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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신자유주의 이후를 사고하기 위한 계급적 관점의 경제학 본문

5면/구조와 정세

신자유주의 이후를 사고하기 위한 계급적 관점의 경제학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11. 5. 23:52

신자유주의 이후를 사고하기 위한 계급적 관점의 경제학

 

강태경

사회과학 연구집단 '사과나무' 연구원

 

신자유주의의 위기(2011, 번역본 2014)

  • 제라르 뒤메닐 · 도미니크 레비 지음, 김덕민 옮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에 의해 시작된 2008-2009년 금융위기에 양적완화로 대처한 공을 인정받은 버냉키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근에 닥쳐온 극심한 인플레이션의 원죄가 버냉키에게 있다는 목소리 역시 적지 않다. 양적완화가 체제의 붕괴를 막았을지언정,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모순은 무엇인가? 특히 그것이 격변하는 국제정세와 어떻게 연동되어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준거들이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의 위기」는 금융위기를 ‘신자유주의의 위기’라고 명명하면서 이를 자본주의의 네 번째 구조적 위기라고 진단한 책이다. 앞선 위기들부터 나열하면 ①1890년대의 위기, ②대공황, ③1970년대 위기, ④신자유주의의 위기이다. 이 중 ①과 ③은 이윤율 저하에 의한 위기지만, ②와 ④는 금융 헤게모니의 위기로 구분된다. 구조적 위기란 통상적인 경기변동과 다르게 새로운 사회질서가 형성되는 단절적 계기가 된다. 당시 사회질서 내의 모순이 첨예해지고, 그에 대응하는 계급투쟁이 결합한 결과로 발생한다. 대공황 이후 사회민주주의/케인스주의적 타협의 시기가 있었고, `70년대 위기를 겪으면서 신자유주의의 시기로 전환되었는데, 2007년에 시작된 금융위기는 그 신자유주의가 다른 새로운 국면으로 바뀌는 단절적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제2장 “위기의 해부”에서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위기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시작하여 세계적으로 확대된 미국 헤게모니 하의 경제질서로 규정된다. 신자유주의는 두 가지 기제로 작동한다. 하나는 금융화와 세계화가 결합하여 가능해진 “무제한적인 고소득 추구”가 있고, 다른 하나는 미국만 가능한 “지속 불가능한 거시적 궤도”이다. 이 궤도란 축적이 느린데도 무역 적자가 확대되고 부채는 증가하는 것이다(62-3쪽).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적자와 부채, 최상위 소득자에 대한 부의 집중, 세계적인 비용 전가에 따른 금융 헤게모니의 후퇴는 `08-`09년 금융위기가 신자유주의의 구조적 위기로 설명되는 이유다. 유의할 점은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이윤율 저하 때문에 발생한 위기가 아니라 미국 중심의 금융 헤게모니의 위기로 규정하였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여전히 지배적이지만 재생산 과정에서 내부의 모순 때문에 스스로 변화의 계기가 발생한다는, 과소결정의 문제의식으로 고민해야 하는 대목이다. 

제3부는 자본가/관리자/민중이라는 계급론에 입각한 분석이 제시된다. 마르크스주의에서 통상적으로 다루는 자본/노동이라는 두 개의 계급이 아니라 관리자라는 계급개념을 더한다. 관리자는 기업에서 임금을 받는 관리자들이나 정부의 행정 관료들이다. 관리자계급은 자본주의의 ‘생산관계’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부상한 이들이다. 세 계급 간의 형세는 구조적 변화의 정치적 요인을 설명한다. 자본과 관리자의 타협은 ‘우편향적’이며, 관리자와 민중 계급의 타협은 ‘좌편향적’이다. 다시 우편향적 타협 중 자본가가 주도하는 형세는 신자유주의, 관리자가 주도하는 형세는 신관리주의적 자본주의이다. 좌편향적 타협 중 관리자가 주도하는 것을 전후 타협(케인스주의), 민중 계급이 주도하는 경우는 아직 현실에는 실현되지 않은 사회주의로 구별한다. 

즉, 신자유주의 시기는 관리자-민중 타협에서 자본-관리자 타협으로 정치적 변동이 있었다. 금융과 연계된 관리의 고도화는 고소득 관리자라는 새로운 직군을 만들어내고, 정부에서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행하는 관료들이 있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경험자료 중, 임금소득자 상위 5%의 임금몫의 성장 속도에 비해 상위 1% 임금소득자의 임금몫이 훨씬 빠르게 성장한 것은 인상적이다(113쪽). 

신자유주의 이후의 사회질서 형성 과정에서 주목할 부분은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관리자계급의 주도권이 강해질지의 여부이고, 동시에 이들의 계급적 타협의 방향이 자본을 향할 것이냐 민중을 향할 것이냐와 관련이 된다. 최근의 정세를 이 책의 분석과 대조하여보자.

‘무제한적인 고소득 추구’를 뒷받침한 금융화와 세계화 중 세계화에 큰 균열이 생겼다. 이런 상황은 국가경제정책의 중요성을 높이고 위기에 대응하는 관리자의 역할을 강화한다. `08-`09년 금융위기 이래 양적완화가 지속되었고, `19년에 발생한 코로나19라는 외생변수로 양적완화는 2년 더 이어지면서 역사적인 거품이 발생했다. 금리가 오르고 거품이 꺼지면서 금융시장의 투기 바람이 잦아드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이후에도 금융화의 추세가 과연 변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의 부채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고, 강달러의 상황에서 주변국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의 무역수지의 적자도 최근 2년간 더욱 심각해졌다가 최근에 급격히 적자폭이 줄어서 겨우 2007년 수준으로 반등했다. 바이든 정부에서 국외로 떠났던 자본을 미국 안으로 다시 들이려고 노력하여 축적의 문제가 일부 해소될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미국만 가능한 ‘지속불가능한 거시 궤도’의 가장 큰 모순인 주변국들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문제는 크게 수정되지 않았다. 

제24장 “민족적 요소”에서 강조한 것처럼 미국 헤게모니 하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발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미국-중국의 패권 경쟁의 본격화로 더욱 심각해졌다. 공교롭게도 코로나19로 2년간 국경이 봉쇄되면서 각국의 민족주의가 강화된 것도 중대한 조건의 변화다. 금융위기 이후 10여 년이 지났지만, 신자유주의의 모순과 그에 영향을 미치는 변화, 그리고 계급형세와 민족적 요소를 고려하도록 하는 이 책은 신자유주의의 이후를 사고하기 위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