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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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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면/원우발언대

어쩌다 대학원은 탈출해야 하는 곳이 되었는가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4. 3. 13:03

친하게 지내던 학부 후배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재밌는 웹툰을 알게 되었다며 꼭 봐보라는 내용이었다. 웹툰의 제목은 <대학원 탈출일지>였다. 이제 막 정식연재를 시작한 이 웹툰은 대학원에 입학한 주인공이 대학원을 도망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웹툰을 보면서 냉소적인 웃음이 지어졌다. 어쩌다 대학원은 탈출해야 하는 곳이 되었는가.

 

웹툰은 대학원생이 된 미래의 주인공이 학부 4학년생인 과거의 주인공을 말리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다음은 대학원 선배가 주인공에게 대학원 진학을 만류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 역시 대학원을 입학하려 할 때,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선배들이 나를 말렸다. 회사에 입사할 수도 있고, 고시를 준비할 수도 있고, 창업을 할 수도 있다며 나의 대학원 입학을 저지하였다. 그들은 그동안 나도 모르고 있었던 나의 무한한 잠재력을 일깨워주며 적극적으로 대학원을 만류하였다. 그러나 선배들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끝끝내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정작 본인들은 열심히 다니면서 나에게는 오지 말라고 했던 선배들의 말에 설득력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대학원에 오고 싶다는 학부의 후배들을 만나면 그들을 말리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나는 왜 후배들을 말리는 것일까.

 

내가 대학원에 오고 제일 곤란했던 것은 등록금이었다. 거기에 입학금도 있었다. 학부는 입학금을 없애는 추세인데, 대학원생은 왜 아직도 입학금이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당장 입학금을 안 내면 대학원에 등록할 수 없으니 안 낼 수도 없었다. 조교 자리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장학재단에서 대출 지원을 받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으로 등록금과 입학금을 납부하였다. 학부 때는 당연하게 신청하고 지급받았던 국가장학금의 혜택이 대학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때 처음 깨달았다.

 

다행히 입학 후 조교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매 학기 끝나갈 때쯤이면 조교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선배, 동기, 후배를 보면서 가슴을 졸여야 했다. 매 학기 조교 자리가 확정되면 누군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누군가는 고민의 한숨을 토해야 했다. 직장에 다니지 않는 전일제 대학원생에게 몇백만 원의 등록금은 거액이기에, 누군가는 한국장학재단에, 누군가는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만 했다. 그러나 등록금을 해결하고도 생활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생활비는 각자가 마련해야만 했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다수의 대학원생은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학원, 과외, 카페 등 각종 아르바이트에 종사한다. 장학재단에서 장학금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그 수혜자는 그리 많지 않다. 결국 일을 해서 벌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수업과 연구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경제 활동은 어디까지나 부업, 대학원생의 본업은 연구다. 대학원 사회에서 연구 실적이 좋으면서 돈을 못 버는 원생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공감해주지만, 돈을 벌면서 연구 실적이 좋지 않은 원생에게는 남모를 비난의 시선이 드리운다. 같은 공간 안에서조차 공감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

 

회사에 취직한 친구를 만나면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니까 힘든데, 너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있노라면 씁쓸함이 밀려온다. 첫 번째 이유는 수업 준비와 경제 활동으로 인해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제대로 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연구할 시간을 줄여가면서 경제 활동을 열심히 하고도 나에게 저런 말을 늘어놓는 친구보다 수입이 적기 때문이다. 대학원 밖의 사람에게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는 부러운 부류에 속하지만, 정작 대학원 안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만족스럽게 진행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등록금과 생활비 문제 외에도 연구 공간 문제, 실험 및 논문 자료 확보 문제 등 각종 다양한 일들이 대학원생을 괴롭힌다. 이렇게 놓고 보면 대학원을 탈출해야 할 곳으로 묘사한 것은 정말 타당한 듯 싶다. 그런데 사실 대학원을 정말 탈출하고 싶게 만드는 것은 동료 대학원생이 주는 상처라고 생각한다.

 

대학원에 입학하고 선배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못해도 1인분은 해야 한다”,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구가 중요하다”, “석사만 하고 졸업할 거면 안 하는 게 낫다등의 말들을 참 많이 들었다. 이 말들을 곱씹어보면 정말 폭력적인 언사들이다. 1인분의 기준은 뭐며, 돈을 못 벌면 당장 생활비는 어떻게 할 것이며, 박사를 꼭 해야만 하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그런데 저 말들에 놓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대학원생은 그대로 실력 없는 연구자로 낙인찍힌다. 같은 처지에 있으면서 서로를 돕지는 못할망정 물어뜯지 못해 안달 난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적어도 같은 환경에서 연구하는 동료끼리는 서로 믿고 의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사람이 문제다. 함께 연구하는 동료간에 신뢰와 연대로 뭉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