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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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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면/연극비평

다시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9. 4. 20:46

다시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서 

- <2022 코미디 캠프 : 파워 게임> 중, <비행 기술 : 토미에 해방 의식> 

 

하은빈 연극평론가

 

 여름이면 찾는 공연이 있다. 극단 ‘지금아카이브’의 레퍼토리 공연 <코미디 캠프>다. 2020년부터 여름마다 막을 올리는 이 공연은 김은한, 안담, 배선희, 신강수가 각각 쓰고 연기하는 네 개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파워 게임’이라는 테마로 오른 올해의 코미디 캠프에서는 특히 배선희의 <비행 기술 : 토미에 해방의식>을 인상 깊게 보았다. 온몸에서 화산처럼 터지는 정념에, 태연자약한 광기에, 희끄무레한 슬픔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단 30분 만에 돌아버리고 돌아보고 돌아오고 돌보는 것을 죄다 해내는 이 미친 여자를 사랑하지 않기가 어려웠다. 

 

 두려움에 대한 선희의 몇 가지 고백으로부터 시작해보자. 그는 많은 것들을 지나치게 두려워한다. 가령 싱크대 선반의 칼이 보이면 그것으로 자기 자신을 찌를 것만 같고, 무서운 이야기를 들은 날이면 기어이 악몽을 꾸고야 만다. 식탁 위 빈 컵에는 곱등이나 바퀴벌레가, 변기 뚜껑 아래에는 아기 시체가, 3층에 있는 집 창밖에는 길잃은 할머니 유령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선희는 자기만의 약속들로 거의 결계를 치다시피 하며 지내지만, 망상이 계속 찾아오는 것까지는 어쩌지 못한다. 선희는 보이지 않는 곳에 칼을 숨기고 창문을 잘 열지 않고 귀신을 쫓아내는 쑥차와 팥양갱을 먹으며 지낸다. 동시에 선희는 벌레와 시체와 유령과 죽음을 계속해서 생각하고 바라보며 지낸다. 

 

촬영 손영규, 제공 지금아카이브

 

 어느 밤 이 겁 많은 여자를 찾아오는 것은 ‘죽어야 사는 여자’다. 꿈에서 선희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어떤 여자의 시체를 발견하고 비명을 지른다. 그 여자는 토막 나있는 데다가 아직 살아있기까지 한 시체다. 이 ‘냉장고 속 여자’는 일본의 만화가 이토 준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토미에’로 밝혀진다. 작중에서 토미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토막살해 당하고 다시 살아나기를 반복한다는 설정으로, 작가인 이토 준지에게 큰 성공과 명성을 쥐어준 바 있다. 토미에는 선희의 냉장고 속에서 조각이 난 채 이토 준지에게 바락바락 저주를 퍼붓는다. “나 좀 살리지 마라고 X발 새끼야! 내가 가서 똑같이 해줄게…” 이토 준지에 대한 토미에의 복수심은 활활 타오르지만, 그보다도 더 간절한 토미에의 바람은 이 세상에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토미에는 선희에게 자신을 좀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그리하여 선희의 방에서는 토미에의 해방을 위한 한바탕의 진혼굿이 벌어진다. 토미에가 다시는 재생할 수 없도록 훼손하는 그 일련의 과정은, 살해라기보다는 오히려 조리에 가깝다. 선희가 자신을 자르고 다져가며 무수히 분쇄하는 동안, 토미에는 선희의 분주한 손길을 독촉하고 갈급한다. “선희 쨩, 하야쿠! 하야쿠!” 아주 작게 다져진 토미에가 숨 가쁘게 전자레인지, 밥솥, 오븐, 에어프라이어 속으로 던져져 구워지고 튀겨지고 삶아지고 익어가는 동안, 산산이 흩어진 토미에의 살점이 텅 빈 무대 위에서 불꽃놀이처럼 펑펑 터진다. “선희 쨩, 간바레!” 마침내 ‘윙—’ 하는 믹서기의 굉음까지 맹렬하게 지나가고 나면, 선희는 토미에를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셔버린다. 마침내 자유를 찾아 날아가는 토미에가 선희에게 마지막으로 남기는 것은 다음의 한 마디다. “그래도… 다시 태어나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선희가 꿈에서 깨어나자 냉장고 속에는 풍선 달린 헬륨가스 한 통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선희는 문득 몸 안에 남아있는 독소를 빼야겠다고 생각한다. 토미에를 자르고 다지고 자르고 다졌듯, 한동안 선희는 헬륨가스를 마시고 내뱉고 마시고 내뱉는다. 관객은 선희가 앵앵거리는 소리로 무엇인가 말을 하는 것을, 서서히 가스가 빠지고 본래의 제 목소리로 되돌아오는 것을 되풀이하여 듣는다. 처음에는 변조된 목소리처럼 가늘고 높았던 소리가 점차 낮고 차분하고 구체적인 선희의 음성이 된다. 이 되풀이되는 수행에서 흘러나오는 것들은 여성으로서 선희가 겪었던 상처들이다. 일곱 살 때, 스무 살 때, 스물세 살 때, 그리고 불과 얼마 전에도 겪었던 일들의 기척이다. 

 

촬영 손영규, 제공 지금아카이브

 

 관객은 선희의 과거와 선희의 현재가 무대 위 육체를 매개로 목소리를 교환하는 것을 본다. 지금 헬륨가스 목소리로 발화되고 있는 것들은 오랫동안 꺼내지기를 금지당해 왔던, 하여 온당한 경험으로 인정되지 못하고 떠돌았던 익명의 증언들이다. 분명 선희의 것이면서 동시에 선희의 것이기를 부정당했던, 그간 자리를 찾지 못하고 몸속 어딘가를 계속 돌아다녔던 경험들이 빠르게 선희의 목소리가 되어간다. 육화된 목소리가 파동이 되어 공기 중으로 스르르 사라질수록 선희는 점점 더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 다져지고 쪼개진 토미에가 점점 더 투명해지고 해방되었듯, 마침내 선희는 완전히 자유로워져서 새가 된다. ‘약간은 매이고 약간은 독수리’인 그는 아주 먼 곳을 향해서 장엄하고 느리게 날아올라, 관객을 덩그러니 남겨놓은 채 일순 무대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방금의 변신이 무색하게도, 잠시 후 극장 문이 다시 발칵 열리고 선희가 헐레벌떡 무대로 돌아온다. 선희가 황급히 되돌아온 이유는, 토미에 해방 의식을 행하던 와중에 창문으로 찾아왔었던 유령 할머니를 그만 깜빡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토미에를 해방시키는 일이 너무 시급하고 더부룩했던 나머지, 유령 할머니와 맞닥뜨리고도 선희는 이전의 두려움을 깡그리 잊어버렸다. 어느새 선희의 초점은 ‘유령’이 아니라 ‘길 잃은’에 찍혀서, 선희는 조금 있다 돌아오겠다며 할머니를 집에 들였었다. 다시금 무대로 복귀하여 선희의 몸으로 되돌아온 그는 할머니를 바래다 드려야 한다며 관객에게 꾸벅 인사한다. 이 모든 난리 부르스가 있었던 적도 없었다는 듯이 그의 얼굴은 싱겁고 태연하다. 

 

 선희가 무대로, 몸으로, 기어이 선희 자신의 삶으로 복귀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 떠돌던 자신의 기억에 목소리를 입혀주었듯이, 유령 할머니를 돌보고 제자리를 찾아주기로 한 약속을 잊지 않고 되돌아왔다는 사실을 나도 잊지 않고 싶다. 내게 이 귀환은, 여전히 겁이 나는 것들에 겁을 내며 살겠다는, 자리를 잃어버린 이들과 공명하며 그들의 자리를 찾겠다는, 상처 입은 몸을 다시금 이고 지고서 살아가겠다는 메시지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한참을 울고 나서 코를 푸는 사람의 어이없으리만큼 명랑한 낙관 같아서, 삶이 선사하는 매일의 모욕과 슬픔으로 토막이 나고도 그 남루한 몸을 기워 살아가겠다는 기이한 다짐 같아서, 그토록 지난하게 죽고 나서도 또다시 태어나서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싶어하는 무결한 마음 같아서 문득 비죽 울고 싶어진다. 

 

 나는 길게 울고 나서 막 세수한 사람처럼 말개진 얼굴의 선희를 바라보다가, 그가 유령 할머니를 향해 뻗은 빈손을 대신 덥석 잡는 상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