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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세대를 이어온 한옥의 위대함과 차세대 한옥의 역할 본문

6면/학술동향

세대를 이어온 한옥의 위대함과 차세대 한옥의 역할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22. 10. 8. 18:54

 한옥은 나무, 흙과 같은 자연 재료를 사용해서 전통 구법(構法)으로 지은 주거 공간으로 기와 한 장과 주춧돌 하나에도 조상의 지혜가 담겨 있는 기능성과 예술성을 두루 갖춘 건축물이다. 한옥은 더 이상 멸종 위기로부터 구출해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공간이자 도시의 매력과 디자인적 감성을 상승시키며 전 세대를 아우르는 K-House로서 충분한 잠재력을 보인다. 최근 서울시는 스위스 바젤시와 친선 결연을 기념하며 바젤시에 서울시 제1호 해외 한옥 건립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91일 서울시와 주한 스위스 대사관의 공동 주관으로 다음 세대를 위한 K-House, RE-Think 한옥정책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에 본지에서는 해당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2편의 내용을 정리해 소개하고자 한다.

 

낙락헌의 전경 ⓒ전원주택라이프

한옥의 변신, 전통의 기술과 현대의 모습을 담은 틀

 

  조정구 건축가는 우리 시대의 집, 한옥의 변신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서울시에서 2001년 시행한 북촌 가꾸기사업은 본래 북촌을 현대화된 지역으로 탈바꿈하려 추진되었지만, 북촌의 전통과 역사성을 지닌 한옥마을의 입지적 특색을 되살리는 사업으로 변경되었다. 한옥은 건축언어가 잘 정립되어있는 건축물로, 정립된 언어를 짜 맞춰 기둥을 세우고 벽을 세우는 등의 작업을 통해 전통 방식을 그대로를 고수하며 건설할 수 있는 건축물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 전통성에 현대화를 더할 때 나타나는 비판에서 예외 되는 대상이 아니며 이는 과거의 그릇에 현재의 삶을 담으려고 할 때 전통의 중력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주거는 시대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증표다. 서울시 세운상가 내 상점을 조사해본 결과, 허물어가는 한옥 속에서 상점으로 그 역할을 버티며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한옥이라는 오래된 도시 조직 체계와 시장 속 상점이라는 산업 체계가 서로 결합하여 굉장히 복잡한 세계를 만들고 있고 그 모습이 아름답거나 잘 정리된 모습은 아니지만, 매우 역동적으로 보인다. 한옥은 이런 시간의 흐름과 장소 사이의 중력을 어떻게 이겨내며 그 형태를 이어왔는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서울은 새로운 유형의 한옥을 살펴보기 매우 좋은 도시다. 상가가 많은 익선동 일대를 살펴보면 그 어떠한 규제도 받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한옥들이 즐비해 있다. 겉으론 한옥의 외관을 보이지만 내부에는 아트리움 형식으로 구조화하고 한옥의 속이 다 보이는 투명한 재질로 설계하거나 좌식이 아닌 입식으로 형태를 바꾸는 등 동·서양의 다양한 문화와 상업성을 지향하는 모습을 담아 새로운 형태로 진화 중에 있다. 서울 서촌은 주거지로서 변형된 한옥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 지역이다. ㄷ자 한옥 마당 위에 지붕을 메꿔 거실, 예배당 등으로 개조한 사례는 새로운 공간을 창조하는 동시에 이동의 편의성까지 고려하였다. 이는 전통적 한옥을 보존하는 한편, 새로운 공간으로의 변화 가능성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결국, 이 과정에서 모범적인 한옥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만들 수도 있고 커다란 흐름에 맞춰 함께 변화하고 있는 어떤 것이 새롭게 나타날 수도 있다.

  최근 한옥은 좋아하는데 한옥에 살 자신은 없지만, 한옥 같은 집에 살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제한을 극복하려는 시도 또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은평 한옥마을의 낙락헌(樂樂軒)이 그 대표적인 예다. 낙락헌은 2017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한 한옥으로, 기존 한옥의 배치를 재해석하고 콘크리트와 목조를 조합한 하이브리드 구조로 시공한 주택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한옥에서는 보기 어려운 건물 내 차고, 현관, 서양식 거실 등의 공간을 찾아볼 수 있고 필로티 구조(건물을 지상에서 분리하며 만들어지는 공간)로 설계해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거주자에게 필요한 시설들을 채울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렇듯 현대적 한옥은 전통 한옥의 건축기술을 단순히 발전시켰다기보단 한옥 같은 집이라 규정하고 추구하는 언어를 현대 건축 기술과 결합해 진화해 왔다. 앞으로의 한옥은 콘크리트구조나 목조가 없는 어쩌면 기왓장마저 사라져 한옥이라는 말이 적합하지 않은 형태로 변화될 수 있다. 그래서 현대의 기술과 한옥의 미를 살린 다양한 시도는 현재 과도기적인 상황 속 그 미래의 경계에 서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송도기행첩 내 한옥마을 전경 ⓒ국립중앙박물관

 

도시의 밀도와 복합으로 본 한옥의 변화 과정

 

  황두진 건축가는 도시 문명시대, 한옥의 보편성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먼저 다층한옥의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로 운을 띄웠다. 문명화된 도시를 설명하는 여러 키워드 중 그가 주목하는 것은 밀도복합이다. 두 개념은 건물이나 인구가 면적 대비 얼마나 촘촘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밀도), 그리고 도시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복합) 살펴보는 데 쓰이는 개념으로 도시에는 양·질의 문제가 공존하는 공간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오늘날 전 세계의 여러 도시는 밀도를 긍정하고 복합을 수용하는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서울시에서 발행한 ‘2040 도시기본계획자료를 보면 서울시 역시 다기능 복합 용도의 도시를 추구해 주거·복지·관광·상업·업무·공공·공업 등 전 영역에 걸쳐 융·복합적으로 기능하는 도시로 계획하고 있다. 오늘날의 도시는 점점 더 높은 수준의 밀도를 유지하여 일상생활 반경을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도시 구조에서 한옥은 어디쯤 위치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옥의 일반적인 이미지를 상상해보면 ㄷ자의 모양으로 생긴 집의 처마에서 떨어지는 햇살이 한옥 툇마루를 비추는 넓고 여유로운 풍경으로 상상하기 쉽다. 산업화 이후 현대인이 살고 있는 주거의 모습과 한옥의 이미지는 상당한 괴리를 보인다. 전통적 한옥의 특징은 거의 모든 건물이 단층이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과거 서울은 세계 타 도시와 비교했을 때 매우 저밀도의 도시로, 건축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건폐율이 고()용적률인 저밀도의 주거로 가득 차 있는 도시였다. 이러한 한국 도시에 있는 저밀도적 특성은 중세부터 이미 상당한 고밀도의 도시를 만들어온 유럽이나, 19세기 이후 도시 밀도를 획기적으로 주도해 발전해 온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 주요 동남아 도시들에 비교했을 때 더욱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1983년 서울 안암동 일대는 한옥으로 가득 찬 동네였지만 2022년 현재 안암 한옥마을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일제 강점기나 한국전쟁의 영향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밀도로 인해 쇠퇴한 경우다. 한옥의 형태로는 현대 도시에서 요구하는 고밀도에 부응할 수 없기에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고밀도의 유럽 전통도시의 건물들이 현재까지 상당 부분 보존될 수 있었고 한국의 대다수 도시는 이를 유지할 수 없었다. 도시에서 건축의 밀도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한 건축 유형의 존폐를 결정할 정도로 아주 중요한 사안이다.

 

1940년 경 안암동 일대 한옥 단지 ⓒ황두진 건축가
2004년 안암동의 전경 ⓒ황두진 건축가

  밀도 높은 한옥을 위한 노력이 없던 것은 아니다. 1900~1910년대 서울 남대문로를 중심으로 2층 한옥 상가가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고 약 10년이 지나 2층에도 온돌을 설치할 수 있는 기술까지 발전했다. 이처럼 다층한옥이 여전히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가운데, 지난 2007, 고층 한옥 아파트를 만들고 그 옥상에 한옥 마당을 설계하는 건축 아이디어가 제안되기도 했다. 한옥 아파트라는 단어가 생소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미 1643년 황룡사 9층 목탑을 통해 고층 목조 건물의 역사적 경험이 있는 만큼, 이런 역사적 배경과 그동안 진행된 모든 연구를 통해서 다층한옥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더 진지하게 볼 필요가 있다. 고 밀도적 주거와 반대로 최근에는 대형 리조트, 호텔 등에 한옥 건물을 만들어 고객들에게 쾌적한 객실 환경과 편리함을 제공하기도 하는데 이를 즐거움을 주는 건축(pleasure architecture)’이라 한다. 한옥이 밀도적인 측면에서 도시 문명에 기여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면 속도와 효율 위주의 삶에 지친 현대인에게 회복과 위안을 줄 수 있는 다른 방식을 통해 한옥의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양한 한옥의 변화는 현재까지 이어져 와 역사적 가치를 보이지만 미학적으로는 다른 관점을 보인다. 건축은 주거 공간이라는 기능적인 측면만 아니라 미학적으로도 사회에서 받아들여져야 그 의미가 있다. 전통적인 본질에 대한 가치관과 개개인의 경험에 의한 취향까지 반영해 그 쓰임새나 구조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지만, 현대 한옥이 실제 얼마나 한옥으로서 받아들여질지는 생각해볼 만한 주제임을 시사했다.

  다음 주제로 동적 기능주의와 한옥의 상관성에 관해 설명했다. 기능주의는 근현대 건축사상의 기저에 있는 내용으로 건물이 수행하려는 기능에 따라 그 형태나 공간 구성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한옥은 매우 다기능적인 특징의 주거형태를 보인다. 작은 방에 책상을 깔면 공부방, 밥상을 깔면 식당, 이부자리를 깔면 침실, 차를 마시면 다실 되는 등 하나의 공간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것이 우리는 매우 익숙하다. 이런 가변적인 공간 활용의 특징은 한옥의 특성 중 하나인데, 문을 닫아 폐쇄적인 공간을 만들어 사적인 공간으로 사용하다가 제사나 혼례 등으로 인해 여럿이 모이면 다시 문을 개방해 공간을 통합하는 매우 유연한 기능적 특성을 보인다. 근대 이전에는 구조와 공간으로 단순하게 건축이 완성되었다면 이후에는 기계·장치과 강하게 결합되어 왔다. 인류의 건축사를 설명하는 한 방법 중 냉·난방, 상하수도, 통신·에너지 등 설비와 결합하는 방식에 따라 세대를 세 부류로 구분할 수 있는데, 상징적인 의미에서 이것을 배관(plumbing)이라고 부르고 전배관(pre-plumbing), 친배관(pro-plumbing), 후배관(post-plumbing)의 시대로 나눌 수 있다. 전배관 시대는 근대 이전 순수한 구조와 공간만을, 친배관 시대는 현대 건축(기계)과 설비(전기)의 결합, 에너지 및 인프라 증축 등을, 후배관 시대는 에너지 독립, 정보와 결합, 탈기능주의 등을 뜻한다. 오늘날의 건축은 친배관 시대에서 후배관 시대로 넘어가는 경향을 보인다. 일부 건물은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고 무선 통신이 보편화 되며 유선 전화의 자리를 대체하면서 건축이 설비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기술 발전이라는 측점에서 21세기 초반부터 진행되고 있는 한옥 르네상스의 거대한 물결은 한옥이 바로 이러한 건축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라고 본다. 전통 건축의 그릇이 현대인의 삶을 담았을 때 역설적으로 한옥의 매력이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한국이라는 전자 산업이 매우 발달한 나라의 건축과 기술이 결합한 특성 역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매우 풍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옥은 소형화, 경량화를 추구하는 우리에게 매우 적합한 주거이기에 한옥에서의 삶은 물리적으로 덜 건축하고, 문화적으로 더 풍성할 수 있는 새로운 미래 시대에 맞는 건축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평화시대의 아이콘이라는 관점에서 한옥이 지닌 또 다른 가능성을 설명했다. 한반도 한옥 도시는 서울, 전주, 경주 외에 개성에도 큰 규모로 형성되어 있다. 표암 강세황의 송도기행첩(松都紀行帖, 1757)을 보면 개성 한옥마을의 전경을 볼 수 있다. 개성 구도심의 개울 주변으로 현재까지 많은 한옥이 남아있고 그중 일부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런 한옥의 보존 및 유지보수 기술은 한국과 북한에서 공통으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 이에 현재는 폐쇄되었지만, 개성 동남쪽 4km에 있는 개성공단을 한반도 한옥의 중심으로 개발해 한옥과 관련된 각종 생산 및 교육의 장을 넘어 세계 평화의 장으로도 구상할 수도 있다고 보며 한옥이 건축을 넘어 한반도 평화 시대를 견인하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개성 한옥마을 내 숙박시설 안내도 ⓒKTG

 

 

 

정리 : 김연광 기자 dusrhkd99@korea.ac.kr