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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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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면/기획 인터뷰

제국의 무덤, 아프가니스탄에 남겨진 것들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1. 10. 17. 16:30

제국의 무덤, 아프가니스탄에 남겨진 것들

 

지난 815, 미군이 완전 철수를 결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탈레반 세력에 완전 항복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무정부 상태가 된 아프가니스탄에서 자국민을 빼내기 위해 각 국가들의 대규모 철수작전이 진행되었고, 이를 어떻게든 탈출의 기회로 삼으려 했던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이 공항에 운집하면서 참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 탈레반 세력이 점거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온갖 종류의 폭력과 인권 탄압이 자행되고 있으며,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이하 북부동맹)’이 형성되어 이에 맞서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이에 본지는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배경과 전개과정 그리고 실태 전망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한국외국어대학교 페르시아어이란학과 유달승 교수를 만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페르시아어‧이란학과 유달승 교수

 

미군 철수, 그 이유는?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주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내 미국의 패배로 마무리되었다. 어떤 계기로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완전 철수를 결정하게 되었는지, 미국 철수의 국제 사회적·역사적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다.

주지하다시피 20년 전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목적은 9·11 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체포가 쉽지 않았던 탓에, 아프간을 점령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둔이 길어지게 된 것이죠. 2011년이 돼서야 빈 라덴을 사살하게 되는데 이미 10년 동안 장기 집권 체제가 형성되어 있었고, 이후에는 또 다른 테러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쉽게 철수를 결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아프간은 유라시아 교통의 요충지이기에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서도 쉽게 포기하기 힘든 곳이었죠.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국채를 발행할 정도로 막대한 국비를 지출하게 되자, 결국 철수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미군의 아프간 철거는 신냉전시대를 알리는 사건이라고 봅니다. 냉전시대의 주적이었던 소련, 탈냉전시대의 주적인 이슬람주의를 지나 미국이 중국을 주적으로 설정하였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 이번 아프간 전쟁의 종결은 탈냉전시대의 종결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프간 내부 상황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인 세계 전략과 국제 정서의 변화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이에 대한 면밀한 평가와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미국의 정치적 패배와 아프간 내 반미감정

엄연히 군사력을 보유한 하나의 국가가 쿠데타 세력에 의해 완전히 전복됐다는 사실은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미군 주둔 시의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어떤 상황이었으며, 이렇게 쉽사리 무너지게 된 결정적 원인이 무엇인지 물었다.

이번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의 패배는 단순히 군사적인 패배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패배도 함께 의미합니다. 미국이 아프간 정부로 내세운 친미중앙정부가 더 이상 아프간이라는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20년 전, 아프간은 미국 침공에 의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너졌기에 제대로 된 정부 수립이 어려웠고, 때문에 대통령과 관리들이 부패가 심했습니다. 미국은 아프간이 무너진 이유로 망명한 아슈라프 가니(Ashraf Ghani) 전 아프간 대통령의 무능을 지목하고 있습니다만, 누가 이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니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미국에서 계속 공부를 해왔고, 심지어 미국 시민권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를 위시한 친미중앙정부는 아프간 국민들을 위해 복무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이해관계를 위해 복무를 하였고, 또한 자신의 정권 유지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 정부는 카불을 비롯한 30% 정도의 대도시에서만 영향력을 끼쳤고 아프가니스탄 전체를 통제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를 제외한 70% 정도의 지방 정부에는 미군이 주둔해 있는 기간에도 이미 탈레반이 장악한 상태였습니다.

한편, 미국이라는 나라가 아프간을 대하는 태도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아프간에 주둔해있던 미군 병사들은 탈레반의 시신에 소변을 보는 동영상을 찍는 사건, 이슬람 경전 코란을 불태운 사건, 민간인 17명을 사망케한 총기 난사 사건 등을 일으켜 아프간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태도들은 서서히 아프간의 민심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 강압적인 정책과 무례한 태도로 아프간의 반미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이 미국의 주요한 패인입니다. 이를 비롯한 여러 요소가 지방과 시골을 중심으로 반미운동으로 비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탈레반이 집권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악마화된 탈레반과 그 실체적 진실

2001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발발 이후 탈레반 세력이 무너지지 않고 계속해서 결집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이슬람 근본주의가 지적되고 있다. 탈레반이라는 세력은 어떻게 생성되었으며, 이들은 어떤 집단인지 궁금하다.

모든 종교가 시대와 역사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하듯이 탈레반도 한순간에 만들어진 이슬람 극단주의가 아닙니다. 아프간은 내륙 지방이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끊임없는 외새의 침입과 분쟁, 갈등이 나타난 곳입니다. 또한 20세기 초반에는 입헌군주제로 인한 서구화 정책, 78년에는 사회주의 정권의 급진적인 정책으로 사회적인 혼란을 겪게 됩니다. 79년에는 소련-아프간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데 이때 이슬람 신학교의 신학생들이 파시즘 민족주의 운동의 일환으로 만든 이슬람 수니파 무장 정치조직이 탈레반입니다. 이슬람 이상 국가를 목표로 했던 탈레반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과도정부인 이슬람 공화국을 선포하여 국가를 운용하였지만, 그들의 극단적인 율법 교리가 문제화되기 시작합니다. 탈레반의 교조적인 이데올로기는 데오반드(Deobandism)파를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극단주의적인 성향을 띠고 있습니다. 특히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부각하고, 수니파가 아닌 시아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시간이 갈수록 확대 해석되어 시아파를 정상적인 종교가 아닌 이단으로 보기 시작하였고, 여학교 폐쇄, 텔레비전 금지, 가혹한 이슬람식 처벌제도 부활, 아동 학대 등 많은 부작용을 낳기 시작합니다.

탈레반의 여성, 아동 등 인권 유린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기에 국제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탈레반이 재집권하게 되면서 여성의 부르카 착용 강요도 다시 문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굉장히 복잡하다고 생각하는데, 종교계나 정부가 강압적으로 복장을 강요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지만 특정 복장을 입지 않는 행위가 곧 여성 해방의 전부라는 논리로 비약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무슬림 여성이 스스로 복장을 선택할 자유이며 이를 위해 국제사회가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여성 문제와 같은 인권 문제들 때문에 탈레반을 악마화하기 쉽지만, 탈레반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낸 것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손쉽게 탈레반을 악마·타자화 하는 것은 미국이 악의 축을 규정했던 것처럼 그 안에 존재하는 수 많은 생명과 고유한 문화를 말살시킬 위험이 있기에 경계해야합니다.”

 

아프가니스탄 안정을 위한 국제적 지원의 필요성

현재 아프가니스탄 판지사르 주와 바자라크 시를 거점으로 북부동맹이 결성되어 탈레반 세력에 저항하고 있다. 이들이 저항 운동에 나서게 된 배경은 무엇이며, 이들의 전력은 어느 정도인지, 국면 전환의 가능성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혼란 속에서 국제사회는 어떤 방향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물었다.

“2001년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은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북부동맹과 연맹을 맺었었습니다.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킨 일등공신은 틀림없이 북부동맹이었습니다. 그러나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후 미국은 곧바로 북부동맹을 배제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그 이후로 북부동맹 세력의 규모는 점차 축소될 수밖에 없었죠. 더욱이 이번에 탈레반이 치하한 통치체제 ‘12인회에 전 북부동맹 외교 장관도 참여하는 등 이전 북부 세력들의 수뇌부가 부재합니다. 또한 지난 2001년과는 달리 미국이나 다른 국가들의 지원도 전혀 받지 못하는 상태이고, 지리적으로도 고립돼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의 북부동맹은 과거와 달리 힘이 많이 약해진 상태이기에 전선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저는 아프가니스탄 문화가 기존과는 다른 가치관, 다른 제도를 표방한다는 이유만으로 문제 제기를 하기보다는 미국이나 탈레반을 경유하지 않고 우리의 시각으로 직접 아프가니스탄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이 지구촌 모든 문제는 맞음과 틀림이 아닌 같음과 다름의 문제입니다. 인권유린 문제의 경우는 국제 사회가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제재를 하되, 그런 조건들을 수용하고 인권 안정과 평화를 노력한다면 탈레반이 세운 정부라 할지라도 국제적인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아프간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친미정부도 탈레반도 아닌 아프간 국민이고, 현실적으로 이들의 평화와 안전을 지킬 만한 다른 방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아프간 국민을 위한 국제사회의 입장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영서 기자 youngseo516@naver.com

황지원 기자 h950301@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