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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테제보다는 과정을 이해하기 본문

5면/구조와 정세

테제보다는 과정을 이해하기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12. 12. 22:10

백승욱, 󰡔생각하는 마르크스 :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북콤마, 2017.

강태경

 

1882년 엥겔스가 베른슈타인에게 쓴 편지에는 마르크스가 당대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를 보면서 마땅치 않게 여기고 자신의 사위인 라파르그에게 프랑스어로 확실한 것은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담겨있다. 마르크스의 말년에 들어 그의 주장과 테제가 자신의 손을 떠나 하나의 사회운동이자 정치적 세력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마르크스 살아생전에도 일정한 괴리가 발생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가 마르크스의 테제에 충실하지 않아서 잘못되었다는 얘기를 하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괴리와 차이를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마르크스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제목에서부터 강조하듯 이 책은 마르크스처럼 생각하는 방법을 보이고, 그것을 통해 지금 우리의 상황을 비판하는 힘을 갖자고 말한다. 마르크스가 특정한 역사적 정세에서 내린 결론과 주장을 넘어서자는 뜻이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테제들을 중심으로 서술되어있지 않고, 마르크스가 자기 입장을 계속 고쳐나갔던 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그의 사고방식과 그가 대응했던 정세의 변화를 함께 다룬다.

책에서 주목하는 마르크스의 생각하는 방법은 추상화로 시작한다. 세상을 분석하는 도구로서 이론, 현실을 추상하는 힘과 추상에서 구체로 나아가는 방법이 세상을 분석하고 다시 재조합하여 봄으로써 변화의 계기를 찾는 방법이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변동을 분석하기 위해 최소한 세 가지 시간성을 다루고 있다고 책은 설명한다. 그 세 가지는 고정된 시간성”, “궤도를 따라 돌아가는 시간성”, “사회 급변처럼 갑자기 튀어나오는 시간성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형성(사회구성체)의 지속과 구조의 흐름에 따른 변화, 그리고 내재된 모순에 의해 표출되는 급변을 분석하는데 사용하려 했고, 이를 위해 사용한 추상화의 기초가 되는 개념으로 화폐, 노동력, 재생산과 소유의 전화를 다룬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 테제>를 통해 그의 인식론적 단절을 다루면서 마르크스가 독창적인 입장을 정리한다. 이론과 실천의 관계, ‘실천의 유물론’, ‘관계의 존재론’, ‘사회적 관계들의 앙상블은 단절 이후의 핵심적인 키워드가 된다. 그 뒤에 󰡔자본󰡕 1, 2, 3권 각각에 대한 독해 방법이 설명된다.

이어서 사회적인 것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이 따라온다. 마르크스는 사회적인 것이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비판하고 자본이 사회성을 대변하는 전도된 상황을 가시화하는 작업을 했다. 저자는 사회적인 것이 단순히 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있다는 것을 물신숭배이론으로 설명하려 한다. 우선 사회적인 것을 두 가지로 나누는데, 하나는 경제의 작용과정에서 사회적으로 통합되는 현상을 강조하는 사회(das Gesellschaftliche, 사회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인 것으로 표상되는 측면을 강조하는 사회(das Soziale, 사회적인 것)이다. 마르크스는 경제적인 것에 의해 사회적인 것에서 모순이 만들어지고, 이를 자유주의적인 논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설명하기 위한 물신숭배적 표상이 사회적인 것에서 발생한다고 설명하면서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도모하는 정치역시도 사회적인 것에서 전개된다고 설명한다.

다음 장에선 마르크스 본인이 부정했던 프랑스 정치에서의 마르크스주의의 갱신을 위해 부단히 투쟁했던 이론가 알튀세르와 그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은 발리바르가 등장한다. 이들은 마르크스가 언급하지 않았던 영역을 채우기 위해 그의 사유방식으로 다른 학문을 흡수하고 자신의 정세에 대응해 나갔다. 발리바르의 작업을 소개할 때는 프로이트, 마르크스, 스피노자를 자원으로 삼고, 세계화라는 정세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인권의 정치시빌리테의 정치를 다룬다. 알튀세르에서는 모순과 과잉결정의 문제,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언급한다. 마지막으로 중앙대 자유인문캠프의 강연록에서 마르크스의 구조에 대한 사유와 관계론, 윤리비판을 다룬다. 윤리 비판에서는 공자와 예수가 관계를 전화하려 했던 시도를 독해하며, 특히 신영복을 경유한 󰡔논어󰡕의 접근을 다룬다.

이 책은 현대 한국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인 한 흐름을 정리했다고 할 수도 있다. 책 맨 앞에는 고 박현채, 정운영, 김수행, 신영복 선생을 추모하고 있는데, 그들의 호출되는 이유는 한국전쟁 이후 반공주의라는 엄혹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마르크스의 사유방식을 가지고 남한이라는 구조적 정세에 대응해서 이론을 사유하고 생산 관계를 전화하고자 했던 인물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현채는 소년 빨치산 출신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여 민족경제론을 주창했다. 박현채의 경제학자로서의 역량과 필력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디딤돌로서 한국사회구성체논쟁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공간을 열었다. 이 논쟁의 공간에서 정립된 민중민주파의 이론적 흐름이 이 책에서 계승하고 있는 흐름이라 할 수 있다. 정운영과 김수행은 유학을 떠나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고 돌아와서 후배들이 공부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주었다. 김수행은 서울대의 교수로 자리 잡았고, 마르크스주의의 목소리가 계속 학계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정운영은 대학과 언론, 방송을 종횡무진하며 대중과 긴밀히 호흡하며 마르크스의 사고방식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한국 대중에게 남겨주었다. 신영복은 오랜 기간 감옥생활을 하면서 비전향 장기수들이 해방 이전에 운동 속에서 얻은 지혜를 받아 전해주었으며, 엘리트로서의 허위의식을 벗어던지고 한국의 이데올로기와 윤리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인 비판적 성찰을 남겨주었다. 이 책도 어떻게라는 관점을 강조하며 마르크스를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론으로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그 흐름에 분명히 조응한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