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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우리 중 누군가가 그 작은 세계를 지어보일 때 본문
우리 중 누군가가 그 작은 세계를 지어보일 때*
연극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
하은빈
생각해보면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에 자주 마음을 빼앗겼다. 픽션임을 숨기지 않기로 한 이야기들, 픽션이라는 사실을 향해 돌진하여 다른 길을 터놓는 이야기들, 이야기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이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결말을 바꿔버리는 그런 이야기들을 결국엔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건 이야기의 한계를 넘어서는 이야기에 관한 말이 아니라 그 한계 자체에 머무르는 이야기에 관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결말이 이렇게 될 수도 저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이야기라는 게 사실 어떻게 끝나도 상관없을 만큼 무력하고 미약하다는 말과도 같을 것이다. 이야기가 영롱하고 아름답다는 것은 그것이 현실 세계의 차갑고 견고한 표면을 만났을 때 비눗방울처럼 깨진다는 말과도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때에는 이야기가 그토록 작고 연약했던 덕에, 무용하고 미력하며 쉬이 바스라졌던 덕에 우리 중 누군가가 감히 그 작은 세계를 지어보이기도 했다.
연극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 역시 그러한 메타 픽션,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다. 책상 앞에 붙어 앉아 좀처럼 쓰이지 않는 자신의 동화를 바라보던 영원은 어느 순간 “이제는 좀” 쓰였으면 한다며 튀어나온 동화에 의해 속절없이 끌려간다. 동화는 영원을 이끌고 “산으로”, 영원의 행복하지 않은 어린 시절로, 그간 거리를 두어왔던 정현과 지혜의 젊은 날들 이곳저곳으로 나아가며 스스로를 써내려간다. 그 동화는 개천에 버려진 작은발톱수달 두 마리에 대한 동화이면서, 영원의 가족인 정현과 지혜에 대한 동화이기도 하다.
‘영원’은 어느 날 문득 정현이 데려와 지혜와 함께 키우게 된 아기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포에버”가 아니라 “도롱뇽”이라는 뜻의 ‘영원’은, 잘려도 잘려도 계속해서 다시 돋아나는 그들의 믿음과 꿈을 닮았다. 열심히 불을 끄고 생명을 구하다 보면 누군가는 되돌아오리라고 믿는 정현의 믿음 속에서, 플라스틱을 솎아내는 자신의 손이 빨라질수록 세계가 투명해지리라는 지혜의 꿈속에서 영원은 자란다. 개천에 방생되었다는 외래종 수달들의 안부를 궁금해하며, 엄마라는 호명 대신 그들을 “정현수달”과 “지혜수달”이라고 부르며, 작은 구슬 속 왕국을 군림하는 미약한 신의 놀이를 반복하며 영원은 홀로 어른이 된다.
그러나 외로운 어린 시절을 지나 나이가 든 영원은 자신을 키운 두 사람을 “없는 셈” 치며 힘써 멀어지려 한다. 세상을 떠나고도 영원의 꿈속에서 소화 호스를 들고 있는 정현에게 영원은 “그만하면 됐다”며 퉁명스럽게 대꾸하고, 홀로 남겨진 지혜를 찾아가지도 전화를 받지도 않으며 은둔한다. 방 안에 틀어박혀 자판기처럼 기계적으로 동화를 찍어내던 영원의 집필이 중단되는 것은 지혜의 부고를 전해 들은 직후, 개천에 아직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수달에게 미꾸라지를 주려고 빗속을 걸어 들어갔다는 지혜의 죽음 직후의 일이다.
영원은 동화의 걸음을 따라 두 사람의 지난한 삶을 내내 더듬은 끝에 한 편의 동화를 가까스로 써낸다. 여전히 범람하는 개천에서 살고 있는 작은발톱수달들의 이야기다. 두 수달 중 한 마리의 수달이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를 삼키고 쓰러져 숨을 쉬지 않는다. 절망하고 있는 다른 한 마리의 수달 앞으로 반짝거리는 구슬이 나타난다. 그들이 처음 버려졌을 당시에 모습을 드러냈던, 그러나 개천이 범람함에 따라 이내 헤어져야 했던, 자신은 “뭐든지 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던 구슬이다. 그 구슬이 죽은 수달의 몸을 건드리자, 쓰러진 수달이 거짓말처럼 살아 숨쉬기 시작한다. 두 수달 모두 살아있는 채로 끝나는 그 동화의 맨 앞에 영원은 “나의 지혜수달에게 바친다”고 적는다.
그러나 공연의 마지막 장면에서, 수달의 이야기는 영원의 동화가 가진 결말에서부터 한 걸음 더 뻗어 나간다. 지혜의 오랜 동료이자, 그녀의 숙련된 노동과 그녀가 꿔온 꿈을 모두 지켜 보아온 인공지능 기계가 이어서 쓴 이야기다. 미꾸라지를 한 아름 든 지혜는 마침내 개천에서 수달을 만난다. 정말로 살아있었네, 하고 지혜가 놀라자 수달은 이제 막 떠나려던 참이라며 구슬 속 풍경을 가리킨다. 지혜가 구슬 안을 들여다보자, “반짝이는 맑은 바다”와 “녹음 짙은 숲”, 그리고 정현의 모습이 비친다. 작은발톱수달과 지혜가 서서히 구슬 속 세계로 들어가는 동안, 무대 위 모든 몸들이 천천히 구슬을 들어올려 각자의 머리 위에 뒤집어쓴다. 지금까지의 그 어떤 몸들도 어디론가로 사라지고 오로지 이야기만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이야기만이 무대에 남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여기저기서 조금씩 굴러가다 자주 다른 장면으로 전환되는 이 거대한 연극은, 크고 작은 여러 줄기의 이야기를 공들여 짜내려가는 터라 그 자신의 제목만큼이나 길었다. 그리고 진실된 시간이란 실로 순간들이었으므로, 우리는 대개의 시간을 각각의 순간들이 이따금씩 만나기를, 접속하기를, 조우하기를 기다리며 보냈다. 무대에 점점이 박힌 조명들이 드문드문 희미하게 반짝거렸고, 조각나고 여기저기 흩뿌려진 장면들 또한 그러했다. 제각기 떨어져서 이따금씩 빛나는 별처럼, 그러다 잠시 만들어지고는 이내 흩어지는 별자리처럼, 혹은 몇 조각의 삶처럼, 그것들은 몹시도 찰나였고 미약했다.
그러나 그 찰나와 찰나 사이에서 본 것은 이야기의 덧없음이 아니라 그 연약한 이야기를 짜내려가는 어려운 믿음이다. 씨실과 날실을 성기게 교차시키는 일의 고단함을 지속하는 사랑이다. 서로에게 무용하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어주고자 분투하는 이들의 미욱함과, 구하면 돌아오리라는 믿음 하나를 가지고 불길 속으로 혹은 쏟아지는 빗속으로 뛰어드는 무모함이다. 우리 곁을 떠난 이들의 몸 위로 투명하고 반짝이는 구슬을,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덮어씌우는 무르고 부드러운 그 마음을 선량한 것이라고, 강인한 것이라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여겨도 될까.
글을 쓰며 영원이란 이름의 의미를 여러 번 떠올렸다. 잘리고 잘려도 다시 자라난다는 그 도롱뇽의, “어쩔 때는 더 강한 게 나오”고 “어쩔 때는 하나 잘린 데서 두 개 나오기도” 한다는 영원의 새살을 그려보았다. 우리 중 누군가의 상처에서 자라날 그 새 이야기, 우리 중 누구보다도 더 강하고 그 누구보다도 더 멀리 굴러갈 그 작은 세계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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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 인용된 모든 대사는 다음의 책으로부터 발췌하였다. 배해률,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창작공감: 작가 희곡집), 재단법인 국립극단,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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