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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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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면/문학의 향기

‘옳은’ 선택 속의 교차하는 마음 보기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1. 9. 19. 21:21

옳은선택 속의 교차하는 마음 보기

-천희란, 기울어진 마음(문학과사회2021년 여름호)

 

이성애 중심 가부장제 사회에서 기혼 혹은 결혼이 예비된 여성의 임신은 제도를 겸한다는 점에서 최소한 윤리적 차원의 문제로 다뤄지지 않는다. 그러나 제도의 수용과는 별개로 여성에게 임신이란 무엇인가는 조금 다른 문제처럼 보인다. ‘결혼-임신-출산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적잖은 여성이 경력 단절, 무급노동의 젠더 격차 등을 경험한다. 제도 안팎을 막론하더라도 임신/출산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여성의 활동 영역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져 온 바 없지 않기에, 여성에게 임신이란 임신 중단의 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하게 하는 것이리라. 이런 맥락 속에서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선택지는 응당 옳음으로 여겨지기 마련이고 그것을 완전히 부정할 수 없겠으나, 어떤 선택에는 이중적 감정과 학습된 욕망이 개입되어 있음을 헤아릴 필요도 있겠다.

천희란의 기울어진 마음은 바로 이 지점을 다룬다. 소설에는 서로 다른 시기, 20대에 혼전 임신으로 결혼 및 출산 또는 임신 중단의 선택지 사이에서 각각 다른 선택을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혼전임신으로 결혼을 결심하게 된 조카 기호와 그의 여자친구 혜원, 그리고 고모인 승은이 바로 그들이다. 부모나 다름없이 기호와 막역하게 지냈던 승은은 조카의 이야기를 듣고 현실적인 조언을 하리라 마음먹고 식사 자리에 임한다. 다소 상기된 모습으로 나타난 조카 커플을 대면한 승은은 겉으로 내색하진 않아도 내심 긴장한다. 승은은 혜원에게 출산을 재고해보라고 말하려 하기 때문이다.

승은의 조언이 대학조차 졸업하지 않은 두 사람에게 반드시 숙고해보아야만 할 내용임은 분명하다. 혜원과 엇비슷한 시기에 중절 수술을 받은 적 있는 승은의 입장에서 자신의 조언은 기호와 혜원이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는가와는 별개의 차원에서, 특히 혜원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제안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승은이 임신을 계기로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쳐 이성애 중심 가부장제 공동체의 모델을 따르는 과정이 여성의 삶과 인식을 제약할 수 있으리란 짐작에 기인한다. 승은은 당시 헤어진 연인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고 중절 수술을 선택한다. 그때 그들은 더 이상 연인이 아니었기에 미련도 없었고, 여전히 만나는 사이였더라면 하는 훗날의 가정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 아이를 낳을 계획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기에 그것이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거듭 답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임신 중절을 택했다는 사실 자체에만 있지 않다. 승은의 경험이란 임신 사실을 난 이후부터 중절 수술을 하고 난 뒤 그 사실에 대한 충격이 어렴풋해질 때까지도 여전히 희미하게 남아 있는, 당시의 결정에 대한 또 다른 마음에 있다.

승은은 중절 수술을 결정하는 데 어떠한 의문도 품지 않았고 이후에도 그 결정의 정당성을 번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당시 병원에 찾아와 미안하다고 말했던 전 남자 친구의 말에 안도하는 스스로의 연약함을 마주하며 울었던 기억이 있다. 또한 데려다주겠다는 그의 말에 분노해 친구 미애에게 가겠다며 그의 차를 박차고 나서며 그의 보살핌을 원하고 있는 자신의 욕망과 함께 그가 당연히 자신과 함께 있어야 할 것으로서 자신이 치른 대가에 대한 응당한 보상을 바랐다는 사실을 모멸적으로 느낀다. 이러한 그날의 자기를 받아들이는 데 승은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결정의 온당성과 별개로 관계의 온정에 기대어 학습된 가부장제의 욕망을 자신의 그것으로 내재화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소화해내는 것이 승은이 조금씩 감경시켜야만 했던 그날의 경험인 것이다.

오로지 이성적인 선택으로서의 중절 수술이라는 사건의 결괏값에 수긍하면서도 어떻게든 선을 긋는 에게 실망하고 분노하는 자신의 다중적 욕망을 목격하고 해소하고자 했던 그 날의 경험은 혜원을 마주하면서 다시금 소환된다. 여기에서 승은은 여전히 미숙한 자기의 낯선 모습을 마주한다. 혜원의 선택을 지지하겠다고 말했지만 그 말이 실은 승은이 골랐던 것과 같은 선택지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금 더 기울어있음을 승은은 부정하지 않는다.

 

승은은 자신이 끝내 혜원을 한 방향으로 설득하려 했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과거에 내린 선택과 무관하지 않았다. 후회하지 않았다는 말은 거짓이 아닐지언정 그 선택이 옳았다고 설득하려는 의지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은 없는지도 몰랐다. 설득의 대상이 자기 자신인지, 그녀의 경험을 모르는 가까운 사람들인지, 혹은 사회가 주입해놓은 편견인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142)

 

승은은 혜원에게 하고자 했던 말이 진정 혜원만을 위한 것이었는지 묻는다. 혜원과 같은 상황에서 출산을 하고 제대로 육아할 수 있는 환경으로서 결혼 제도를 선택하는 것과, 승은과 같이 다른 삶의 가능성을 고려하여 중절을 선택하는 것 중 서사는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이 두 개의 선택지 중 어느 것을 고르더라도 다른 하나의 선택을 부정해야만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어서는 안 됨을 승은이 자신의 경험과 그 이후의 삶 전체를 톺아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옳음으로 향하려는 의지 안에 어떤 욕망과 마음들이 모순적으로 교차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승은을 통해 우리의 의지가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것 너머의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