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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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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면/구조와 정세

중국 개혁개방이 마주했던 모순을 생각하며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4. 15. 13:20

중국 개혁개방이 마주했던 모순을 생각하며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조영남, 민음사, 2016.

 

사과나무 연구원 강태경

 

“중국은 어떻게 개혁개방에 성공했을까?”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쓴 이 책은 총 세권으로 구성된다. 각 권의 부제는 「개혁과 개방」, 「파벌과 투쟁」, 「톈안먼 사건」이다. 각각은 `76~`82년, `83~`87년, `88~`92년의 시기를 다루는데, 단순히 각 시간대의 특징이 아니라 현대 중국이 문화대혁명 이후 마주했던 모순을 대표하기도 한다. 

이 책의 제목이 비록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이지만 덩샤오핑만을 중심으로 서술을 전개하지 않는다. 특히 개혁개방을 당이 주도할 수 있었던 수많은 주역들을 적극적으로 서술한다. 농촌에서의 생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했던 완리, 과학기술인과 지식인들의 사면복권을 주도하고 정치개혁에 우호적이었던 후야오방, 마오쩌둥 이후 4인방을 구금하고 개혁개방의 시작을 열었던 화궈펑과 마오쩌둥 사후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려 했던 예젠잉, 개혁개방의 큰 흐름의 필요성은 동의하지만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지키려 했던 보수파 천윈과 덩리췬, 톈안먼 사건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했던 자오쯔양 등 개혁개방에 동의하면서도 덩샤오핑과 다른 길을 걸었던 노선들이 다루어진다. 또한 저자는 엘리트 정치에 주목하면서도 각 정세에서의 중요한 변수가 된 대중의 반응과 실천도 서술한다. 1권에서 개혁개방의 동력이 된 안후이성의 농민들이 세밀하게 다루며, 2, 3권에서는 개방과정에서 성장한 자유주의 흐름과 톈안문 사건으로 이어진 사회운동을 다룬다. 

각 권의 부제를 키워드로 정리해보면, ‘개혁과 개방’은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내전에 가까운 극단적인 사회적 갈등과 생산력의 몰락, 극한의 빈곤에 직면한 중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었다. 즉 경제적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공산당과 당원을 포함하여 경제정책 및 각종 제도를 ‘개혁’해야 했다. 개혁개방 20여년을 거치면서 정치는 점진적으로 제도화되었고, 경제는 점진적으로 시장의 요소를 도입했다. ‘개방’은 첨단 과학 기술과 경제운영능력을 해외로부터 배우고, 국외의 자본을 끌어오기 위해 죽의 장막을 걷어내는 일이었다. 이는 문화대혁명의 과정에서 설정한 국가운영의 지도노선을 크게 고쳐야 하는 것이었고, 4인방을 대표로 하는 극좌노선의 지도자들의 완강한 반발과, 오랜 기간 누적된 중국공산당의 관성을 거슬러야 하는 어려운 일이었다. 

개혁은 지방 농촌에서 시작되었다. 중국혁명의 근간이 중국 농민이었던 것처럼,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호별영농제를 몰래 진행한 농민의 몸부림과 그 필요성을 절감한 개혁적 간부들이 중국 전역을 지배하고 있던 이데올로기적인 억압을 깨고 개혁을 시작했다. 사상적으로는 `70년대 진리표준 논쟁에서 교조주의를 비판하고 문화대혁명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에 대한 평반(재평가‧복권)을 진행함으로써 개혁개방을 향한 전반적인 동의기반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정치개혁에서 기존 일당독재를 고수하는 보수파와 체제 내에서 민주를 허용하자는 당내 개혁파,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한 당외 개혁파가 있었다. 경제개혁에서는 시장 조절과 균형을 강조하는 보수파와 경제성장을 강하게 추진하자는 개혁파 사이의 투쟁이 이어졌다.  군대와 당 간부들, 지식인들과 언론사들이 주기적으로 논쟁을 벌였다. 그런 면에서 90년대 초 개혁개방이라는 노선이 안정화될 때까지 개혁개방은 사회주의라는 체제를 계속적으로 재정의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파벌과 투쟁’은 원로정치(중국 혁명에 참여했던 원로 지도자들의 카리스마에 기댄 정치)와 공식적인 지위와 권한에 입각한 공식정치가 이중으로 존재하는 ‘이중 정치구조’하에서 경제/정치 노선을 두고 벌어진 파벌들 사이의 투쟁과 협상을 보여준다. 경제와 정치 면에서 둘 다 보수적이었던 천윈, 경제에서는 개혁적이었지만 정치에서는 보수적이었던 덩샤오핑, 경제에서 도 정치에서도 개혁파에 속했던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이 정책에 입각한 노선차이를 대표한다. 즉, 개혁개방이라는 큰 흐름에서도 ‘어떻게’라는 문제를 두고 중국은 끊임없는 투쟁을 치렀다. 정치에서는 결국 민주화는 허용하지 않되 제도화와 법치를 강조하는 방향이 우세해졌다. 문혁의 과오를 반성하여 공산당 ‘내에서’ 정적을 죽이는 일이 사라졌고, 지방에서는 촌민위원회의 선거도입과 법률보급 등 제도화를 추진했다. 경제는 개혁파의 우세 속에서 경제 위기를 맞을 때마다 보수파가 경제정책을 수정하고, 그 뒤 다시 개혁파가 공격적인 성장을 주도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톈안먼 사건’은 대중 속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성장과 성장과정에서 부패문제, 심각한 물가상승, 소득격차 확대로 인한 불만이 쌓인 대중과 중국공산당 내 정치보수파가 충돌한 사건이다. 개방과정에서 자유주의가 부상하고 당 밖에서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학생과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운동과 이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공식정치의 수장이었던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의 시도, 그것을 불만으로 여긴 정치적 보수파 원로들의 갈등 속에서 결국 톈안먼 사건은 비극적인 유혈진압으로 끝을 맺는다. 저자는 유혈진압을 덩샤오핑의 최대의 오판이자 잘못으로 평가하면서, 이 사건으로 중국의 이중 정치구조의 힘과 중국 인민해방군의 규율이 강력하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공산당 원로들과 지도자들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이라는 국제정세에서 자유주의 세계와 중국이 계급투쟁을 하고 있다는 관점을 강경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드러내주었다고 진단한다.

한편 톈안먼 사건 직후 중국은 다시 개혁개방 노선을 전면 수정하고 경제적 보수화로 선회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자오쯔양 실각 후 세워진 장쩌민이 사실 보수파 수장 천윈이 추천한 인물이란 점이 이를 잘 드러낸다. 그러나 88세의 공식적인 직책도 없던 덩샤오핑은 여전히 경제성장이 결국에는 사회적 불만을 해결하는 핵심이라고 판단하였고 모험을 감행한다. 남순강화를 통해 개혁개방을 주저하는 당 중앙에 대한 비판을 전개하고, 보수파였던 장쩌민 총서기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경제적 개혁파로 전향하게 된다. 이후 장쩌민은 ‘덩샤오핑 이론’을 공식화한다. 그럼으로써 저자는 이후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의 행동양식은 등소평이 일관되게 주장한 ‘경제적 개혁과 정치적 보수’로 정리되었다.

저자는 중국이 개혁개방에 성공한 정치적 이유로 1)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하고 통찰력 있는 정치 리더십”, 2) “효과적인 정치제도 수립과 유능한 당정간부의 충원”, 3) “적절하고 실현 가능한 개혁 전략과 정책의 선택”을 꼽았다. 서술방식은 고심 끝에 개혁개방의 복잡했던 과정을 최대한 사실적이고 풍부하게 설명하는 것으로 변경하였다고 한다. 정치현상에 대한 설명은 ‘인과관계’보다는 ‘상관관계’라는 접근을 전제로 경제, 정치, 이론, 이데올로기, 공산당과 정치지도자, 대중, 국제정세, 중앙과 지방 등의 복잡한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생생하게 서술했다. 덕분에 이 책은 개혁개방의 성공이라는 과잉결정과, 정치민주화의 실패라는 과소결정을 둘러싼 모순을 풍부하게 생각할 수 있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