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과잉결정과 과소결정, 그리고 ‘어떻게’의 문제를 사고하기 본문

5면/구조와 정세

과잉결정과 과소결정, 그리고 ‘어떻게’의 문제를 사고하기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9. 2. 14:30

과잉결정과 과소결정, 그리고 ‘어떻게’의 문제를 사고하기

 

 

사회과학 연구집단 '사과나무' 연구원 강태경

 

강경덕, 『구조와 모순 :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논점들』서광사, 2014.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너무나도 참혹한 일이며, 지구 전체로서도 불행인 사건이다. 백승욱의 최근 지적대로, 이번 전쟁의 발발로 세계대전 이후에 수립된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유튜브 강연 <우크라이나 전쟁과 세계질서의 변동>, 2022.07.19.). 기후위기와 같은 지구적 난제들은 순식간에 뒷전으로 밀렸으며 독일마저 군비 확장을 결정했다. 

 구조와 모순』은 “왜 착취받는 노동자들은 그들의 해방을 외치는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파시즘이나 민족주의에 이끌렸는가?”(27쪽)라는 질문에서 역사인과성 문제를 다룬다. 20세기 초 제2인터내셔널에 결합한 노동자들은 바젤선언에서 자본가나 왕족을 위한 전쟁을 참여하는 것을 범죄행위라고 결의한 바 있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막을 수 없었다.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는 자본가계급과 충돌한다는 분석도 맞지만, 전쟁으로 인한 궁핍화 이후 대중은 파시즘과 나치즘, 민족주의를 따라 참전을 택했다. 

따라서 전후에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과제는 경제구조와는 다른 층위로서 정치라는 문제와 그에 대한 이론화 작업이었다. 알튀세르는 이에 대한 도발적인 이론들을 제시하였는데,  『구조와 모순』은 알튀세르의 이론적 시도들을 되짚어보며 “역사과학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적합성과 유효성을 논하는”(11쪽) 책이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주의자의 양대 편향, ①교조화된 소련 마르크스주의의 경제주의 편향( 하부구조에 의해 상부구조가 결정되며, 생산력 발전을 통해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는 목적론적 입장)과 ②마르크스의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인간주의적 편향을 동시에 비판했다. 이는 각각 생산양식을 강조하는 입장과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입장으로 정리되는데, 알튀세르는 두 편향을 비판하면서 마르크스주의에 공존하는 역사의 두 인과성(생산양식과 계급투쟁)을 결합하여 구조인과성과 과잉결정의 인과성 개념을 제시하였다.

생산양식은 역사의 변화를 설명하는 변수이면서 그 자체가 새로운 조건이 된다. 계급투쟁은 생산양식에 의해 결정되면서도 계급투쟁의 결과가 다시 생산양식에 영향을 주는 원인이 된다. 알튀세르는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는 이 ‘되먹임(feedback)’의 과정을 설명하는 인과성을 모색한 것이다. 그로 인해 알튀세르에게는 토대/상부구조 도식이 생산양식/이데올로기의 과잉결정으로 대체되고, 과잉결정의 인과성은 모순의 복합성을 인정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틀은 여러 모순의 복합적인 발생 속에서 역사가 변화하는 현실을 마르크스주의 이론으로써 설명할 수 있게 한다. 계급만이 아니라 성차·인종·민족 등 다른 모순과 결합하여 생산양식을 사고하는 이론적 확장이 가능해진 것이다. 

책은 알튀세르의 정정을 따라 이어진다. 역사의 일반이론을 수립하려 했던  『자본을 읽자』의 시도, 구조와 정세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게 된 자기 편향을 고치기 위해 철학을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이라고 제시한 테제가 설명된다. 인식론적 절단 개념의 재정의와 알튀세르의 구조 개념에 대한 해설, 구조의 동력으로서 모순을 강조한 입장의 해설, 알튀세르를 이어간 학자들의 작업에 대한 소개가 이어진다. 

제4장의 주제는 이데올로기와 토픽이다. 알튀세르가 토픽 개념을 통해 물질성의 다른 심급들을 사고하는 과정을 다루면서 교통이론에서 스피노자가 갖는 중요성이 다루어진다. 토픽 개념을 강조하면서 이론 역시도 하나의 사회적 실천으로서 현실에 효과를 미친다는 결론이 제시된다. 사람들이 이론을 접하고 새로운 행동을 하면 현실이 변화한다. 우리는 이제 이론을 볼 때 그것이 만들어내는 효과도 같이 볼 필요가 있게 되었다.

제6장에서는 과잉결정과 과소결정을 중심으로 구조 속의 동력으로서 모순과 사회변화과정을 비목적론적인 변증법으로 설명한다. 특히 과소결정 개념을 보론으로 강조하여 설명하는데, 과소결정이란 구조 속의 모순이 있지만 역사의 경로 변화는 발생하지 않거나, 어떤 임계는 넘지는 못하는 방식으로 구조가 재생산된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과소결정된 구조는 그 전과 다르다. 그 안에는 모순의 작용 과정에서 미분적인 변화가 담겨있으며, 구조가 가진 ‘변화의 임계점’ 자체도 변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므로 “구조가 정세적 결정의 연속”(248쪽)이라는 함의가 도출되는데, 이는 모순이 존재한다면 당장에는 임계를 넘지 못해도 새로운 분기의 가능성은 그 결정(과소결정) 과정에서 남아 있으며, 결과적으로 “재생산과 이행이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지 않”(249쪽)는다는 뜻이다. 

마지막 7장에서는 과학과 현실의 관계를 다룬다. 과학을 정의해달라는 저자의 질문에 “‘나에게는 그것[과학을 정의하는 일]보다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274쪽)라고 대답했다는 정운영의 에피소드는 현실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문제가 과학과 현실의 관계에 가로놓여 있는 중심문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정세적으로 우리가 직면한 경제위기는 신자유주의가 금융위기 이후를 대응하면서 쌓아온 문제들과 코로나19로 인해 무리했던 재정정책의 영향에다 전쟁이 겹쳐져서 한층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의 구조에서 경제문제의 심화가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전쟁으로 발생한 문제들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과소결정 속에서 전쟁이 세계적으로 발발하기 위한 임계는 바뀌었을 것이다. 전쟁에 대응하는 인간의 실천 속에서도 자본주의는 새롭게(혹은 유사하지만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재생산 과정에서 변화를 추동하는 모순은 무엇인가. 생산양식은 이데올로기와 결합해 어떻게 과잉(과소)결정되고 있는가. 무엇이 조건이고 무엇이 결정적인가. 그래서 어떻게 바꿀 것인가.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더라도, 연구와 이론적 접근이라는 우리의 실천이 더해진다면 그 자체가 ‘어떻게’에 대한 하나의 실천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