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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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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면/기획 인터뷰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을 기억하며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1. 9. 19. 21:01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을 기억하며

-고용구조의 사각지대를 걷어내기 위한 연대의 필요성-

 

지난 626일 서울대학교 기숙사에서 근무해온 청소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20198월 제2공학관에서 청소노동자가 숨진 이후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한번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오세정 총장은 사건 발생 후 한 달가량이 지나서야 유족들을 만나 사과했으며, 학교 측은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노동조합과 학생회는 사과는 끝이 아닌 시작이라며 교내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개선안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본지는 이번 사건에 작용한 구조적 원인과 다양한 변수들 그리고 앞으로의 투쟁 방향을 묻기 위해 전국민주일반노조 서울대시설분회 정성훈 분회장과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의 서울대 조합원을 만났다.

 

 

변화하는 제도, 지속되는 고용불안

문재인 정부는 2017년부터 상시·지속업무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을 시행해오고 있다. 공공부문이 선도하여 상시·지속 업무에 정규직 사용 관행을 정착하기 위한 정책이지만,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나듯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처우 개선은 아직 미흡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따라 실제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어떠한지 물었다.

 

이번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의 결정적인 원인은 높은 노동 강도와 과중한 스트레스였습니다. 그런데 이를 단순한 사고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 그 근본적인 배경이 불안정한 고용구조에 있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취지는 좋으나, 이를 너무 조급하게 진행하다 보니 무늬만 정규직으로 바뀐 사람들이 많습니다. 서울대의 사례를 보면, 2011년에 법인화를 추진하면서 기존의 공무원과 정규직 직원들은 법인 직원으로 전환되었습니다만, 법인 직원이 아닌 자체직원으로 구성된 조직들은 정규직의 형태를 띤 비정규직 직군으로 남아 있습니다. 학사운영직, 비학생 조교, 시설관리직 등 약 1,000여 명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크게 총장 발령과 기관장 발령으로 나뉘는데, 이는 또 각각 기간제 근무자, 무기계약직 등으로 분화되어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규직 전환 정책에도 불구하고 고용불안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논란이 되었던 또 다른 사안은 직장 내 괴롭힘이었습니다. 관리팀에서는 청소 검사, 필기고사 실시 및 성적 공개, 회의 복장 규제 등의 규정을 내세우며 이를 근무 태도 평가에 반영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이번에 사망하신 청소노동자분도 감점을 피하고자 열흘이나 일주일 동안 해야 할 일을 이틀에 몰아서 하면서 과로와 스트레스가 발생했던 것이죠. 그런데 자체 시험이나 복장으로 근무 태도를 평가하는 규정은 본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와 같은 관리팀장의 일방적인 행동은, 무기계약직과 기간제 계약직 직원들이 법인 직원들에 의해 감시와 감독을 심하게 받을 수밖에 없는 고용구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공립대학교에 가려진 법과 정책의 사각지대

잇따른 사고를 지켜보면서 청소노동자의 처우와 근무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처럼 경각심과 제도적인 노력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노동자들의 안타까운 현실이 반복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청소노동자들이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점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2019년 이후 서울대학교에서는 청소노동자 휴게실이 개선되었고, 지난달 부로 건물마다 일정 규격과 조건 이상의 휴게 공간을 조성하도록 하는 청소경비노동자 휴게시설 의무화 개정 법안이 시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법률은 분명한 한계를 지닙니다. 휴게실 의무화법은 앞으로 지어질 건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이미 세워진 건물에 휴게실이 없거나 열악하더라도 이를 개선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이 없는 것이죠. 또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마련되어 있지만, 이는 관리자들의 인식과 결부된 문제여서 사실상 법으로 통제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각자 영역에서 일하고 소통하는 똑같은 직원일 뿐인데, 일각에서는 현장직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리고 감시하는 것이 관리자의 역할이라는 왜곡된 사명감에 사로잡혀 자신이 갑질을 하고 있는지 인지조차 못 할 때가 많습니다.

한편 재단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사립대학과는 달리, 법인 국공립대학인 서울대학교는 사실상 교수 커뮤니티에 의해 운영되는 독특한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이사회가 형식적으로 존재하지만, 여기서 어떤 논의가 오가는지, 외부 인사들이 얼마나 목소리를 내는지 등 실제 운영 상황은 투명하지 않습니다. 학장과 기관장들이 본부보다 더욱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마치 중세 봉건제를 연상시키는 형태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런 운영구조가 강점일 때도 있겠지만 이번 사건에서처럼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변화가 필요할 때에는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고용구조가 분화되어있다 보니 본부와 기숙사, 각 기관에서 담당하는 업무량과 업무 강도는 상이하며, 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파악하고 직접적인 투쟁의 대상을 설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본부에서는 실질적인 행정처리를 담당하는 각 기관을 내세우며 책임을 회피하고 더욱 강경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죠. 이번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학교 측이 청소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상식적이겠지만, 지금까지의 대응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새로 짓는 건물에 대한 관리는 시설관리직 인원을 충원하는 게 아니라 용역으로 고용하고 있고, 본래 노조와 함께 협의하여 진행하기로 되어있는 무기계약직 채용은 6개월 단위로만 가능해서 오히려 단기 계약직을 더 많이 고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노조의 목소리를 들으려고조차 안 하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사회적·제도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수많은 노동자들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업무 과중과 학교 측의 미온적인 대응

코로나19의 확산과 함께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기숙사 담당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가 강화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팬데믹 이후 기숙사를 비롯하여 학교 전반의 청소 업무에 어떤 질적·양적 변화가 있었는지, 또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학교 측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했는지 물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캠퍼스 내 인원이 줄어들면서 일부 건물에서는 일이 다소 한산해졌지만, 기숙사 미화를 맡은 사람들은 정반대 상황에 놓이게 되었죠. 평소라면 학생들이 오전부터 오후까지 외부에 나가 있는데, 지금은 기숙사에서 온종일 수업을 듣고, 공부하고, 식사까지 합니다. 특히 배달 음식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쓰레기양이 전보다 8~9배 수준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 이번 사건 일주일 전에 기숙사 퇴사가 있었는데요, 퇴사 때는 학생들이 버리고 가는 짐 때문에 쓰레기가 2배 이상 늘어나게 됩니다. 한 동에서만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가 18개까지 나오기도 하는데, 그 무게도 천차만별이죠. 그리고 이는 순수하게 일반 쓰레기만 계산한 수치고, 그 외에도 재활용, , 음식물 쓰레기 등까지 다 합치면 노동 강도가 극심하게 늘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상황 변화가 2년째 지속되고 있음에도 학교는 별다른 대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동안 학교 측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인력 충원을 꾸준히 요청했고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4단계로 격상되면서 비대면 수업이 연장되었지만, 학교 측 대응에서는 달라진 게 없습니다. 외곽을 전담하는 직원을 추가로 고용할 계획이 있다는 말이 들리긴 하지만, 실제로 충원과 배정이 언제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죠. 만약 실제로 인력을 충원할 의향이 있었다면 진작에 채용 공고를 내고 고용 절차를 진행해야 했는데, 당장 기숙사 입소를 앞둔 8월 중순까지도 채용 계획에는 새로운 방침이나 추가 인력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번에 사고로 돌아가신 청소노동자 한 분과 퇴직하신 경비노동자분 한 분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총 2명을 추가로 고용한 것이 다입니다.”

 

 

학내 구성원의 관심과 연대의 필요성

이번 사건이 발생한 공간이 학교인 만큼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학내 구성원들의 연대가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학생사회의 규모 축소와 코로나19로 인해 학내 구성원들의 관심도 줄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최근 학내 구성원들과의 연대는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 물었다.

 

대학에서 학생들의 지원이 없다면 노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학생들이 앞에서 이끌어주고 뒤에서 지원해주며 옆에서 부둥켜 안아주기 때문에 그나마 노조라도 조직할 수 있죠. 따라서 학생들, 또 학내 구성원 모두의 연대가 필요한 것은 어쩌면 대학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법이 제정·개정되어 우리 일상에 정착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법을 마련해도 이걸 지키지 않으면 그만이고요. 입법 투쟁도 중요하지만, 현장 투쟁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분위기가 조금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총학생회가 있어서 학생들의 지원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사정상 공동대책위원회 형식으로 바뀌었습니다. 학생들과 소통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처럼 적극적으로 만나서 대화하거나 구심점을 가지고 학내 운동권 문화를 펼쳐 나가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는 직접적인 소통의 창구가 매우 제한적인 코로나19 상황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 운동권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의 문제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운동권이라고 하면 고지식하고 경직된 분위기를 연상시키거나, 뉴스에 나오는 노동운동을 보고 반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기존의 학생사회나 운동권 문법을 경험하지 않은 채 대학 생활을 보내는 학생들이 늘어가는데, 오히려 이를 발판삼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믿음도 있습니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기존의 방식과 한계에 부딪히기보다 따뜻하고 즐겁고 새로운 운동권 문화를 형성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서윤 기자 jensyc@daum.net

이영서 기자 youngseo51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