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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가와 민족을 다시 보자 본문

5면/구조와 정세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가와 민족을 다시 보자

알 수 없는 사용자 2023. 6. 27. 22:11

파올로 제르바우도 지음. 󰡔거대한 반격: 포퓰리즘과 팬데믹 이후의 정치󰡕. 남상백 옮김(2021, 번역본 2022).

 

강태경

사회과학 연구집단 ‘사과나무’ 연구원

 

본 책은 신자유주의 이후 포퓰리즘의 정치를 지나, 팬데믹이라는 전지구적 위기를 거친 새로운 정세를 ‘신국가주의 시대’로 제시하고, 좌파들에게 현재의 정세를 대응하기 위해 ‘민주적 애국주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이후를 신국가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그다지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제라르 뒤메닐도 3개의 계급론을 주장하면서 신자유주의 시기를 자본가가 주도하는 자본가-관리자 계급의 동맹으로 규정하였고, 관리자 계급의 성장 속에서 신자유주의 이후의 시기가 신관리주의로 이행하고 있음을 주장한 바 있다. 세계체계분석의 주요 이론가 지오반니 아리기는 세계체계의 변동을 설명하기 위해 ‘영토주의’와 ‘자본주의’가 서로 대립하면서 모순을 해소하는 과정으로 세계체계의 변동의 틀을 설명했다. 시기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의 시기였다면, 다음 차례로 영토주의의 등장이 예상될 수 있다. 그리고 저자가 제목을 지을 때도 참고한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에서 다룬 이중 운동 중 ‘두 번째 운동’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지배적이게 되면, 이에 사회 각계의 대응이 뒤따른다는 주장 역시도 국가의 복권 내지는 재부상을 자연스럽게 예상할 수 있게 한다. <구조와 정세>에서 지난 시간에 다룬 애쓰모글루와 로빈슨의 󰡔좁은 회랑󰡕 역시도 새로운 정세에서 보수적인 자유주의적 전통(하이에크에서 출발하는)을 계승하면서 국가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상황이다.

국가가 중요하게 부상한다는 정세인식은 이제 전반적인 합의점으로 귀결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구체적 분석 속에서 읽어내는 신국가주의 시대의 특징으로서 ‘주권’, ‘보호’, ‘통제’라는 키워드를 추출했다는 것, 그래서 새로운 사회적 블록이 형성되는 시기에 포퓰리즘과 우파적 민족주의에 대응하는 좌파의 대안으로 ‘민주적 애국주의’를 주장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중요한 근거는 ‘현재의 정세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실패와 정체성 위기’(394쪽)라는 인식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주권의 정치를 약화시켰던 상황에서, 대중들은 정체성의 위기와 주권에 의한 보호와 통제의 공백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팬데믹에 무기력했던 보수적 자유주의의 실패를 겪으며 이런 인식이 분명해졌다. 이론적으로는 홉스를 통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혼란 속에서 주권자의 보호를 요청하는 대중의 요구를 읽는다. 이는 󰡔좁은 회랑󰡕에서도 수용하고 있는 논리이다. 저자는 여기에 더해서 ‘돌봄의 정치’라는 키워드를 제시하면서 질병과 환경, 자본의 공세로부터 대중을 보호해야 한다는 테제를 좌파적 애국주의의 입장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왜 통제가 필요하다고 여기는가? 저자는 대중들이 신자유주의 시기에 세계시장에 노출되고 경쟁에 내몰렸던 경험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국가의 억압적 통제를 견제하는 민주적 계획, 자율성의 확보를 통해 국가의 통제가 단지 억압이 아니라 대중의 동의를 얻고 그에 기반을 둔 통제일 수 있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이론적 근거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자급자족 논의, 니클라스 루만과 스태퍼드 비어의 체계이론에서 주장하는 ‘통제의 조건으로서 경계’를 강조하는데, 논리적 구조는 󰡔좁은 회랑󰡕과 유사하다고도 볼 수 있다. 

‘인민의 적’을 상정함으로서 적대감을 동원하는 포퓰리즘 정치는 주권, 보호, 통제가 상실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균열구도를 만들어냈다. 저자는 우파적 포퓰리즘의 엘리트 비판과 좌파적 입장의 엘리트 비판을 비교하면서 우파적 포퓰리즘이 가진 반엘리트주의가 허구적임을 설명하고, 좌파적 입장의 포퓰리즘이 단지 자본가의 지배를 지식인의 통제로 바꾸자는 주장으로 비춰질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현재 포퓰리즘 현상 이후에도 지배계급과 민중 사이의 정치적 균열을 효과적으로 설명하면서도, 민주적 통제를 강화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함을 상기시킨다. 

결국 주권, 보호, 통제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보호하는 사회주의(socialism that protects)를 위해 좌파에게 요청하는 대안은 ‘민주적 애국주의’다. 저자는 “코즈모폴리턴 자유주의자와 급진 좌파주의자는 ... 국경없는 세계라는 환상에 재미삼아 빠져들었”(451쪽)다고 비판하면서 애국주의가 바로 정치적 대안을 모색할 장소임을 강조한다. 다만 그는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구별하는데, 그에게 애국주의란 “민주주의가 언제나 정체화가 이뤄지는 구체적인 장소에 근거한다는 인식”이고, “근대화의 가장 중요한 혁신 중 하나인 민족이 여전히 탁월한 장소에 해당한다는 인식”이다(452쪽). 

1987년 직선제 쟁취를 가능하게 한 6월 항쟁까지 학생운동의 다수파가 민족해방파(NL)였던 점, 민중민주파(PD) 역시 이론적으로 민족해방민중민주혁명(NLPDR)을 지지한 것으로서, 애국주의적 인식을 저변에 가지고 있었던 경험은 우리에게 민주적 애국주의라는 제안이 상대적으로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 민족해방운동의 관성이 반미주의와 대북정책에 있어서의 과도한 낙관론이라는 한계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도 함께 고민하게 한다. 그러나 진보적 지식인과 좌파의 상당수가 애국주의를 터부시하는 경향 역시 현실이다. 애국주의를 거부하면서 제도정치에서 대중의 힘을 얻지 못하는 현실은 좌파의 오랜 숙제이기도 하다. 저자가 애국주의의 논리 속 경계하고자 한 문제들을 세밀히 검토하면서, 보호라는 키워드가 현재의 애국주의와 어떻게 결합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은 현 정세에서 우리의 실천을 고민하는 데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