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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이타(利他)와 자리(自利)가 함께하는 사찰음식 본문

1면/기획 인터뷰

이타(利他)와 자리(自利)가 함께하는 사찰음식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5. 4. 23:30

이타(利他)와 자리(自利)가 함께하는 사찰음식

 

 불교는 전 세계적으로 각 국가의 지역 특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전파되었고 사찰음식 역시 국가별 특징에 따라 분화되었다. 한국 사찰음식은 우유를 제외한 동물성 식품과 오신채(달래, 부추, 파, 마늘, 흥거)를 사용하지 않는 등의 고유한 특징을 인정받아 2021년 세계적인 요리 교육기관인 르 코르동 블루 런던(le cordon bleu London)의 정규 교과과정 내 프로그램으로 선발되었다. 최근 환경문제와 동물권을 옹호하는 비거니즘(Veganism)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면서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 역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사찰음식은 종교 수행 방식의 하나로 오랜 역사를 담보하고 있는 문화라는 특이점을 갖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사찰음식과 한국의 사찰음식의 특징에 대해서 톺아보고자 사찰음식교육관 강사이자 송학사 주지인 주호스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하나의 수행으로서의 사찰음식

주호스님은 출가하신 후 현재 사찰음식 강의를 진행 중이다. 스님이 출가하시게 된 계기와 이후 사찰음식을 직접 만들고 연구하시게 된 동기를 물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불교 공부를 접하며 성장하다가 자연스럽게 성인이 되자마자 출가를 결정했습니다. 1997년에 기본적인 행자 교육을 받고 2006년도에 정식 승려가 되었습니다. 대학교에서 불교학을 공부하면서 앞으로의 포교 방향에 대해 굉장히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후 심리 상담, 사회복지 등으로도 생각하다가 사찰음식 연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사찰음식을 통해 포교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찰에서 밥을 먹는 행위는 단순한 일과라고 생각을 했으니까요. 그러나 재료를 재배하는 일부터 음식을 만들고 먹는 행위 전부가 수행의 연장선임을 배우고 나서부터는 사찰음식을 통해 포교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2015년도에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처음 개설된 사찰음식 전문가 과정에 참여하여 기초 기본 교육 과정을 이수를 하고, 이후 사찰음식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사찰음식의 역사와 변천사

최근 한국의 사찰음식은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다른 나라 사찰음식과는 다른 한국 사찰음식의 특징은 무엇이 있는지 물었다.

 

 “같은 불교 국가 중에서도 식재료에 대한 수용이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는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차이를 알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소승불교를 믿는 남방불교권의 경우 스님들이 탁발을 통해 끼니를 해결합니다. 따라서 스님 스스로 어떤 재료를 넣고 빼고 조절할 수 없습니다. 이에 남방불교 문화권인 태국,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 등에서는 상대적으로 사찰음식이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한편,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정주(定住) 문화가 발달한 대승불교로 발전하게 됩니다. 산 속에서는 일반 마을 사람들에게 탁발을 하러 내려갈 수가 없기 때문에 선농(先農) 일치 사상이 설법하게 됩니다. 따라서 대승불교에서는 음식을 만들고 먹는 과정 또한 수행이기에 스님들은 생명 자비 사상에 의해서 육식을 지양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계율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적당히 응용될 수 있다는 지범개차(持犯開遮)의 도리에 따라서, 몸이 아프거나 어린아이의 성장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육식을 허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우리가 지켜가는 것이 수행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게 현재 대승불교권의 정신입니다. 이렇듯 소승 불교의 탁발 문화와 대승 불교의 수행 일치 문화를 구별할 수 있다면 불교에서의 식문화를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한반도에서 불교는 삼국시대 때 전해졌고, 고려시대에는 국교가 됩니다. 고려시대에는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습속의례와 불교의례가 결부된 팔관회(八關會)와 연등회(燃燈會) 같은 국가적 연중행사 의식이 열렸는데 이를 위해 화려한 사찰음식이 필요했습니다. 반면, 조선시대에는 비대해진 불교 세력을 축소시키기 위한 숭유억불() 사상이 들어서게 됩니다. 따라서 불교는 도심을 벗어나 산중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오히려 사찰 음식은 더 다양하게 발달하게 됩니다. 한정되어 있는 채소와 콩 같은 재료를 가지고 영양가도 있고 보기도 좋게 만드는 방법을 탐구한 것이죠.

 최근 국내에서는 2002년도에 템플스테이 문화가 널리 퍼지면서 사찰음식도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천년이 넘은 공간에서 아직까지 수행자들이 직접 요리를 하고 수행하면서 의식주 생활을 한다는 사실이 주목을 받으며 유네스코에 한국 사찰 7곳이 등록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특수한 문화를 직접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음식 문화입니다. 스님이 직접 해외로 가서 수행의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고 그 정신을 알려주는 것이 가능한 것이죠. 따라서 사찰음식은 단순히 음식이 아니고, 불교문화입니다. 천년이라는 기간이 넘도록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살아 있는 맛이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찰음식의 특징과 식재료의 중요성

사찰음식은 봄의 곰취쌈밥, 여름의 상추대궁김치, 가을의 고추부각조림, 겨울의 무왁저지 등 자연의 변화에 따르는 제철식재료를 활용하는 특징을 잘 살리고 있다. 이에 한국 사찰음식 재료의 특성과 5월과 잘 어울리는 음식에 대해 물었다. 

 

 “사찰음식에서 가장 큰 공통점은 매운맛을 내는 다섯 가지 채소인 오신채(마늘, 파, 부추, 달래, 흥거)를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삼덕(청정, 유연, 여법)이라 불리는 청정한 음식, 유연한 마음가짐 그리고 부처님 법답게 하는 여법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음식이 자신에게 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행위가 한국의 사찰 음식만의 독특한 특징인 것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그렇듯이 각 나라의 고유한 기후와 토양이 존재하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참깨, 들깨, 깻잎, 고추, 오이 등은 외국에서 재배되는 것과는 맛과 향이 전혀 다릅니다. 또한 국내 사찰들은 지형적으로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각 사찰에서 지역 특성적 재료들을 이용한 레시피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봄에 나는 나물은 쓴맛이 나며, 이는 몸에 따뜻한 기운이 돌게 해서 에너지를 활성화시켜 줍니다. 그래서 춘곤증 예방에도 탁월하죠. 5월에는 대표적으로 가죽나물이 있습니다. 가죽나물은 참죽나무의 어린잎으로 독특한 향이 있어서 별미 식재료입니다. 가죽나물은 버릴 게 하나도 없습니다. 새순이 나오면 장아찌를 담그고, 나물도 해먹고, 조금 더 크면 부각으로 만듭니다. 또 통째로 쪄서 말려놓으면, 채소 육수를 낼 때도 탁월합니다. 그리고 저희 사찰에서는 4월 초파일이 되면 특별히 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제피 잎에 깻잎과 호박 등을 다져서 넣고, 도토리가루나 메밀가루를 넣어 얇게 구운 제피장떡입니다. 제피장떡만 따로 먹기도 하고, 비빔밥에 하나씩 올려서 별식으로 먹기도 합니다. 

 나물 관리는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날씨가 좋아야 하고, 조금만 습기가 있어도 안되죠. 오랜 보관을 위해 생잎을 찌기도 하고, 바짝 말려줘야 합니다. 또, 부각을 만들기 위해선 찹쌀 풀도 쒀야 하고,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해야합니다. 하루 종일 나물을 손질하다 보면 손끝이 까맣게 물이 들 정도입니다. 그래도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의 가르침을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건음식과의 차이점

최근 사찰음식은 비건음식, 약선(藥膳)음식의 열풍과 함께 많은 관심과 인기를 얻고 있다. 비종교인에게도 대중화되고 비건음식의 한 부류로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물었다. 

 

 “최근 비건에 관한 지속적인 관심과 비건음식 문화의 발전은 사찰음식을 연구하는 스님으로서 아주 반가운 일입니다. 한동안 방송 매체에서 보이는 유행한 과도한 육식과 과식 문화가 불편했거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무작정 육식을 배제한 극단적 채식주의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많은 비건분들이 동물권 문제와 환경 문제를 위해 특정 음식들을 거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비건 문화는 이타적(利他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자리적(自利的) 특성이 내포되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어느 정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야지 스스로 자비로워지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에너지가 전해지는 거죠. 따라서 스님들은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고찰하고, 자신의 덕행을 되돌아보고, 몸을 지탱하기 위해 수행으로서 음식을 대합니다.

 수행을 하는 삶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님들은 굳이 많은 동물성 단백질이 필요하지가 않은 거죠. 그러나 사회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은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육식은 필요하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그것이 또 과해지면 문제인 것이겠지요. 

  저는 매번 이타와 자리가 함께 하는 ‘의식 있는 비건 생활’을 주장합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든, 그 음식을 누군가에게 나누어 주든 간에 행복을 지향하는 것이 사찰 음식의 정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행복한 마음과 자비로운 정신을 가지고 음식을 선택한다면 맑고 건강한 에너지를 가질 수 있는 비거니즘이 될 것입니다.”

 

황지원 기자 h950301@naver.com

김연광 기자 dusrhkd99@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