커니즘들은 아픈 몸을 가진 당사자들을 끊임없이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신체적 · 정신적 자기결정권을 강탈해간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는 그런 관료적이고 비인간적인 사회 시스템에 대항하여 아픈 몸들이 겪어낸 실제의 삶을 발화하고자 하는 기획이기도 하다. 배우들은 아픔의 상태를 경과하는 자신의 몸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그들은 담담한 내레이션과 고통어린 대사들을 넘나들며 남들에게 보이지 않았을 공간에서 그들이 홀로 겪어냈을 사투의 시간을 보여주며, 나아가 스스로의 몸에 대해 사색하고 ‘아픔’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성찰하기도 한다. 고통이 전신을 통과해 사라져가는 속도만큼의 정직함으로 배우들은 한 문장 한 문장의 삶을 발화한다. 근육병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국 헤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을 스쳐가듯 하나씩 떠나보내야 했다고 말하는 홍수영은 “경련이 웃음으로 변하고, 그 어떤 웃음도 내 것이 아니었던 시간들”에 대해 차분히 묘사해간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후면 스크린에 흑백 사진으로 투사되는 그의 미소는 아픔에 대한 묘사의 두께만큼이나 깊게 빛난다. 조현병을 ‘나의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던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 목우 역시 그러한 고통의 시간을 건너 자기만의 단단한 대지에 다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환청은 세상의 연약한 것들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은 내 마음”이라는 언어가 완성되는 순간은 그가 도둑맞았던 언어를 되찾는 순간이자, 아픈 몸이라는 집으로 온전히 생환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공연의 마지막 순서를 담당한 나드는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공연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턱관절 염증으로부터 시작해 난소내막종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절반이 발병과 재발, 수술과 재활로 촘촘히 채워”졌음을 토로하는 그는 격심한 통증에 허물어지는 몸을 반복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그는 고통의 여진이 남아 있는 몸으로 끝끝내 재활 운동을 감행하며, 비관적인 의사 소견이 계속 날아드는 와중에도 다른 삶을 살고 싶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강만큼의 상승, 절망만큼의 희망을 반복한 끝에 그는 “이제 나는 완전한 치유가 아닌, 완전한 치유로부터의 자유를 원합니다”라는 선언에 다다르게 된다. 완치라는 환상을 좇는 대신 자신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아픈 몸을 정직하게 목격하고 증언하는 것. 아마도 나드의 선언은 건강한 몸이라는 규범에 갇혀 자기 자신의 몸을 바깥으로 유폐시킨 모든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말이 되지 않을까.
일라이 클레어는 같은 책에서 이렇게 쓰기도 했다. “집으로서의 몸. 하지만 몸은 도둑맞은 몸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 이해될 때에만 집일 수 있다.” 건강이 스펙으로 취급받는 신자유주의적 경쟁 사회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스스로가 아픈 몸이라는 사실을 부인한 채 살아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는 그러지 말고 아프다고 소리 내어 말해도 괜찮다고, 그것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향한 첫걸음라고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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